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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일그러진 과거 13 -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오늘의 쉼터 2016. 6. 20. 16:29

제7장 일그러진 과거 13


-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유성이 떨어진 땅은 국자로 떠낸 죽처럼 움푹 패였다. 함

몰 지역의 중앙에 검은 별이 반경 1킬로미터, 높이 4미터 정도를 드러내고 깊이 박혀 있었다.

 

우리가 그곳으로 올라가자 물컹물컹하고 끈적한 검은 물이 무릎을 감쌌다.

검은 물은 위기의식을 느낀 듯 했다.

격렬한 소용돌이가 일어나면서 우리 주변의 물은 강한 염산 용액으로 성분이 변했다.

냄새 고약한 연기를 내면서 구두와 바지가 녹아버렸다.

 

우리는 내공을 발출하여 주변의 물을 밀어내고 바닥을 드러낸 유성의 누런색 진흙에

석유시추용 드릴을 박았다.

단추를 누르자 드릴이 진흙을 파고 들어가며 구멍을 만들었다.

나는 사방에서 출렁거리는 물을 막으면서 드릴을 조종하는 웅비에게 외쳤다.

 

“이 놈이 우리 머리 속을 뒤지고 있을 거야. 기(氣)를 집중해서 대뇌피질의 연상영역을 닫아버리라구.”

 

“알고 있어. 너나 잘 해.”

 

잠시 후 하늘이 어두워졌다. 머리 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안개 같은 것이 밀려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안개가 아니라 콜로이드 상태의 뿌연 물질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안개의 입자를 만져보았다.

 

순간 나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정신력의 균형을 잃었다.

물을 막고 있던 보이지 않은 장벽이 붕괴되고 그 틈으로 상당량의 검은 물이 쏟아졌다.

 

드릴이 부식해서 연기가 났고 나는 다시 내력을 높이며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장벽이 회복되자 나는 격한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웅비, 이건 태상노군의 팔괘로(八卦爐) 안에 있던 발화(發火) 거품이야.”

 

“팔괘로라니?”

 

“천상을 분탕질한 죄로 내가 통닭구이가 될 뻔했던 곳.”

 

“뭐라고? 이 칠칠 맞은 원숭이 놈아! 그럼 그건 네 기억이잖아! 네 머리 속이 읽혀버렸다고!”

 

나는 석고상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팔괘로는 평범한 화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광야처럼 넓고 아무 것도 없는 붉은색 공간이 존재했다.

그 붉은 공간에는 안개 같은 발화 거품이 떠돌다가 번개가 치면 맹렬한 화염이 일어나고

불벼락이 떨어졌다.

 

흑수하는 이상한 방사선으로 우리의 뇌를 파고 들어와서 기억의 조각들을 읽어낸다.

특히 다른 심리 과정에서 떨어져 고립되고 억압되어 있는 심리의 섬, 괴로운 기억

조각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49일이나 팔괘로에 갇혀 열기를 견뎌야 했던 고통스런 기억. 흑수하는

그 기억 조각을 설계도로 삼고 원자보다 더 작은 중성미자(中性微子)를 재료로 삼아

그 화염과 불벼락의 지옥을 물질로 재생해낸 것이다.

이렇게 불탈 것이 많은 이 행성에! 큰일났다고 외칠 겨를도 없었다.

 

콰르릉 쾅 쾅. 끔찍한 뇌성(雷聲)과 함께 대기 중을 떠돌던 발화 거품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주위는 갑자기 지독한 열과 붉은 빛으로 가득 찼다.

멀리 사람들이 괴로워 몸부림치는 비명소리가 공기를 타고 들려왔다.

화염은 용광로의 불길보다 더 뜨겁게 하늘과 땅의 모든 장애물들을 태워버릴 기세였다.

이윽고 하늘에서 불벼락이 치면서 집채만한 불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야 했다.

드릴을 들어내고 이제까지 뚫은 구멍에 준비해간 폭약을 집어넣었다.

폭파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불길한 파공성을 내면서 불덩어리들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여의봉과 호신강기와 내력을 동원해 불덩어리들을 옆으로 쳐냈지만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위험과 싸우는 사이 검은 물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피해. 폭탄이 터진다.”

 

웅비와 나는 몸을 날려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검은 물에 함유된 강한 염산이 먼저 뇌관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몸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둔한 타격음과 함께 웅비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불덩어리에 맞은 것이다.

으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다가 웅비는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목에 건 수인용 목걸이의 폭발이었다.

 

그를 애도할 시간이 없었다.

근두운을 타고 비서실장과 공병대가 대기하고 있던 곳으로 날아갔지만

그들 역시 불탄 시체로 변해 있었다.

 

비통한 심경에 사로잡힌 나는 휴대폰을 꺼내 미사일 기지 사령관을 불렀다.

 

“사령관, 나 대통령이다. 유성이 떨어진 지점을 공격해. 유성이 산산조각날 때까지 계속 쏴.”

 

내가 명령한 최후의 수단은 뜨거운 불길에 기름 끼얹은 격이었다.

기지로부터 발사된 미사일들은 연방 공화국의 하늘을 가득 메운 불벼락의 폭우(暴雨)에 휩싸였다.

미사일들은 유성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다른 도시에 떨어져 폭발해버렸다.

불벼락이 떨어진 여러 기지에서 양자 폭탄과 핵폭탄이 폭발했다.

거대한 폭풍이 행성 전체를 진동시켰다.

 

“엘로이즈! 오반아!”

 

근두운으로 날아 헐레벌떡 대통령 궁으로 달려갔을 때

내가 목격한 것은 시커멓게 불길에 그슬려 무너진 건물의 잔해였다.

연기가 솟아오르는 돌더미 속에 엘로이즈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열기를 피하려고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나는 강물에 둥둥 떠가는 시체들 속에서 아들 오반을 발견했다.

얼마 후 봉래 행성은 산산조각 나서 우주의 먼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