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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가자 서역으로 1 - “시간을 되돌려라”

오늘의 쉼터 2016. 6. 26. 09:59

제8장 가자 서역으로 1


- “시간을 되돌려라”


정신을 차리자 눈 앞에는 삼장법사가 서 있었다.

좌우에는 저팔계와 사오정, 우마왕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숲 속의 산길이 펼쳐진 주변의 풍경과 햇살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13세기 지구에서 엘로이즈를 만나고 봉래 행성으로 가서 아들을 낳고 대통령이 되고

낙원을 건설하고 멸망했다. …… 불과 1, 2분 정도의 시간이었던 것일까?

삼매경 속으로 들어간 나는 수 세기의 기억을 헤매 다녔다.

 

“큰형, 이 바위에 좀 앉아요.”

 

온 몸이 땀에 젖어 탈진해버린 나를 사오정이 부축했다.

양손을 축 늘어뜨리고 통나무처럼 서 있던 나는 녹고 있는 눈사람처럼 흐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바위에 걸터앉아 두 세 번 심호흡을 하자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지옥의 미로를 통과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오정이 어딘가에서 한 바가지의 약수를 가져왔다.

입 안에 흘러 드는 차가운 물맛이 방금 끝마친 초감각적인 여행의 충격을 가라앉혀 주었다.

 

“모든 것이 그대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야.”

 

삼장법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내 안의 무언가를 깨뜨렸고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대는 천상을 호출하는 수정구슬에 소원을 말했지.

그대 행성의 영원한 경제 성장을 빌었어.

검은 별은 그 소원 때문에 나타난 거야.

그대의 맹목적한 행동주의가 흡족할 만큼 경제가 개발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했어.”

 

나는 분함을 참지 못해 소리쳤다.

 

“내가 원한 건 경제 성장이었지 내 행성의 폭발이 아니었어요.”

 

“행성은 그대들 스스로 가진 핵폭탄과 양자 폭탄으로 폭발했어.

그대들은 완전 소멸의 가능성을 안고 있으면서 끝없는 성장의 불만에 싸여 있었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은하계를 둘러 보게. 아승기겁(阿僧祇劫) 세월 동안 많은 별들이 문명을 꽃 피웠지.

그러나 지금 지구와 가까운 항성계에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네.

우주는 그대의 행성처럼 한 단계 나은 문명으로 나아가려다가 불만과 조바심 때문에

멸망해버린 별들의 폐허로 가득 차 있어.”

 

“그건 악랄한 천상의 음모였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되살아난 내 기억의 끝부분을 들려주었다.

봉래 행성이 폭발했을 때 나는 가장 가까운 초공간의 구멍으로 도망쳤다.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 지각이 붕괴될 때부터 행성이 산산조각 나서

우주의 먼지로 날아가버리기 직전까지의 불과 몇 십 초 동안이었다.

나는 아무 생명체도 없는 별과 별을 헤매며 며칠을 울었다.

아니 몇 달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슬픔이 가라앉자 검은 별이 출현한 시점이 내가 천상의 수정구슬에 소원을 빈 직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분연히 근두운에 올라타고 천상을 향해 날아갔다.

천상에는 천군(天軍)의 통수권자요,

흑수하 같은 치명적 파괴 무기의 최고 책임자인 옥황상제가 있었다.

나는 원한에 사무쳤고 천상의 권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천상에 이르자 곧바로 옥황상제가 사는 ‘황금 구름의 궁전 도시(金闕雲宮)’로 날아갔다.

앞을 가로막는 도사와 신장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죽이고 영소전(靈 殿) 담장을 뛰어넘은 나는

후원을 산책하고 있는 옥황상제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나는 무수한 경비병들에게 포위된 채 옥황상제의 목을 조르며 외쳤다.

 

“이 늙은 대가리 놈아! 당장 초공간을 열어 시간을 되돌려라.

네 놈의 검은 별 때문에 죽은 내 처자식을 되살리란 말이다.

빨리 못하겠다면 네 가죽을 벗기고 살코기를 추리고 뼈를 핥고 심장을 씹어주마.”

 

“제천대성, 초공간을 통한 시간여행은 실(實)시간에서 허(虛)시간으로의 여행이야.

과거에 잠시 머물 수 있고 슬쩍 구경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네.”

 

불덩이 같이 화가 나서 어금니를 으드득 갈아붙였지만 도리가 없었다.

나는 눈알을 부라리며 요구 사항을 바꾸었다.

천상의 정보기관 삼라전(森羅殿)에는 모든 죽은 영혼들을 찾을 수 있는

검색 엔진 염마부(閻魔簿)가 있었다.

나는 나의 인질극을 지켜보는 옥황상제의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삼라전의 염마부에 접속해서 엘로이즈와 오반의 이름을 쳐봐.”

 

나는 영혼을 빨아들이는 옥정병(玉淨甁)에 둘의 영혼을 담아서 태을진인의 생체 생산 공장인

보패고(寶貝庫)에서 둘과 똑 같은 육체를 만들어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두 분은 이미 다른 사람으로 환생했습니다.

서역의 극락에서 각기 다른 부모 밑에 태어나셨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아 비틀거렸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랑진군이 무서운 내력을 발출해 나를 옥제로부터 떼어냈다.

나는 즉시 이랑진군과 근위병들에게 포위되었다.

무수한 분신을 만들어 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천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시가전 끝에 나와 분신들은 또 다른 초공간의 구멍으로 도망쳤다.

나는 이랑진군의 뇌신편을 맞고 정신을 잃었다.

그 뒤 나는 어둠인지 구름인지 흙인지 알 수 없는 공간과 새벽인지 황혼인지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떠돌았다.

 

깨어보니 지구의 서울대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