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8
- 전쟁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우주정거장 사건이 일단락되자 나는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 정상회담을 한다고 찾아가서 국가 원수를
두들겨 패는 파천황(破天荒)의 방식은 한 번으로 족했다.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충격 효과를 유발하는 정면승부, 즉 전쟁이
필요했다.
나는 국회에 전쟁결의안을 제출하고 내가 인류를 위해 열어놓은 거대한 비전을 설명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이것은 위대한 결단의 순간입니다. 싸울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인가. 싸우면 우리는 인류 공동체의 정의와
진보와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잃게 될 것입니다. 바다 건너 숙신 공화국은 양자 폭탄을 개발해
우리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숙신의 독재자 덩색은 그러면서도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쟁주의자가 평화주의자로 전향하면 언제든지 환영을
받는다는 점을 악용해 우리의 응징을 피해온 악랄한 사기꾼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자주 속았고 덩색의 전쟁 위협을 역설한 내가 오히려 전쟁광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번 사태를 질질 끈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숙신 공화국의 옆에는 인구 13억의 강대국 차인 연방과 행성 인구의
절반이 사는 아라샤 대륙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숙신의 미사일 사정권으로부터 동맹국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다면 아라샤에 새로운 경제 블록이
형성됩니다. 그 결과는 자유무역의 붕괴와 연방 공화국의 경제 공황입니다. 공화국은 전쟁을 수행할 수도 없을 만큼 피폐하게 되고 행성문명의 꿈도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보편적인 번영의 의지에 맞춰 즐겁게 살려고 태어났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폐쇄된 체제 속에서 자유를 억압당하며 살지 않고 개인의 자유의지로 마음껏 건설적인 행동을 하며 꿈을 이루려고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행성문명의 꿈이며 인간적인 가능성의 완전한 발전입니다. 이러한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현명한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국회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제출한 전쟁 결의안은 196대 400으로 부결되었다. 나는 불덩어리처럼 화가 났다. 은행장들과
정보기관의 책임자들과 군 수뇌부들, 그리고 군수산업을 움직이는 대자본가들을 불러 최후의 대책을 호소했다.
“국회의 비열한 병신들은 도대체 나라가 얼마나 망가져야 정신을 차린단 말입니까? 숙신에는 석유 유전도 없습니다. 숙신은 워낙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나라여서 그것의 괴멸이 행성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반면 우리가 그를 방치하면 차인 연방 중심의 경제 블록화가 일어나고
기축통화국가로서 우리의 지위가 무너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중앙정보국장이 나의 말을 부연했다.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공업화되어 더 싸고 좋은 상품을 생산하면서 우리 공화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이미 20년 전에
끝났습니다. 그동안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메워준 것은 금융 자유화였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기축통화(基軸通貨) 국가이므로
아무리 적자가 나도 돈을 자꾸 찍어서 지불만 하면 된다는 거죠. 우리는 찍어낸 돈을 활발하게 성장하는 신흥공업국에 투자해서 그 투자 수익으로
대외 채무를 메워왔습니다. 만약 경제 블록화가 일어나면 연방공화국은 파산합니다. 우리는 계속 돈을 찍어내야 하고 파생금융상품, 규제외 금융상품
등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국가에 돈을 굴려야 합니다.”
연방 중앙 은행장이 침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각하와 국장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위험한 비즈니스입니다. 전쟁이 차인 연방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된다고 가정해봐요.
우리는 단기간에 엄청난 국가자원을 군대에 투자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기겠지만 그 승리는 국력의 근본적인 붕괴를 낳을 것입니다. 흥행에 성공하고
수금에 실패하는 비즈니스는 피해야 합니다.”
나는 은행장을 응시하며 힘을 주어 말했다.
“전쟁은 확대되지 않습니다. 나는 최단시간에 가장 경제적으로 전쟁을 치르겠습니다.”
공화국을 움직이는 막후의 실세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좋습니다. 각하. 도와드리지요.”
공화국의 원자력 발전소에 폭발 사고가 터졌다. 다행히 방사능은 유출되지 않았지만 수색 결과 그 도시의 사회민주당원이 소유한 창고에서 엄청난
량의 세균 무기가 발견되었다. 중앙정보국과 수도방위군이 즉각 활동을 개시했다. 이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야당이지만 원내 제1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의
국회의원 210여명을 감옥에 처넣고 말았다. 이것으로 국회의 구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테러를 규탄하고 대통령의 전쟁 결의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수도를 누비는 가운데 국회가 열렸다. 나는 기왕의 전쟁 결의안과 함께
시한입법(時限立法)으로서 <위임독재법>을 제출했다. 가장 극렬하게 전쟁을 반대 하던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감옥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찬반의 토론은 물론 표결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국회는 전쟁결의안과 위임독재법을 통과시켰고 나는 국가로부터 시한부로 전권을 위임 받은
독재관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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