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야마 행성 4
- 염마신전 저승사자들에 잡혀갔다고!
불빛이 비치는 곳을 살펴보니 작은 마을이 있었다. 아치형 대문을 가진 번듯한 석조 건물을 중심으로
몇 채의 벽돌집이 있고 그 주위로 백 채 가량의 오두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오정과 나는 가까운 오두막집으로 내려가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전염병에 포위당한 마을 같은 유폐(幽閉)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덧문이 닫힌 가게의 창문에는 붉은 그림의 부적이 붙어 있었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길에는 찌그러진 술통이 굴러다녔다. 우리는 석조 건물로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지나가는 행각승들입니다.”
석조 건물은 과거에는 어떤 신을 예배했던 사원 같았다. 높이 솟은 첨탑 위에는 쇠로 만든 종이 달려 있고 높고 길쭉한 창문에는 먼지가 끼어
알아볼 수 없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상가로 쓰이는 듯 지저분한 천으로 가려놓은 좌판들이 1층 처마 밑에 보였다. 잠시 후 문이 삐걱
열리고 심부름꾼인 듯한 소년이 나타났다. 인간 종족이었다.
“어린 시주님, 우리는 먼 동쪽 지구에서 서역 행성으로 가는 승려들이오. 벌판에서 변고를 만나 스승과 동료를 잃었소이다. 주 인장을 만나
길을 좀 물어보려 하니 안내를 좀 부탁하오.”
오정이 깍듯이 두 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년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약간 놀랐지만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스님들, 저로선 뭐라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전 청소나 하고 잡일을 맡아 보는 심부름꾼이니까요. 주인님께 여쭤보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심부름꾼 소년은 급히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심술궂게 생긴 중년의 거한(巨漢)과 함께 되돌아왔다. 퉁방울 눈으로 우리를 흘긋 쳐다본 주인은
소년의 머리통을 때리며 버럭 화를 내었다.
“이놈아! 지금 때가 어느 때라고 나그네를 들인단 말이냐! 보나 마나 숙소를 빌리러 온 떠돌이 중들인데 어디 처마 밑에라도 쫓아서 웅크리고
있게 해!”
말을 붙여볼 사이도 없이 주인은 문을 쾅 닫고 빗장을 굳게 잠갔다. 닫힌 문 안에서 소년을 윽박지르는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치 없는 놈, 이런 하찮은 일까지 일일이 내게 알리지 마. 알았어?”
역시 착한 스님 노릇은 내 팔자에 없었다. 나는 뒤로 열 걸음쯤 물러났다가 달려가 어깨로 대문을 들이받았다. 쾅 하고 빗장이 부러지면서
쇠장식을 박은 두터운 나무문이 벌컥 열렸다. 주인과 심부름꾼 소년이 기겁을 하고 나자빠졌다. 나는 주인의 멱살을 거머쥐고 번쩍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곤 주인의 몸을 흔들면서 벼락치는 소리로 외쳤다.
“지금이 어떤 때란 말이냐? 우린 지나가는 중들이지만 사정을 좀 알아야겠다.”
소란을 들은 집안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 나는 주인을 내려놓고 귓속에서 여의봉을 뽑아 마당 축대 앞에 놓여 있는 돌사자를
겨누었다. 탁! 하고 한 번 치니까 돌사자는 가루가 되고 말았다.
“가만 있지 않으면 모두 이 꼴을 만들어 버리겠다.”
내가 물러나자 사오정이 공손한 얼굴로 달려들어 주인을 부축했다. 오정은 짐짓 나를 나무라면서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주인을 안심시킨 뒤
벌판에서 우리가 겪은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주인은 후욱 하고 한숨을 쉬며 처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 검은 옷을 입은 귀신은 염라대왕님을 섬기는 저승사자가 틀림없습니다요.”
“촌무지랭이들 같으니. 이 대명천지 밝은 은하계에 염라대왕이 어디 있다는 거야.”
내가 혀를 차며 퉁을 주자 주인은 펄쩍 뛰며 손을 흔들었다.
“이 나라에 염마 신전이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동지와 하지가 가까운 보름날, 염라대왕님을 섬기는 저승사자들이 신전을 나와
불경(不敬)한 자들을 잡아갑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 있답니다.”
“좋아. 그 신전이 어디 있어?”
“그건 저도 모릅니다.”
후환이 두려운 주인은 죽어도 모른다는 태도로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가서 건물의 현관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천장이
낮고 넓은 방 안에 사람들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친 벽에 붙은 긴 의자와 선반 위에
심지어는 바닥 위에도 앉아 있었다. 마을 사람 전부가 그곳에 모인 것 같았다.
커다란 벽난로에 타고 있는 불빛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 뒤틀린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누구 염마 신전으로 가는 길을 좀 가르쳐 주시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는 도리 없이 다시 여의봉을 휘둘러 벽을 부수며 위협했다. 그러자 야윈 얼굴의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대머리에 가까운 흰 머리에 수염도 하얀 늙은이였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소인이 말하지요. 여기서 서쪽으로 사백 리 가량 가면 땅을 뚫고 나온 거대한 손가락 같은 검은 돌기둥이 몇 개
솟아 있습니다. 돌기둥 뒤에 창문 하나 없이 나지막한 문 하나만 달려 있는 신전이 있습니다. 그 신전 안에는 기나긴 지하 미로가 있어서 땅 속
끝까지 뻗어 있다고 합니다. 저승사자들은 거기서 나와서 사람들을 잡아가는데 잡혀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해요. 모든 것이 이 별의
업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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