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야마 행성 6
- 염마신전 들어간 손오공, 대장흡혈귀와
검은 돌기둥들이 있는 언덕을 넘어가자 저지대가 나타났다. 북쪽과 서쪽은 물살이 빠른 강,
남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저지대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원형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무덤처럼 둥근
반원의 형태를 한 그 건물은 담을 쌓은 돌 하나 하나가 어른의 키만큼 컸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은 상태로 정교하게 맞물려 쌓아 올린
것이었다.
“염마 신전이다.”
창문이 없는 건물 아랫쪽에 검은 철문 하나가 달려 있었다. 높이는 사람 키의 세 배, 너비는 그 반 정도였다. 우리가 내려가자 철문 앞을
지키고 있던 흡혈귀들이 달려들었다. 땅으로 내려서려다가 칼을 맞을 뻔한 나는 분노가 다락처럼 뻗쳤다.
“이 되바라진 요괴 놈들아! 제천대성 손오공 선생을 모르느냐?”
돌기둥만큼 확대한 여의봉을 파리채처럼 휘두르니 야마 신전이 통째로 부숴졌다 칼질을 하던 흡혈귀들은 여지 없이 피와 살과 뼈의 파편이 되어
땅바닥에 으깨어졌다. 다시 여의봉을 휘둘러 건물과 시체의 잔해를 쓸어버리자 지하로 뚫린 계단이 나타났다. 그 안은 칠흑같이 캄캄했다.
오정은 헝겊과 나무들을 솜씨 좋게 잘라서 금방 수십 개의 횃불을 만들었다. 그리곤 허리춤의 압축캡슐을 열어 날이 휘어진 환도(環刀)
2자루를 꺼냈다. 환도를 하나씩 들고 계단을 내려가자 솜에 물이 스며들듯이 어둠이 밀려왔다.
계단의 밑에서 우리는 몸을 바짝 구부려야 했다. 서 있는 곳의 높이가 1미터 남짓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길은 외길이었고 내리막이었다. 백
보 정도를 전진하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천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있었다.
순간 피가 목구멍을 타고 거꾸로 치솟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흡혈귀들이 달려들었다. 횃불을 들이대자 흡혈귀들의 칼,
창, 도끼, 단검이 어지럽게 번득였다.
공력을 불어넣자 내가 쥔 칼은 불이 되었다. 불은 종횡무진으로 날아다니며 피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오정이 내 옆을 엄호했다. 산지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흡혈귀들의 목, 몸통, 손, 발, 팔, 다리가 잔디 절삭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 풀잎처럼 날아갔다.
전투의 소음이 끝났을 때 우리의 발 밑은 시체의 산이었고 피의 바다였다. 우리는 광막한 어둠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다시 치켜 든
횃불만이 어둠을 갈랐고 내가 흡혈귀의 분리된 머리통을 밟아 터트리는 소리만이 수천 조각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흡혈귀들이 어두운 곳으로 달아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바다처럼 망망한 어둠 속을 전진했다. 그 때 갑자기 눈 앞에서 거대한 주황색의 불꽃이 일어났다. 불꽃 속에는 탈색한 뼈로 조각한
것처럼 희고 생기가 없는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해골 같은 얼굴에서는 강렬하게 빛나는 녹색 눈동자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도 상대를 노려보며 다가갔다. 하얀 얼굴은 붉은 얼굴로 변했다가 마지막에는 녹색으로 변했다. 얼굴이 변색할 때마다 맥박치고 뒤틀리는
불꽃이 더욱 강해지면서 우리를 향해 불길을 널름거렸다.
연화금강을 지휘하는 카르마 헤루카, 업금강(業金剛)이었다. 지옥 흡혈귀들의 대장 업금강은 거세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손오공이라는 놈이 어느 놈이냐?”
내공이 담긴 그 목소리는 채찍처럼 우리를 후려갈겼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틀거렸으나 곧 지지 않고 외쳤다.
“네 놈의 손(孫) 외조부님은 여기 계신다. 업금강, 이 피 빠는 도둑놈아, 빨리 우리 스승과 팔계를 내놔라.”
“가증스러운 놈! 나는 네 놈의 스승인가 뭔가를 아직 잡아 먹지도 않았는데 네 놈은 무도하게 내 아이들을 쳐죽였겠다.”
“헤헷, 원래 죽은 놈들인데 또 뭘 죽였다고 지랄이야. 네 놈들은 원래 남의 피를 먹고 걸어 다니는 시체들이잖아.”
업금강은 카악 소리치며 날카로운 작살을 찔러왔다. 나는 칼을 버리고 여의봉을 뽑아 작살을 퉁겨내었다. 그리고 몸을 솟구쳐 놈의 정수리를
노렸다. 오정도 채찍을 뽑아 놈의 아랫도리를 공격했다.
업금강의 힘은 대단했다. 오정과 내가 합공하여 싸우기를 삼십여 합에 이르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져서 승부를 서둘렀다.
신외신(身外身)의 술법을 써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난 뒤 한 주먹의 털을 뽑아 입에 넣고 씹었다.
“클론!”
분신의 주문을 외치며 털을 내뱉자 털들은 백 명 가량의 작은 원숭이가 되어 업금강을 에워쌌다. 원숭이들은 주위에 흩어진 돌을 주워 들고
업금강을 맹렬히 공격했다. 이것은 나의 실수였다.
업금강이 손가락을 묘하게 구부려 인(印)을 만들면서 주문을 외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바람이 일어났다. 나는 아차 하며 혀를
깨물었다. 업금강의 특기라고 알려진 삼매신풍(三昧迅風). 나도 밀려날 정도의 강풍이었다. 낙엽처럼 날려간 작은 원숭이들은 날카로운 바위가
튀어나온 동굴 천장에 부딪혀 죽거나 크게 다쳤다.
무슨 수를 쓸 겨를도 없이 업금강은 내 얼굴을 향해 바람을 몰아쳤다. 바람에 무엇이 섞인 것일까. 순간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파오면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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