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11
- 대통령 각하, 이상한 유성이…
“대통령 각하, 남부 발푸르기스 시에 이상한 유성이 떨어졌습니다.”
유성 추락 보고가 우주 항공국이 아닌 주 방위군 본부에서 날아들었다. 정부 관리들은 약간의 의혹을 느꼈다. 대개 유성, 즉 별똥별들은
대기권에 진입하기 전에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에서 발견된다. 큰 유성이 충돌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우주 항공국이 항상 행성 주변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유성은 갑자기 불쑥 대기권 속에서 나타나 땅에 떨어졌다. 아무리 조사해도 언제 어떤 궤도를 그리며 날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항공국 특별조사반의 보고에 의하면 반경 3킬로미터 정도의 크기를 가진 이 유성은 검은 색의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뒤덮여 있었다.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 점액질은 물보다는 더 뻑뻑하고 젤리보다는 더 묽은, 일종의 액체 세포로서 지구의 어떤 유기체보다도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외계의 물질이었다. 이것은 극한의 열기와 냉기, 급격한 대기 변화에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희귀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를 받았을 때 나는 유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주식시장을 안정시켜야 했고 시급히 효과적인 경기 부양책을
마련해야 했다. 다음 임기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 지방 유세도 다녀야 했다. 비서실장이 발푸르기스 시를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전화로 알려주었다.
“유성은 교외의 광활한 목장 지대에 추락했습니다. 고물 트럭 하나가 부서지고 마굿간의 말들이 몇 마리 죽은 것 말고는 별 다른 피해가
없습니다. 관광객들과 과학자들만 열을 올리고 있어서 가보셔도 표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유성 문제를 나의 의식 밖으로 밀어내었다. 그런데 사흘 후 발푸르기스 시로부터 날아오는 온갖 종류의 긴급 보고가 나를 경악시켰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 앵커가 난로 위에 화약을 뿌린 것처럼 펄펄 뛰었다.
“여러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키가 30미터가 넘는 초록색의 괴물 공룡이 초등학교를 습격했습니다. 어제는
총검을 들고 각반을 찬 100년 전의 군인들이 백화점에 나타나 쇼핑객들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저께는 십수년 전에 죽은 부모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자녀들을 몽둥이로 타살했습니다. 지금 이 도시에는 전 주민 대피령이 내렸고 주 방위군이 출동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더욱 충격적인 보도가 날아왔다.
“발푸르기스 시로 출동한 군대가 원인 모를 광기에 사로잡혔습니다. 같은 소대의 병사들이 서로를 사살하고 탱크와 대포가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미 사상자가 200여명을 넘어섰습니다. 괴물들은 이제 50킬로미터 떨어진 인근 도시에도 출현하고 있습니다. 우주
항공국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이변이 시기적으로 사흘 전에 추락한 유성과 관계 있는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그 때 검은 유성의 실제 모습을 집무실의 텔레비전으로 처음 보았다.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말만 들었을 때 나는 유성을 검고
끈적끈적한 콜타르에 뒤덮인 거대한 공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실제의 유성은 흑단처럼 빛나는 미세한 검은 물결이 물결의 꽃과 물거품의 사슬을
만들면서 표면을 뒤덮고 있는 신비로운 구체(球體)였다. 그 구체를 들여다보다가 나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오래 전 나는 저것과 똑 같은 별을 통과한 적이 있었다. 흑수하(黑水河) …… 완만하게 움직이는 검고 물컹물컹한 바다. 짙은 점액질의
대양(大洋) 위를 천천히 표류하고 있는 아름다운 빛 조각들. 그리고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공포.
“이런 빌어먹을!”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리곤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면서 집무실을 미친 듯이 빙빙 돌았다. 기겁을 한 보좌관들이 나를 피해 벽
쪽으로 늘어섰다. 간신히 대책을 떠올린 나는 고함을 질러 경호실장을 불렀다.
“모든 일정 취소하고 헬기를 준비해. 연방 특별교도소로 간다.”
로코 섬에 있는 연방 특별교도소 지하에는 초능력자를 수감하기 위해 만든 특별감방이 있다. 두께 50센티의 특수 플라스틱 유리로 만들어진 그
넓직한 감방에는 4년째 한 죄수가 갇혀 있었다. 바로 내가 무앗딥 황제의 궁정에서 잡아 온 마법사 웅비였다.
나는 3중의 안전 철문으로 차폐된 복도를 지나 혼자 그의 감방 앞에 도착했다. 흐릿한 실내 조명을 통해 감방 전체가 들여다보였다. 웅비는
감방 바닥에 고정시켜 놓은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코를 골고 있는 그의 가슴 위에는 {덧없는 인간과 예술}이라는 한가로운 제목의
미술 비평서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감방의 유리 벽을 두드려 웅비를 깨웠다.
“웅비, 나를 좀 도와 주게. 이 별이 지금 위기에 처했어.”
웅비는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화를 냈다.
“이 좀 같은 원숭이 자식아, 무슨 헛소리야. 날 이런 유리 감방에 가둬놓고 놀리는 거야?”
“자네 이런 시 알지? 층층의 물결은 까마귀 깃털 같은 물너울을 번득이고 첩첩의 파도는 검은 기름 같은 물거품을 말아올린다. 인 생은
어디선가 다시 만날 곳이 있다지만 누가 감히 서방의 흑수하를 볼 수 있겠는가?”
“흑수하? 보는 사람의 무의식을 반사하는 별 말인가?”
“그래, 그 흑수하가 지금 이 별에 떨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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