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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야마 행성 8 - 팔계가 삼장법사를 업고

오늘의 쉼터 2016. 6. 26. 15:50

제9장 야마 행성 8


- 팔계가 삼장법사를 업고




흡혈귀들이 삼장법사와 저팔계의 쇠사슬을 거칠게 풀었다.

나는 스승의 머리에서 몸을 날리면서 모기에서부터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얼굴 셋에 팔 여섯의 커다란 전투형 원숭이로 변신했다.

 

두 녀석을 화안금정(火眼金睛), 눈동자의 붉은 광선으로 녹여버리고,

한 녀석은 목을 비틀고, 남은 두 녀석은 여의봉을 내리쳐 머리통을 부셔버리고 말았다.

삽시간에 흡혈귀 다섯을 처치한 나는 의식을 잃고 있는 저팔계를 흔들어 깨웠다.

 

“형, 먹을 것 좀 줘. 배가 고파서 눈 앞이 어지러워.”

 

“바보, 여긴 흡혈귀들의 식품 창고야. 네가 잡아 먹힐 판이란 말야.

여기만 나가면 흰 쌀로 밥을 지어 배터지게 먹여 줄께.”

 

빠져나가려고 바깥의 동정을 엿보는데 삼장법사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오공아, 우리만 달아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니.”

 

“오지랍도 넓으십니다. 지금 남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어요?”

 

“내가 죽더라도 남을 살리는 것이 보살행(菩薩行)이라고 하지 않느냐.

보살행의 기쁨은 마치 이탈리안 드레싱에 양상치를 넣어 만든 샐러드를 머리 위에 붓는 것 같고

에비앙 생수 같은 감로수가 마음을 적시는 것 같다.

꽉 닫혀 있던 크로와상 빵집이 오전 8시에 활짝 열리는 느낌이란다.”

 

나흘을 굶은 삼장법사의 설법에는 이상한 비유들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삼장법사는 신랄한 소리를 했다.

 

“옛날에 나의 수제자로 건곤만리(乾坤萬里)를 놀던 원숭이가 있었어.

혼자서 천상 36개 사단과 싸우기도 했지. 혹시 그 제자 소식을 모르느냐?

그 아이라면 흡혈귀 따위에게 벌벌 떨지 않을 텐데.”

 

이런 소리를 듣자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여의봉을 도끼로 바꾼 나는 흡혈귀의 먹이로 잡혀온 사람들의 족쇄를 차례로 찍어 풀어주었다.

풀려난 사람들은 모두 30여 명이 넘었다.

 

우리는 업금강을 피하려고 지하광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깨진 돌과 균열투성이의 암반을 횡단하여 우리는 점점 더 캄캄한 나락 속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통로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나는 발이 얼어붙었다.

 

깊은 강물 같은 어둠 속에 관화(觀火)놀이 배 같은 점점의 불빛들이 있었다.

불처럼 밝게 어른거리는, 그러나 불은 아닌 그 무엇인가가 어둠의 나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업금강 흡혈귀들이었다.

 

호랑이 한 마리를 피하려다 호랑이 소굴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가지고 온 적외선 지형 탐지기와 나침반을 볼 때

또 다른 출구는 이들의 소굴 건너 편에 있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기어서 업금강들 옆을 통과했다.

 

그러나 업금강의 혼이 가진 에너지는 너무 강력해서 그들이 꾸는 꿈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갑옷을 입은 해골의 무리가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불타는 칼에는 갓난애들이 꿰어져 있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독사들이 사람들을 향해 독을 토해내었고 하늘에서 독거미와 독두꺼비의

비가 쏟아졌다 ……

결국 한 아낙네가 소리를 지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뛰어! 도망치라구!”

 

팔계가 삼장법사를 엎고 나는 듯이 달렸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그 뒤를 쫓아갔다.

나는 맨 뒤에서 여의봉을 휘둘러 통로의 암벽을 부쉈다.

 

그러자 깨진 바위와 암반의 무더기 사이에서 하나 둘 주황색 불꽃들이 나타났다.

업금강들은 본질적으로 물질에 구애 받지 않는 에너지 생물인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업금강들은 불꽃 속에서 각양각색의 기괴한 모습으로 각자 자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기괴한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번개창을 든 아수라 종족도 있었고 거대한 발톱과 독수리 머리를 가진 인간 형상의 괴물도 있었다.

내가 여의봉을 휘두르자 선두에 나타났던 괴물이 비틀거리며 후퇴했다.

나는 놈들이 한꺼번에 덤빌 수 없는 좁은 구석자리로 이동해서 다시 얼굴 셋에 팔 여섯의

전투형으로 변신했다.

 

한 놈이 손바닥을 들어 핏빛으로 물든 안개를 날렸다.

무거운 투척무기들이 잇달아 날아왔고 초음파의 음공(音功)이 가해졌다.

나를 향해 날아오다가 옆으로 튕겨나간 번개가 동굴 속에 처절한 불바다를 만들었다.

나는 좁은 공간을 이용하여 어떤 때는 쐐기를 박듯,

어떤 때는 창으로 찌르듯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몇 명의 적을 쓰러뜨렸지만 상대는 꾸역꾸역 끝도 없이 나타났다.

삼매신풍이 휘몰아쳐서 자주 눈을 감아야 했다.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이 때 한 업금강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하얀 백열광 같은 빛의 맥동(脈動)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업금강들이 황급하게 움직이며 반격했지만 더 많은 비명 소리가 일어났다.

마침내 흡혈귀들은 일제히 도망쳤다.

 

“큰 형, 이리 나와. 삼보정풍주를 가져 왔어.”

 

쇠사슬에 둥글고 큰 구슬이 달린 막대기를 든 사오정이 보였다.

넓은 통로에는 삼보정풍주를 맞고 박살이 난 흡혈귀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우리는 어두운 통로를 더듬어 햇볕 쏟아지는 벌판으로 나왔다.

밖에는 삼장법사와 저팔계가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부축했다.

재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번개에 맞아 피가 나는 목을 만지며 말했다.

 

“빨리 떠나자. 이 흡혈귀 행성 정말 지긋지긋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