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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가자 서역으로 2 - 삼장법사 모시고 10만8천光年 밖으로 변경변경취소

오늘의 쉼터 2016. 6. 26. 10:07

제8장 가자 서역으로 2


- 삼장법사 모시고 10만8천光年 밖으로


스승에 의해 기억을 회복한 나는 심원사로 돌아와 잤다.

죽음처럼 깊은 잠이었다.

자면서 더 많은 기억이 분명한 인과관계를 갖고 되살아났다.

뇌신편에 맞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헤맨 많은 별들, 세월들 ……

 

나는 그것이 오직 나 자신만의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클론이 아니었고 진짜 손오공이었다.

 

설명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이랑진군은 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나를 죽이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들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꿈을 꾸면서도 나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꿈 속에서 나는 무한한 우주 공간을 걸어가며 내가 지나온 은하계를 돌아보았다.

 

태양 같은 항성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순금의 연꽃들이 피어난 우주의 바다.

저 눈부신 연화생(蓮花生)의 바다는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나는 우주의 바다 한 복판에 모든 연꽃들을 낳은 원초의 연꽃,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무지의 암흑으로부터 거두어 열반으로 인도하는 별을 보았다.

서역 행성이었다.

서역 행성의 여덟 개 산맥이 모이는 땅에 지고한 기쁨의 도시, 극락이 있었다.

 

극락을 보자 나의 가슴은 꿈에서도 격렬하게 뛰었다.

모든 별의 도시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도시들은 극락의 모방물, 극락으로부터 나온

우주의 현상적인 신기루에 불과하다.

무한한 시간(無量壽)과 무한한 빛(無量光)의 도시. 우주의 뭇 생명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뭇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최종 소멸을 미루고 있는

부처와 보살들의 도시. 한없는 자비와 사랑, 초자연적인 영성(靈性)과 행복이 구현된 도시.

일찍이 나에겐 한없는 권태와 무위, 무료함의 반복이었던 도시.

 

나는 더 흥미진진한 싸움을 찾아, 더 괴로운 번뇌애욕을 찾아 내 발로 극락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우주를 방랑하던 중에도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극락을 잊지 않았음을 느낀다.

밤이면 찾아오는 나의 꿈은 찬란하게 빛나는 일곱 연못의 모래밭과 금은과 유리,

수정으로 지은 누각들의 환상에 시달리곤 했다.

건물마다 청명한 햇살과 따스한 공기, 일체의 개별화가 소멸된 열반 이후의 평화가 서려 있었다.

프라냐 파라미타, 초월적인 지혜(반야)와 완성된 덕(바라밀다)의 평화였다.

 

그러나 극락의 광경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 걸음 더 옮기자 소용돌이치는 우주 폭풍이 나를 덮쳤다.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면서 나는 무시무시한 우주의 종말들을 보았다.

여러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몇 개인가의 항성계가 부서져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생명이 있던 별들이 멸망해 우주의 바다로 가라앉았다.

 

나는 바람에 불려가면서 시간의 물 위를 떠가는 나를 보았다.

한 때는 극락의 빛나는 거처에 있었고 야심과 갈등과 영광의 길을 걸어

만인의 머리 위에 있었던 나는 내 앞에서 사라져 간 다른 지배자들과 똑같이 먼지로 돌아갔다.

그리곤 수없이 많은 환생을 거쳐 개미로 태어났다.

 

나는 어느새 긴 행렬의 줄을 이은 한 마리 개미가 되어 어떤 뙤약볕 아래를 행진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잠시 머리를 감싸 쥐고 생각했다.

그리고 팔계와 오정을 불렀다.

 

“스승님을 모시고 서역으로 가자.

스승님은 이 우주의 재앙을 막을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을 찾아서.

너희들은 지고한 기쁨과 평안을 찾아서. 그리고 나는 내 아내와 아들을 찾아서.”

 

“그게 정말이야?”

 

“극락에 태어난 사람들은 윤회로부터 벗어나서 더 이상 환생하지 않아.

다시 만나려면 내가 가는 수 밖에 없지 않나.”

 

“좋아. 스승님께 말씀 드리고 오늘 안으로 출발하자.

우리가 이 근처에서 가장 좋은 장비들을 구해올께.”

 

팔계와 오정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나도 피가 끓었다.

뼈와 살을 가진 지구인인 삼장법사를 모시고 10만 8천 광년 밖에 있는 서역 행성으로 간다.

절망적인 여로였지만 마음을 한 번 돌이키자 모험심이 용솟음쳤다.

 

우리에게는 이 여행을 시도한 다른 어떤 자보다도 확실한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예전에도 이 길을 갔었다는 사실이다.

무려 5032일, 14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성공했다.

 

“그건 지구 시간으로 7세기의 일이었지.

그 때보다 더 어려운 길이 될 거야.

훨씬 더 무서운 요마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승복 위에 가사를 걸쳐 입은 스승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괴나리 봇짐의 멜빵을 고쳐 매는 스승의 얼굴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나의 우주는 네 개의 시대를 가지지.

세계의 도덕적 질서가 온전하게 존재하는 생성의 시대,

타성이 쌓여 질서가 흔들리는 쇠락의 시대, 빛과 암흑이 반반씩 존재하는 붕괴의 시대,

그리고 마지막은 게걸스럽고 맹목적이고 무모한 욕망만 득세하는 파멸의 시대.

예전에 우리가 서역을 다녀왔을 때는 붕괴 시대였어.

그 때의 요마들은 천상으로부터 추방되었거나 원한 때문에 타락했거나

사랑 때문 낙오된 존재들이었어. 그러나 지금은 파멸의 시대란다.

아마 머나먼 지옥에서 이 세계로 들어온 최악의 요마들이 나타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