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10
- “경제공황은 안돼”수정구슬에…
이 때 경호원들 뒤에서 비서실장이 나타났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뭔가 충격적인 보고가 있음을 예감했다.
제기랄, 난제(難題)라면 이미 넘쳐흐를 만큼 보유하고 있다.
임기는 다 끝나가는데 아직도 많은 일들이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엘로이즈와 오반에게 손님 접대를 부탁하고 비서실장에게 다가갔다.
“지금 파티 중인데 무슨 일인가?”
비서실장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를 집무실 쪽으로 인도했다.
“대통령 각하, 오늘도 주식시장에서 투매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뭐! 무슨 소리야. 오전에 유력한 은행장들이 개입해서 증시가 안정세를 되찾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오전 상황이었구요. 저녁에는 평균주가지수가 무려 1400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1400포인트! 최악의 주가 폭락입니다.”
“이 망할 놈의 주식! 빌어먹을! 빌어먹을!”
나는 집무실의 문을 닫고 문짝을 열 번쯤 걷어찼다.
나는 식식거리면서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 속에서 재무장관과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술병을 가지러 갔고, 네 사람의 글라스에 술을 따랐다.
재무장관과 의장이 들어왔을 때 머릿속에서 마구 소용돌이치던 감정들은 알코올과 담배 연기 덕분에
상당히 가라앉은 뒤였다.
나는 화가 났다기 보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술잔을 권하고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도대체 주가가 계속 폭락하는 이유가 뭔가?
온갖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하락세가 벌써 한 달간 계속되고 있네.
소액투자자들은 이미 파산했고 기관 투자가들도 파산 직전이야.”
“지금이 바닥이 아닐까 합니다.”
“그 바닥이란 소리 벌써 보름째 들었어. 정확한 폭락의 이유부터 짚어보게.”
방 안에는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도 상관없는, 대학의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원인을 규명하면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책임자들이었다.
“대통령 각하, 이유는 많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라면 …… 이건 우리 행성 경제에 수요가 줄어들고 전 행성적인
생산 과잉 현상이 일어났다는 증거입니다.”
올해 일흔이 넘은 의장은 꺼림직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행성 문명화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기업 이윤은 크게 늘어났지만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그리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꾸 늘어나는 상품을 사들일 구매력을 잃게 된 거죠.”
“그렇다면 대책이 뭔가?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서 노동자들에게 돈을 나눠주기라도 해야 하는가?”
“옛날엔 그것도 방법이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정보혁명 때문에 물리적 시설이나 부동산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냥 기다리셔야 합니다.”
“기다리다니?”
“행성문명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단기간에 너무 많은 건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새로운 수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파괴 시스템이 나타나야 합니다.”
“새로운 파괴 시스템?”
“미친 독재자들은 다 ?겨 났고 전쟁도 없으며 생산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는 완벽히 정비되었습니다.
행성의 모든 나라들에 비효율이 사라져버렸으니 대체 무엇으로 생산과 소비의 리듬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 뭔가가 나타나서 우리 행성에 혁신적인 자기파괴를 가져오지 않으면 이런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습니다.”
의장의 말을 듣자 걷잡을 수 없는 서글픔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행성 문명의 위기를 제거하기 위해 밤낮 없이 뛰었다.
그 결과는 너무 많이 위기를 없애버린 내 행동 자체가 행성 경제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대로 가면 봉래 행성에 유례없는 경제 공황이 터지게 된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우리에 갇힌 곰처럼 집무실을 빙빙 돌았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사방에 신경질 섞인 눈길을 던지던 나는 문득 천상의 수정 구슬을 보았다.
천상과 직접 접속할 수 있다는 고감도 송신기. 무슨 소망이든 거기에 대고 말하면
천상의 조직과 초능력이 그 소망을 들어준다는 신비의 크리스탈.
나는 재무장관과 의장, 비서실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정 구슬을 집어 들었다.
천상의 사절단은 수정 구슬에 내력을 불어넣어 송신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기회가 없었다.
나는 수정 구슬을 활성화시키고 가슴 속에 있던 소망을 외쳤다.
“이 별에 경제 공황이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 별의 경제는 무한히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재빠른 시장 점유, 즉각적인 이윤 추구, 자유 무역의 발전, 대규모의 생산력 개발,
신용의 확대와 세분화,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성장해야 합니다.
진보하고 또 진보해야 합니다.”
소망을 다 말하고 수정 구슬을 내려놓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 별은 내 제 2의 고향이며 내가 원하던 곳이었다.
지금 나는 이 곳의 수호자가 되었다.
거기에 수반되는 모든 난제들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만 이 뻐근한 감각은
나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더 이상의 폭락은 없을 거야 …… 모든 것이 잘될 거야.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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