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야마 행성 3
- 이놈들이 우릴 유인하고
나는 몸통에서 분리된 놈의 머리를 밟아 부숴버렸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놈의 머리통을 뇌수와 피와 살점의 덩어리로 짓이겨버린 뒤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도대체 이 괴물은 뭐야?”
사오정은 땀을 흘리고 헉헉대면서 내게 물었다.
“파드마 헤루카, 연화금강이라 불리는 지옥의 흡혈귀야.”
순간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에 가까운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스승님이 위험해!”
오정은 이심전심으로 나의 불안을 알았다.
우리는 눈썹이 휘날리게 뛰었다.
만약 이 행성의 주민이 우리를 보았다면 휙 스쳐가는 바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단숨에 지프까지 돌아온 우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게 4톤의 허머 지프가 내동댕이쳐진 관처럼 바퀴를 하늘로 쳐들고 뒤집어져 있었다.
유리가 산산히 깨어진 지프 안에는 팔계도, 삼장법사도 없었다.
나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입에서 연기가 날 지경이었다.
“이 뽕쟁이 모기 같은 자식들이 우릴 속였어! 우릴 유인하고 스승님을 채갔다고! 에라잇!”
나는 홧김에 지프를 부숴버리려고 했다.
오정이 사색이 되어 말렸다.
나는 분을 풀 수 없어 애꿎은 땅바닥을 두들겨 팼다.
여의봉이 떨어진 곳마다 흙이 5, 6미터씩 꺼지면서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내가 광태를 부리고 있는 동안 오정은 앞 범퍼를 잡고 끙끙대며 지프를 제대로 돌려놓았다.
“큰형,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오정이 참으로 막막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내가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한시바삐 스승님과 팔계를 구해야지. 둘의 생명이 위험해.”
말은 쉬웠지만 캄캄한 밤중이었고 여전히 심한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길도, 나무도, 산도, 하늘도, 지표가 될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프 바닥에 뒹굴고 있는 사오정의 노트북을 들고 지도를 클릭했다.
과연 뭔가 이상했다.
이제까지는 정확하게 여로를 지시해주던 은하계 상세지도가 이 별에서는
어처구니없이 틀린 지형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사오정, 이게 어찌된 일이지?”
“초공간의 재앙이 일어난 뒤 은하계의 네트워크가 더 이상 접속할 수 없는 행성들이 생겨났어.
야마 행성도 그 중의 하나인데 접속이 끊긴 사이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서 산골짜기가
평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지.”
“그럴 확률은 거의 없어.”
“물론. 다른 가능성은 컴퓨터 고장이지.
그게 아니라면 시공간의 구조를 바꿔놓을 만큼 엄청난 기(氣)를 가진 요마가
이 별에 침입하는 바람에 초공간의 출구가 변해버렸거나.”
갑갑한 침묵이 흘렀다.
사오정도 나도 마지막 추리가 해답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 빌어먹을 야마 행성은 대체 어떤 별이냐?”
“야마라는 이름은 고대 신화에서 나왔어.
아득한 옛날 은하계가 천교(闡敎)와 절교(截敎)라는 두 세력으로 갈리어
종교 전쟁을 치렀을 때 염마달마(閻魔達磨), 혹은 염라대왕이라 불리는
절교의 명장 야마 타르마 장군이 이 별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해.
그 뒤 절교는 전쟁에서 패했고 그 잔당들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우주로 도망쳐서
나라카(지옥) 은하계를 만들었지.”
“이 별의 문명은 어느 정도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워. 이 별의 지적 생명체는 인간과 나찰,
야차 등 다양해. 문명도 지구로 치면 21세기부터 기원전 10세기까지 아주 다양하게 병존하고 있어.”
“왜 과학 문명이 발달한 지역이 미개한 지역을 병합하지 않지?”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야마의 힘이라고 부르는 것 때문일 거야.
야마 타르마가 죽을 때 자신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을 한 집단에게 전수했다는 전설이 있어.
이 힘을 가진 집단이 미개한 대륙에 있어서 과학 기술이 발달한 대륙의 영향력을 막고 있어.”
“야마는 우주의 많은 별에서 죽음의 신으로 숭배되고 있어.
야마의 힘이란 아까 우리가 만난 흡혈귀와 관련된 것일 거야.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다니는 시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흡혈귀란 죽음의 신이 관장해야 할 존재일 테니까. ”
그 때였다. 비바람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천 마리의 악마가 소리지르는 듯한
비명 소리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평범한 지구인이라면 머리칼이 뻣뻣하게 일어서고 심장의 박동이 멎어버릴 법한 소리였다.
“근두운!”
나는 벽력처럼 소리를 지르며 비명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렸다.
충직한 근두운은 수억 만리 이 별에서도 주인 앞으로 달려왔다.
사오정도 자신의 선운(仙雲)을 불러 올라탔다.
그런데 눈에 불을 켜고 살폈지만 아무리 날아가도 비명소리가 들렸을 법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막막하기만 하던 광야가 끝나고 산이 나타났다.
우리는 언덕을 건너지르고 고개를 뛰어넘으며 스승과 팔계의 자취를 찾아 헤매었다.
너무 캄캄한 지라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낮은 고도를 날다가 산봉우리와 정면충돌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나의 눈에 희미한 불빛 몇 개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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