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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건달바 전투 10 - 살생하지 말라고?

오늘의 쉼터 2016. 6. 26. 17:16

제10장 건달바 전투 10


- 살생하지 말라고?




나는 불덩어리처럼 화가 나서 도망치는 유환을 뒤쫓았다.

내가 누구인가. 가끔 사고를 치고 포악을 떨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때는

제천대성의 ‘성(聖)’ 자를 이름 앞에 붙이고 투전승불의 ‘불(佛)’ 자를 달기도 했던 나다.

이 정도라면 내면성이랄까 정신성 같은 것도 좀 있을 게 아닌가.

그런데 이 더럽고 아니꼬운 도사 놈들은 조금도 이 어른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손오공, 그거 죽어도 인간 안됩니다. 근성(根性)이 삐딱해요.”

 

“맞아요. 원숭이 출신의 절도 전과자 아닙니까. 우리 같은 도인들과는 뿌리부터가 다르지요.”

 

“왜 그리 삐딱한지 몰라요. 그 놈이 써 갈긴 글을 좀 보세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극락에 있다면 나는 튀어나가리.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지옥에 있다면 나는 튀어나가리.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미래의 황금시대에 있다면 나는 아예 가지 않으리>

정말 구제불능이에요.”

 

“오행산 밑에 내처 깔아뭉개두었어야 했어요.

관세음보살이 공연히 빼내서 삼장법산지 뭔지를 수행하라고 하는 통에 풀려났지 뭡니까.

그게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 것들의 한계예요. 물에 빠졌다고 미친 개까지 건져주면 되나요.

선인에게는 선하게, 악인에게는 악하게 대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지요.”

 

나는 우주 곳곳에서 도사 놈들이 이 따위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런 풍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다락 같이 솟구치는 분노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독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바둑판 앞에서 호어 호어 웃으며 이런 말(言)방귀나 뀌는 놈들을 박살낼 수 있다면

나는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힘이 법이며 강자는 존귀하다고 말하는 요마들은 차라리 얼마나 정직한가.

산자수명한 땅에 유유자적하면서 청빈(淸貧)을 달게 여긴다고 말하는 도사 놈들은

실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사기꾼들인 것이다.

훔칠 기회가 없는 도둑은 자신을 착한 사람으로 안다.

이 건달바 도시가 보여주지 않는가.

기회만 주어지면 도사 놈들이야말로 이(利)를 다투는 일에 침식을 잊는다.

 

도사들에 대한 오랜 앙심이 일시에 유환에게 쏟아졌다

…… 이 삼백 년 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말먹잇꾼 놈이라니.

내 이 강아지새끼를!

 

나는 전투가 어떻게 되건 유환만 때리며 쫓아갔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추격전이었다.

불과 관련된 무기를 잘 쓴다 하여 아호를 접화천군(接火天君)이라고 하는 오룡성 유환이었다.

그는 불화살을 쏘고 만아(萬鴉)라는 불까마귀를 날리고 풍차처럼 회전하는 불바퀴를 던지는 등

온갖 재주를 피워댔다.

그러나 나의 여의봉은 모든 투척물들을 잇달아 튕겨냈고 마침내 놈의 뒤통수를 따라잡았다.

 

여의봉을 힘껏 내리치자 유환은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며 뻗어버렸다.

이렇게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스승에게 귀순한 뒤로 항상 살생을 피하라는 잔소리에

전전긍긍했는데 화끈하게 미운 놈을 때려 잡자 온 몸의 피가 기뻐서 탄성을 지르는 듯했다.

 

유환을 처치한 나는 근두운을 돌려 다시 수연사로 날아갔다.

전장에는 어둠의 장막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도 없는 희미한 인광(燐光)이 아직 파괴되지 않은 강시들 주위를 떠돌았고

눈에 띄게 줄어든 게체들은 울부짖으며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다.

 

은빛 눈동자에 검은 머리의 미녀가 날쌔게 움직이며 게체들을 무찌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반짝이는 돌이 총알처럼 하늘로 날아가면 그 때마다 비명이 터지면서

게체들은 부서져 작은 불티로 흩어졌다.

 

등선옥의 오광탄석술(五光彈石術)이었다.

육합성 등선옥이 던지는 오색 빛 돌은 우주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별에서 가져온 특수물질로

생체 에너지를 파괴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등선옥의 돌팔매질은 백발백중. 그녀는 이 오광탄석술 하나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을

저승으로 보내왔다.

 

“요사스런 계집년아! 멈춰라!”

 

나는 여의봉을 풍차처럼 휘두르면서 등선옥의 코 앞으로 뛰어내렸다.

너무 근거리라서 돌을 던질 수 없게 된 등선옥은 허리에 찬 보검을 뽑아 맞섰다.

 

보검이 나의 머리를 내리쳤고 나는 여의봉을 들어 그 칼을 받으면서 역습했다.

나는 계속 숨결이 닿을 듯 가깝게 등선옥을 밀어붙여 오광탄석술을 시전할 거리를 주지 않았다.

십여 합이 지나자 나의 여의봉이 그녀의 어깨를 때렸고 다시 휘두른 일격은

그녀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했다.

나는 그녀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을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 망할 원숭이 놈!”

 

등선옥이 피를 토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나는 여의봉을 높이 쳐들었다가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순간 등선옥의 몸이 사라졌고 나의 여의봉은 땅을 쳤다.

지행술이었다.

팔계, 오정과 싸우고 있다가 등선옥의 위기를 본 칠살성 장규가 재빨리 지행술을 전개한 것이었다.

등선옥을 안은 장규는 번개처럼 도망쳤다.

순간 전장을 누비고 있던 강시들은 무기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우리는 마침내 5시간 동안 계속된 건달바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