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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야마 행성 5 - 폭약화살을 맞은 네 흡혈귀들은

오늘의 쉼터 2016. 6. 26. 15:33

제9장 야마 행성 5


- 폭약화살을 맞은 네 흡혈귀들은



말을 마친 대머리 노인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노인은 얼핏 농부처럼 보였다.

손등은 검고 손마디는 굵었으며 햇빛에 그을리고 바람에 패인 주름살이 얼굴에 가득했다.

세월의 풍상을 온 몸으로 겪은 뒤 대지의 흙빛으로 돌아간 농부의 텁텁함이 온 몸에서

배어나고 있었는데 그 말씨만은 식자(識者)의 분위기를 풍겼다.

 

“여러분, 여기 원숭이 스님께 신전의 위치를 누설해서 나는 불경한 자가 되었습니다.

곧 저승사자들이 와서 나를 잡아가겠지요.

이왕에 죽을 목숨, 그 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이나 하겠습니다.”

 

노인은 스스로 감정이 격앙된 듯 두 눈을 부릅뜨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나무 등걸 같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옛날에 신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모여 있는 이 상점 건물만 해도 과거에는 바알 샴마이 신,

즉 ‘사랑으로 인간이 되신 하늘의 주님’이라는 신을 모시는 사원이었습니다.

신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기 쉬운 말로 가르쳐 주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차츰 신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다양하고 다양해야 한다. 모든 인간이 가슴 깊이 하나의 신을 모시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떠들었지요.

이런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결국 사람들은 신앙을 버렸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이 퇴락한 사원의 마지막 사제(司祭)입니다.

신도들이 발길을 끊은 뒤 나는 낮에는 선생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사원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원은 팔려 상가로 변했고 나는 농부가 되어 이 마을에 머물렀습니다.

바깥 세상은 화려해졌고 유행만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신앙을 버린 사람들은 다양함을 찾아서 영원히 팽창하는 불처럼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자기와 다른 존재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것에서도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악함이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게 되자 양심을 가지고는 향유할 수 없는 쾌락을 누리는

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잡아가서 피를 빠는 흡혈귀 저승사자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 ”

 

노인의 말은 악 하는 외 마디 소리로 이어졌다.

다음 순간 번쩍 하고 심상치 않은 빛이 비치면서 노인의 몸이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수직으로 반 동강 났다.

온 몸이 딱 갈라지며 벽처럼 허물어지는 노인이 붉고 뜨거운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양떼처럼 한쪽으로 쏠리며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

 

현란한 눈속임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불가사의한 지옥의 저주로 여겨졌을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오정과 나는 노인이 쓰러지기 직전 희미한 파공성을 들었다.

이지개천적(離地開天笛). 벽을 뚫고 들어가는 초음파를 이용해 몸을 조각 내버리는 절교의 무기였다.

 

“어떤 뒈질 놈들이 이 손 선생 앞에서 장난치느냐!”

 

방을 뛰어나가자 담장 밖에서 재빨리 몸을 감추는 자들의 기척이 들렸다.

공기를 가르며 달아나는 소리가 벌판에서 만났던 그 흡혈귀들이었다.

나는 털 하나를 뽑아 손잡이가 달린 석궁(石弓)으로 바꾸며 담장 위로 몸을 날렸다.

 

검은 장삼을 입은 네 개의 그림자들이 서쪽으로 나는 듯이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석궁의 발사장치에 폭약이 달린 화전(火箭)을 매기고 앞 뒤 생각할 것도 없이 연거푸 화살을 날렸다.

겨냥은 어김없이 흡혈귀들에게 명중하여 넷은 잇달아 폭발해버렸다.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놈들이군.”

 

담장 위로 올라온 사오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들은 몽둥이로 때리거나 칼로 찔러서는 죽지 않아.

육체를 옷처럼 두르고 있지만 녀석들의 본질은 육체 안에 있는 에너지의 덩어리이기 때문이지.

목을 밴 뒤에 머리를 박살내거나 지금처럼 폭약으로 산산조각을 내버려야 해.”

 

“죽은 대머리 노인의 말 들었지? 죽을 때까지 타인의 피를 빨아서, 타인의 파멸을 근거로 해서

살아가는 종족이라니 …… 난 저 녀석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것 같아.”

 

“저 녀석들? 당연히 지옥 은하계에서 왔지.”

 

“큰형, 이 세상의 대부분은 환영(幻影)에 불과하지만 그 환영의 형태는

신성한 현실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패턴을 반영하고 있어.

유일하게 존재하는 신성한 현실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불성(佛性)이고.

지옥은 이 은하계 저편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도 존재해.

스승님께서 모든 것이 <겹쳐져 있는 세계>라고 말씀하셨잖아.

저 흡혈귀들은 초공간의 재앙으로 나타났지만 흡혈귀들이 나타날 씨앗은

모든 가치를 불신하게 된 이 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었어.”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야마 신전의 위치를 알았으니 빨리 가보자고. 스승과 팔계가 피 빨려 죽기 전에.”

 

오정과 나는 구름을 타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가자 과연 언덕 꼭대기 무너져 내린 야트막한 돌담 안에 높이가

십여 미터나 되는 검은 돌기둥들이 서 있었다.

돌기둥들은 흡사 땅을 뚫고 솟아나온 거대한 손가락처럼 보였다.

그 야릇한 구조물은 마치 이 세계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