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가자 서역으로 3
- 고얀 놈들! 총은 안돼
이 날 오후 우리 셋은 겨울 햇살이 곱게 부서지는 늙은 보리수 밑에서 머리를 깎았다. 스승 앞에서
사제의 예를 갖추고 수계(受戒) 의식을 다시 치른 것이다. 우마왕과 자선병원의 의사들이 수계의 증인이 되어주었다. 어차피 변신술을 거두면 본
모습으로 돌아갈 우리에게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삭삭삭삭 하고 시퍼렇게 날이 선 삭도가 머리털을 밀어가자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옛날 정과(正果)에 귀의하여 공덕을 쌓으마 삼장법사를 따라 나섰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인 듯, 몽롱한 꿈에서 깨어난 듯
했다.
승복을 걸친 팔계와 오정은 서역으로 떠날 준비를 하겠다며 나갔다가 1시간도 안 되어 검은 지프 한 대를 몰고 돌아왔다. 차에서 내린 둘은
상기된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덮개가 달린 지프 후면의 짐칸을 열어젖혔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어 텍스 원단의 카키색 등산 자켓과 바지, 등산용 룩색, 구급약품 팩, 내의, 양말, 우의, 방한복, 아이젠과 에어 쿠션이 내장된
극한지대용 알파인 등산화, 운동화가 각각 4벌씩 묶어져 있었다. 그 옆에는 밥을 지어 먹을 콜맨 버너와 코펠, 야전삽, 회중 전등, 수통,
로프, 침낭, 우레탄 매트, 맥가이버 나이프, 야전용 텐트 2 세트, 쌀과 부식, 야전용 비상식량이 있었다. 나는 큰 베개만한 스니커 쵸콜렛
봉지를 들고 혀를 찼다.
“우리가 어디 화전(火田) 일구러 가냐! 이 식충이 바보 녀석들아, 이게 무슨 쓸데 없는 잡동사니들이야?”
그러나 장비와 식량 밑을 들춰보고는 나도 껄껄 웃었다. 각양각색의 화약 무기들이 차곡차곡 챙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엠60 다용도 기관총
4정, 보병용 로켓포 4정과 보병용 토우 대전차 미사일, 망원 조준기가 달린 엠24 저격용 소총 2정, 베레타 권총 4정, 수류탄, 신호탄,
각종 탄약이 그득했다. 나는 총구를 점검하고 대전차 미사일의 광학 추적 장치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들, 제법인데. 이런 것들은 미리미리 챙겨두면 나중에 다 살림 되지.”
우리의 흐뭇함은 스승의 노호(怒號) 앞에 날아가버렸다. 삼장법사는 내가 든 광학 추적 장치를 빼앗아 땅에 내동댕이치며 발을 굴렀다.
“이 고약한 놈들아! 방금 수행자의 계율을 받고 이게 무슨 짓이냐? 살생은 수행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잔악한 죄가 아니냐. 이 흉칙한
무기들을 당장 내다버려라!”
“스승님, 이건 무기가 아니라 호신(護身) 장비라구요. 빈손으로 어물어물 하다간 요마들에게 붙들려서 스승님의 목숨까지 바쳐야 할 거예요.”
“빈손은 무슨 빈손이냐. 너에겐 여의봉이 있고 팔계에겐 쇠스랑이, 오정에겐 말채찍이 있지 않느냐?”
“흥, 몽둥이로 때려 죽이나 총으로 쏴 죽이나 어차피 살생은 마찬가진데 뭘 자꾸 따지십니까?”
그러자 스승은 눈을 부릅뜨더니 여자 같지 않은 침착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훈계했다.
“이 놈아, 그 어차피 똑같다는 논리로 끝없이 폭탄을 만들다가 결국 네 자신의 별까지 날려버리지 않았느냐? 선을 행하는 것은 봄동산의 풀
같아서 자라나는 것은 보이지 않으나 나날의 더해감이 있고 악을 행하는 것은 칼을 가는 숫돌 같아서 그 닳는 것을 볼 수 없지만 나날의 이지러짐이
있느니라. 부득이 요마를 물리쳐야 할 때도 몽둥이를 쓰는 것과 총을 쓰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다.”
“차이가 있긴 있지요. 요마 놈 입장에서도 내 무지막지한 여의봉을 맞고 납짝 개구리가 되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총 맞아 죽는 걸 좋아할
겁니다.”
“듣기 싫다.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佛性)이 있어서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을 꺼려 하느니라. 그런데 총이나 미사일은 살생자와 살생당하는
자의 거리를 떨어뜨려 놓아서 가까이서 눈으로 상대를 보면 일어나는 연민과 자비의 마음을 없애버린단 말이다. 사람의 착한 마음에 몽둥이로 남을
죽이기는 어렵지만 총으로 남을 죽이기는 쉬운 일이야. 총은 절대로 안돼.”
나는 속으로 무척 놀랐다. 심약하고 데데하던 스승이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단 말인가. 사람이 조금도 짭짤하지 못하고 싱거워빠져서 세상 으레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맹물 노릇을 하던 스승이었다. 그런 그가 여자로 환생하더니 이렇게 딱 부러지게 변해버렸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내가 고개를 떨구자 스승은 팔계와 오정을 노려보았다.
“이 옷이며 먹을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라. 답답한 것들, 그렇게 원래 ‘비쿠’(比丘)는 걸인이란 뜻이야. 탁발(托鉢)로 밥을
빌어먹을 각오 없이 어찌 중 노릇을 한단 말이냐. 자기 목숨의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을 남의 뜻에 맡겨서 가족 육친의 인연은 물론이고 자기 육신의
생사에 대한 관심까지도 깨끗이 끊어버리지 않으면 승려가 될 수 없다. 당장 나눠줘라.”
팔계와 오정은 절망적인 얼굴로 잘 먹지 않으면 요마와 싸울 수 없다고 사정했다. 특히 팔계는 완전히 사색이 되어 매달렸다. 그러나 스승의
호령이 서릿발 같았다. 결국 우리는 준비해 온 무기를 파묻고 옷과 식량을 나눠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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