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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건달바 전투 2 - 저희 흡혈귀들을 살려주십시오, 법사님

오늘의 쉼터 2016. 6. 26. 16:09

 제10장 건달바 전투 2


- 저희 흡혈귀들을 살려주십시오, 법사님




나는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현실의 시공간이 아니었다.

나의 몸도 진짜 몸이 아니었다.

나는 필사의 투지를 끌어올려 외쳤다.

 

“이 마귀 대가리 놈아! 잘도 네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내 정신의 에너지는 육체의 뇌수와는 독립된 곳에서 프로펠러처럼 맹렬하게 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상대방을 향해 내던졌다.

흡혈귀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터졌고 순수한 에너지의 분류(奔流)가 나를 향해

날카로운 창끝 같은 일격을 가해왔다.

나는 그 힘의 일부를 튕겨냈지만 일부는 흡수했다.

그러자 나는 격심한 통증을 느꼈고 혼란에 빠졌다.

 

이 싸움은 잠을 자고 있는 내 육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다.

이런 싸움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순간 흡혈귀들이 나를 포위하고 협공을 가해왔다.

 

“이 풋내기 녀석아! 뻗어라! 그만 자란 말이다!”

 

거대한 정적이 찾아왔다.

눈 앞은 캄캄해졌고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잠깐씩 어둠의 장막이 열리면서 단편적인 영상(映像)들이 보였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집안의 복도를 달려가고 있었다.

팔계와 오정이 각기 무기를 겨누며 뭐라고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한 상인이 피범벅이 되어 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삼장법사가 보였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 앞이 다시 환해졌다.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없는 빈 허공에 떠 있었다.

그런데 나를 포위했던 흡혈귀들의 불꽃이 현저히 오그라들어 있었다.

나의 머리 위에는 순수하고 투명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흡혈귀의 불꽃이 꿈틀거릴 때마다

그 투명한 불꽃은 해일(海溢)과 같은 에너지를 퍼부었다.

이윽고 흡혈귀들은 저항을 포기했다.

놀랍게도 그 투명한 불꽃 속에는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 말했다.

 

“너희들은 인연의 수레바퀴를 벗어난 자들이다.

너희들은 육체를 가질 자격이 없다.

어서 이 원숭이의 육체에서 떠나라.”

 

삼장법사의 영혼이 나를 구하기 위해 내 육체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삼장법사는 계속 흡혈귀들을 압박했다.

 

“너희들은 지옥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너희들의 이름은 아집(我執). 갑자기 물질로 변해서 자기가 생명체인지,

유령인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너희들은 시체에 깃들어서 흡혈귀가 되었고 빙의(憑依)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피를 빨지만 영혼은 없어. 다만 물질화된 정보야.”

 

흡혈귀 하나가 헐떡거리며 외쳤다.

 

“그렇게 말한다면 너희 인간도 물질화된 프로그램이다.

DNA의 유전자 정보가 자궁의 복제 시스템으로 물질화한 것이야.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면 너희도 없다.”

 

“인간이 되기 위해선 아집을 깨고 연기(緣起)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가족들, 거리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

어렸을 때의 기억, 미래의 예감. 이런 것들이 인간이다.

타인의 절멸을 통해서 살아갈 수 있는 너희들은 아니야. 당장 나가라.”

 

“이 더러운 비구니 년! 진작 잡아먹었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육체의 옷을 두르고 있을 때는 내가 약하지만 영계(靈界)에서는 너희들이 나를 이길 수 없다.

나는 수십 번의 전생을 겪으며 거듭 공덕을 닦은 최종 수행자다.”

 

그 순간 흡혈귀의 무리들은 최후의 기습을 시도했다.

거대한 박쥐로 변한 그들이 무시무시한 발톱을 휘두르면서 일제히 삼장법사를 업습했던 것이다.

 

“못된 놈들! 나의 힘을 보라!”

 

두 눈을 질끈 감고 정신력을 집중한 삼장법사가 두 팔을 양 옆으로 뻗었다.

가까이 엄습했던 흡혈귀들은 산산조각이 나서 푸르스름한 불티를 흩뿌리며 떨어졌다.

약간 떨어져 있던 흡혈귀들은 가랑잎처럼 날려가 작디 작은 불티로 응축되었다.

 

“살려 주십시오. 법사님 …… ”

 

잠시 후 불티 하나가 떨면서 애원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작살을 휘두르며 삼매신풍을 일으키던 흡혈귀임을 알 수 있었다.

 

“저는 이 업금강들의 우두머리 보생(寶生)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 우주에서 생을 받은 모든 것들에게 자비를 베푼다고 하지요.

우리도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들입니다.”

 

“보생아, 불법(佛法)은 무변광대하지만 천지는 간악한 무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살려주면 너희가 어디로 가겠느냐? 또 시체 속에 들어가 흡혈귀가 될 것이다.

너희들을 살려주면 다른 생명을 해치게 된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갈 곳이 없습니다.”

 

삼장법사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삼장법사는 나를 데리고 흡혈귀들의 불꽃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우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서역 행성으로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이라는

불법(佛法)의 프로그램을 가지러 가는 길이다.

만약 너희들이 우리를 도와준다면 나는 극락에서 너희들에게 맞는 인연을 구해주겠다.”

 

“그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어떻게 법사님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에너지를 가진 프로그램이 아니냐?

보이지 않으면서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번개를 퍼부을 수도 있다.

너희들은 정찰을 하고 보초를 서고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는 우리의 동맹군이 되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