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12
- 더럽고 치사한 놈아, 산산조각을…
“도와주게. 흑수하를 폭탄으로 해체한 뒤 밀폐된 상자에 봉인해서 로켓에 실어 날려버릴 거야. 이
별에서 그걸 할 수 있는 마법사는 자네와 나뿐일세.”
웅비는 눈을 껌벅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손오공, 너 많이 지쳤군.”
그 목소리는 나를 완연히 경멸하는 듯한 억양이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끌시끌한 세상 일에 매달려서 낮도깨비 같은 얼굴을 하고. 허구헌 날 그게 무슨 꼴인가, 손오공 대통령. 나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너는
너 자신의 욕망에 갇혀 있군. 나를 좀 봐. 최소한 너보다는 잘 살고 있잖아.”
웅비의 감방은 나의 대통령 궁 서재보다 더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한쪽 벽에 여러 별의 뮤지션들이 만든 뮤직 디스크가 쟝르별로 정리되어
있고 다른 쪽 별에는 영화 디스크가 꽂혀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정보 고속도로에 접속될 수 있고 동영상과 음악을 재생할 수도 있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감방 바닥에는 먼지 하나 없었고 모든 것이 쾌적했다. 웅 비는 ‘흑풍동 흑대왕’이라고 불리던 시절의 습관 그대로 살고 있었다.
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도움을 청하는 처지를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 내 표정을 들여다보던 웅비는 비죽이 웃음을 배어 물었다.
“성질대로 욕이라도 퍼붓고 싶다는 얼굴이군. 이렇게 말하고 싶겠지. 이 별에서 나의 위치는 확실하다. 나는 권력과 돈과 행운을 얻었다.
나는 위대한 세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이 사람아, 마음을 돌이키고 자성(自性)을 닦으면 자기 있는 자리가 곧 극락인데 죽도록 분주하게 날뛰면서
뭘 찾고 있는 건가? 자기가 만들어낸 허깨비에 자기가 끌려 다니고 있구만.”
“닥쳐. 자꾸 빈정거리면 나 혼자 할 거야. 그러다가 내가 죽으면 넌 영원히 이 유리 그릇 안에 있어야 해. 네 종신징역형 명령에 내가
사인했다는 걸 잊지 마.”
“잘 했다. 이 망할 자식아.”
“나를 도와준다면 여기서 나가도록 사면을 약속하지.”
“여기서 나가게 해줘.”
나는 간수들을 불러 웅비의 목에 초소형 폭탄이 장착된 목걸이를 걸게 했다. 감시자에게서 멀리 떨어지거나 억지로 목걸이를 떼려고 할 경우
자동으로 폭발하게 되어 있는 수인용(囚人用) 목걸이였다.
우리는 군용 헬기를 타고 발푸르기스 시로 날아갔다. 우리의 작업을 돕기 위해 비서실장과 폭발물을 다루는 공병 1개 소대가 동행했다.
“각하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저 검은 유성은 대체 뭡니까? 왜 이런 일에 각하가 직접 나서야 하는 겁니까?”
설명하자면 길었다. 아니 흑수하는 사람들의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흑수하는 행성이면서 동시에 생물이다. 행성 전체를 뒤덮는 바다 같은
크기의 이 생물은 다세포 생물 단계, 즉 식물, 동물, 포유류, 영장류 같은 진화 단계를 뛰어넘었다. 즉 아메바의 원시 해양 생물에서 곧바로
고도의 지능과 자기 안정성을 가진 젤리형 생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흑수하의 의식에는 선악(善惡)의 관념이 없다. 누구라도 자신의 행위를 비교해볼 어떤 동료도 없이 혼자 170만년을 살다 보면 윤리감각이
마멸될 것이다. 흑수하를 움직이는 것은 강한 지적 호기심이다. 흑수하는 자신의 특수한 뇌파 에너지로 자기 곁에 있는 인간의 머릿속을 탐사한다.
그런 뒤 인간의 뇌 속에서 잊혀져 있던 어두운 심리의 섬을 끄집어낸다.
무의식 속에 들어있는 죄책감과 공포, 상처들을 그대로 현실로 재생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흑수하는 그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구경하고
연구한다.
발푸르기스 시에 나타난 초록색 공룡은 아마 어떤 아이가 품고 있던 무의식의 괴물이며 100년 전에 죽은 군인들 또한 그 도시의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 무의식 속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몽둥이로 자녀들을 타살하는 부모 역시 자녀들의 무의식에 있던 죄책감의 산물인 것이다. 자기
내부의 추악함에 의해 자기가 공격 당한다는 것. 이것이 흑수하가 만들어내는 심원한 공포였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런 괴물 행성의 일부가 별똥별이
되어 이곳에 떨어진 것이다.
헬기가 발푸르기스 시에 도착하자 나는 유성이 떨어진 자리의 30킬로미터 밖에 비서실장과 공병대를 대기시켰다. 트럭 두 대를 구해 가져온
장비들을 싣게 한 뒤 웅비와 내가 각각 한 대씩 운전해 유성으로 다가갔다.
도로 주변의 도시는 엉망의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 광경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 별의 통치자가 되고 내가 원하는
질서를 확립한 뒤 나는 이곳에 강한 애착을 느껴왔다. 이곳은 마치 나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이 별에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 모든 것이 거무튀튀한 별똥별 한 조각 때문에 갑자기 황무지로 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의 트럭은 유성 앞에 도착했다. 나는 한 손에는 석유 시추용 대형 드릴을, 다른 한 손에는 초강력 폭약을 들고 유성을 향해
소리쳤다.
“더럽고 치사한 돌멩이 놈아! 어디서 굴러와서 지랄이냐. 이 손오공님이 산산조각을 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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