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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건달바 전투 7 - 죽은척 하시오, 우리가 빼내드릴 테니

오늘의 쉼터 2016. 6. 26. 16:37

제10장 건달바 전투 7


- 죽은척 하시오, 우리가 빼내드릴 테니




“우리를 독살하다니. 누가요?”

 

“이 도시를 지배하는 세 도사들이죠.

오늘 세 분의 밤참으로 나오는 닭 요리에 독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대가리를 문대어 죽일 도사 놈들! 그 놈들이 누굽니까?”

 

“칠살성 장규, 육합성 등선옥(鄧嬋玉), 오룡성 유환(劉環)입니다.”

 

그들은 천상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도력을 가진 일급 도사들이었다.

저주스런 개새끼들.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했다는 것인가?

나같이 선량한 어른이! 나같이 착실한 원숭이가!

 

“도대체 우리가 왜 죽어야 하는 거죠?”

 

“10년 전부터 불교는 이 별에서 불온 사상이 되었습니다.

무소유(無所有), 자비(慈悲), 해탈(解脫) …… 이런 말을 하면 정신병원으로 보내집니다.

승려들은 교화소라고 불리는 강제수용소에 갇혔고 상당수는 신앙을 버리고 환속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삼장법사를 따라 서역을 간다고 하는 여러분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칠살성의 개인적인 원한도 원한이지만 사상 통제에 위험한 인물들이라 처리해버리기로 한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우리를 어떻게 구출한다는 겁니까?”

 

텔레파시의 목소리가 가늘게 이어졌다.

 

“밤참을 변기에 흘려 보내고 비명을 지른 뒤에 죽은 척 하십시오.

심장을 잠시 뛰지 않게 하고 망막을 죽은 사람처럼 가장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식은 죽 먹기 아닙니까?

우리가 시체를 처리하는 직원을 가장해서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팔계와 오정을 불렀다.

우리는 일단 독살 정보를 믿어볼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

나는 텔레파시로 스승을 호출했다.

이야기를 들은 스승은 펄펄 뛰었다.

 

“닭고기를 먹고 죽은 척을 하라고?

내가 계율을 어기고 닭고기나 먹었다는 것을 가장하란 말이냐. 난 못 한다.”

 

“스승님,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닙니다.

참선을 통해서 몸을 가사(假死) 상태로 만들 수 있으시죠?”

 

“그건 어렵지 않다.”

 

“그럼 당장 하세요.”

 

얼마 후 정말 밤참으로 튀긴 닭고기가 배달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변기에 흘려 보내고 한바탕 방안의 기물을 부수며 난리를 쳤다.

간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로비가 술렁거리자 우리 셋은 쓰러져 죽은 척했다.

 

3중으로 된 철문이 열리고 온갖 화기로 중무장한 간수들이 손전등을 비추며 들어왔다.

우리의 맥박을 체크한 간수들은 무전기로 아래층과 연락했다.

의무요원의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들것을 들고 나타나서 우리를 싣고 승강기로

신속하게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의무실을 지나 검시실(檢屍室)에 일단 들것째로 안치되었다.

잠시 후 삼장법사의 시체(?)도 검시실로 내려왔다.

 

“자, 됐습니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빨리 일어나세요.”

 

우리를 데려온 직원들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눈을 떠보니 키가 작은 꼽추 하나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근래에 이렇게 추한 인간은 별로 보지 못했다.

지구의 어떤 소설에 나오는 노틀담 사원의 종치기 사내 같았다.

뻐드렁니에 곰보였고 얼굴은 거무죽죽했으며 목과 손등에는 검은 털이 숭숭 나 있었다.

꼽추는 합장을 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소승은 혜안(慧安)이라고 합니다. 여기를 빠져나갑시다.

여러분처럼 분장시킨 가짜 시체 4구를 준비해 뒀으니 당분간은 추적당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혜안의 안내로 지하 4층 깊이의 하수도로 내려갔다.

하수도를 통해 구치소 구역을 벗어난 뒤 지상으로 나오자 경찰 구급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차에 올라타자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뒷자리의 응급침대에 자리잡은 혜안은 목쉰 소리로 자기 소개를 했다.

그는 오계국의 가장 유서 깊은 절인 수연사(秀蓮寺)의 주지이자

이 별의 남은 승려들로 구성된 법난(法難) 극복위원회 의장이었다.

 

“예로부터 우리 별은 불법을 숭상하여 세상 욕심을 버린 소박한 생활을 찾고

영혼의 해탈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물건이 너무 흔해지고 더 이상 살 것이 없는

격심한 디플레이션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집집마다 자동차에 컴퓨터, 온갖 가전 제품이 다 있어서 도무지 소비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세 도사들이 나타나서 문화 산업을 일으켰어요.

그들은 물질의 소비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영화, 게임, 오락, 스포츠, 테마 파크 같은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 뭐가 문제인지 통 모르겠군요.”

 

“처음에는 우리도 뭐가 문제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문화 산업이란 말의 모순이 드러났습니다.

문화는 산업과 조화될 수 없었어요.

무수한 테마 파크들은 시장 원리 속에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결국 카지노로 발전했습니다.

스포츠는 흥행성이 강한 종목만 살아남았습니다.

오락산업은 한창 공부할 아이들을 사로잡아서 새로운 문맹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승려들이 일어났지요.

우리는 전통적인 신앙심에 의지해서 사람들에게 호소했어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무명(無明)의 진흙탕을 헤매지 말라고요.

결국 우리 승려들은 도사들의 사업을 방해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 후 이 갈등은 두 종교의 전쟁으로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이 전쟁의 막바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