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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1 - 오계국을 추슬러놓고

오늘의 쉼터 2016. 6. 27. 16:25

 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1


- 오계국을 추슬러놓고


유환은 죽고 등선옥은 중상을 입었으며 장규는 도망쳤다.

우리의 건달바 전투는 오계국을 막후에서 지배하던 세 도사를 몰락시키고 권력 구조를 변화시켰다.

 

뛰어난 순발력을 자랑하는 신문과 방송들은 곧바로 도사들의 문화산업이 야기했던 사회적 갈등과

‘문화의 타락’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도사들의 전횡을 용납했던 정부의 무능과 정경유착도 고발되었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은 도사들의 잔당을 구속하고 10여 년간 불교를 탄압해온 ‘악법의 철폐’를

선포했다.

 

수연사 항전을 주도했던 혜안의 법난 극복 위원회는 강력한 야당으로 변신했다.

대통령은 도사들이 파괴한 모든 사찰들을 복원하고 삼장법사를 찾아 설법을 듣겠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전투의 상처를 추스리고 있던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가 오계국을 떠나던 날 대통령이 직접 우리를 예방했다.

 

“도사들이 우리 별에 장생불로 (長生不老) 시스템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천상의 발달된 생명공학기술을 가지고 왔어요.

생체의 노화 유전자를 찾아 제거하는 약품인 장생제와 생체분자의 손상을 방지해주는

불로 치료법 같은 거죠.

이런 것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도사들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180세로 늘어났습니다.

공무원 정년도 130세가 되었지요.”

 

대통령은 풀이 죽은 얼굴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제가 대통령으로 취직한 것이 올해로 56년 째입니다.

우리 별에서 대통령들은 선출 직이 아니고 국민들에 의해 공개 채용되는 월급쟁이랍니다.

그 동안 많은 친구들이 정리해고 되었지요.

세금만 까먹는 밥벌레로 낙인 찍혀서 <대통령으로서 개인 생산성이 낮다>는 통고를 받고 짤렸습니다.

다행히 저는 살아남았죠.

정년까지 십여 년 남았는데 부하 직원들과 그럭저럭 마음 맞춰가며 자리만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런 사고가 터졌습니다.”

 

올해 114세라는 오계국 대통령은 두 손을 비비면서 삼장법사에게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법사님, 아무쪼록 우리 불자(佛子)들을 잘 좀 달래주세요.

저 지금 잘리면 여생이 괴롭습니다.

주택 불입금은 잔뜩 남았지, 결혼은 늦게 해서 애들은 대학생부터 아래로 줄줄인데

전직 대통령 연금은 쥐꼬리만 해요.

솔직히 대통령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큰 일은 행성 세계정부에서 결정하고 작은 일은

기업들이 전부 알아서 한답니다.”

 

“겸양의 말씀, 소승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국민들이 채용을 결정한다고 해도 임기가 있는 것 아닌가요?”

 

“임기야 있지요. 그러면 뭘 합니까.

저희 나라 같은 경우는 매년 정월 초하루에 전 국민이 개인용 컴퓨터를 들고 같은

사이트에 접속해서 인사위원회를 열어요.

이 나이에 쫓겨나면 제가 뭘 하겠습니까? 직업안내 사이트에 로그인(log in)도 안됩니다.

그저 선처바랍니다.”

 

대통령의 넋두리를 듣던 스승의 얼굴에 황당하지만 측은하다는 빛이 떠올랐다.

스승은 위의를 엄숙하게 하고 입을 열었다.

 

“각하, 장생불로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만이 좋은 인생이 아닙니다.

사람의 수명이 늘어 180세를 산다고 해도 끝없이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는

실로 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짧은 나날을 문화라는 미명 아래 재미의 환상, 돈의 신기루, 쾌락만을 쫓아간다면

인간은 영원히 고해(苦海)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박한 생활을 통해 선을 행하며, 선행을 통해 좋은 응보를 얻고 마침내는 윤회를 벗어나

참된 평화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법의 가르침입니다.”

 

스승은 이렇게 말을 시작하여 검소하고 욕심 없는 생활과 선행의 의미에 대해,

인간의 업장(業障)과 인과응보에 대해, 그리고 열반에 대해 설법하였다.

이 설법은 텔레비전을 통해 오계국 전역에 중계되었다.

 

스승은 이런 말로 설법을 마쳤다.

 

“모든 종교는 자연의 원시적인 힘을 숭배하는 자연종교로부터,

인간과 자연과 신의 분리가 일어나는 민족종교로, 민족종교로부터 다시 지역을 넘어서

모든 인간의 보편적 구원을 추구하는 세계종교로 발전합니다.

종교의 최고 형태는 우주의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의 구원을 추구하는 우주종교입니다.

불교는 아직 우주종교로서 미흡하며 많은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역의 아미타불에서 지구의 석가모니불까지 많은 부처님들에 의해 실현된 법(法)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의 힘은 무진장하며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부디 불법에 정진하셔서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스승의 설법이 끝나자

우리 일행은 혜안을 비롯한 무수한 불교도들의 환송을 받으며 오계국을 떠났다.

지구에서 가져왔던 허머 지프는 오계국 경찰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많은 총탄을 맞아 고장 났다.

우리는 신도들로부터 오계국의 자동차 ‘나가’를 시주 받았다.

 

나가는 형태가 기후와 환경에 맞게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초고속 자동차였다.

공기 쿠션을 이용해 땅에서 조금 떠서 달리는 이 초고속 자동차는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연화동(蓮花洞)이라 불리는 파드마 행성으로 데려갔다.

은하계 최고의 마법사라 자처하는 금각 대왕, 은각 대왕의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