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7
- 에잇, 시끄러워. 수리수리…
황제는 만찬에서 먹은 음식을 다 토하고 피오줌을 쌌다.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극한까지 자극하는
장시간의 구타와 섭혼술을 동반한 윽박지름에 그는 넋을 잃었다. 아무리 강력한 권위와 군대와 돈을 가진 인간도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악마를 당할 수는 없다. 내가 노려보는 앞에서 황제는 벌벌 떨면서 전화를 걸었다.
경찰기동대와 군 사령부에 비상이 걸렸다. 모처에 주둔하고 있는 신의 전사단 간부 65명을 모두 체포해서 24시간 안에 연방 공화국의 대통령
전용기로 넘기라는 칙명이 떨어졌다. 곧이어 황제는 궁내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연방공화국 전용기가 긴급 출국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고
24시간 동안 내전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나의 지시를 다 수행한 뒤 황제는 걸레쪽처럼 마루바닥에 쓰러졌다. 탈진하여 의식을
잃은 것이다.
순간 나는 등 뒤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몸을 틀었다. 공기를 가르는 싸늘한 파공성과 함께 얇고 넓은 칼날을 가진 23센티미터 길이의
유엽비도(柳葉飛刀)가 날아왔다. 아슬아슬하게 내 가슴을 스친 유엽비도는 벽으로 날아가 손잡이 앞부분까지 박혔다. 무서운 위력이었다. 하나를
피하자 또 하나, 다시 하나, 모두 열 두 자루의 유엽비도가 잇달아 날아왔다. 나는 몸을 풍차처럼 돌려 예닐곱번 재주를 넘은 끝에 위기를
모면했다.
눈 앞을 살필 겨를도 없이 나는 귀에서 여의봉을 뽑아 검은 그림자를 후려쳤다. 적은 쨍강 하는 맑은 쇳소리와 함께 나의 여의봉을
받아넘겼다. 나는 잇달아 다섯 번의 찌르기 공격을 시도했고 적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그제서야 나는 암습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검은 머리에, 검은 얼굴, 검은 턱수염, 무릎까지 내려오는 흑색 외투를 입고 흑색 장갑을 낀 전신이 숯과 같은
거한이었다. 손에는 플루트처럼 생긴 검은 색의 철제 피리를 들고 있었다.
“손오공, 황제를 핍박하지 마.”
“너는 웅비(熊 )가 아닌가?”
나는 놀랐다. 무앗딥 황제를 수호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이런 변고를 눈치챌 수도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그가 설마 웅비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웅비는 과거 ‘흑풍동 흑대왕’이라 불리던 멋쟁이였다. 그는 많은 골짜기를 거느린 아름다운 산에 흑풍동이라는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고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서너 명의 친구만 만나면서 음악과 영화를 즐기는 요괴였다. 사용하는 무기도 멋스러운 철적(鐵笛), 즉 소리로 적을 공격하는 철제
피리였다.
웅비는 무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아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훤히 꿰뚫어 알고 있었다. 그는 옛날 사원의 화재를 틈타 삼장법사의
금란가사를 훔쳐 간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나와 일대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웅비가 입을 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재앙을 불러오는 사람이군. 그대는. 네가 말하는 행성문명은 거짓말이야. 그건 결국 모든 나라를 그대의 연방공화국처럼
개조하자는 말이지. 이게 무슨 짓인가? 왜 남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나?”
“누가 누굴 괴롭혔는데? 사막 제국은 폭도들을 지원하고 보호했어. 신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살인을 하는 놈들을 가만 두란 말인가. 힘이
남아돌면 불우이웃이나 도울 일이지 너야말로 이런 광신도(狂信徒) 국가에서 뭘 하는 거야. 너는 알잖아. 신은 전지전능하지도 무한하지도 않아.”
“손오공,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 가. 이 사람들의 종교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사막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타났어. 그런데 행성문명화 정책은 이 사람들의 종교세계를 무너뜨리고 있어.”
“이 자들의 종교가 뭘 찜쪄 먹든 관심 없어. 나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해방시킬 거야. 이제 인간에게 종교와 민족과 국가와 인종을 위한
희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넌 미쳐가고 있어. 권력의 눈먼 색정(色情)이 너를 박제시켜 버릴 거야.”
“에잇, 시끄러워. 수리 수리 마하 수릿!”
기회를 노리던 나는 머리 위로 뛰어오르며 웅비를 소매 속으로 끌어당겼다. 수리건곤대법(袖裏乾坤大法). 내력을 이용해 사물을 압축, 견인하는
최고의 공간압축기술이었다.
예기치 못한 수법에 웅비는 철적을 입술로 가져갈 사이도 없이 소매로 빨려 들어왔다. 얼마 후 신의 전사단 간부들을 전원 체포해 대통령
전용기에 인계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유유히 황궁을 빠져 나와 공항으로 날아갔다. 나의 대통령 전용기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연방공화국으로 돌아왔다. 65명의 테러리스트들은 재판에 회부되었고 소매 속에 잡아온 웅비는 엄중한 지하감옥에 갇혔다.
국민들은 열광했다. 언론은 정상회담 하루 만에 파격적인 양보를 받아낸 나의 경이로운 협상력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야당에서는 내가 막대한
뒷돈을 사막 제국에 제공했다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연설했다.
“무앗딥 황제 폐하와 긴밀한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호소를 받아들여 폐하께서는 세계 평화를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폐하께서는 내가 다시 이러한 일로 그 분을 방문할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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