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5
- 1년후, 나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욕지거리를 하려던 나는 노래가 묘하게 내 나르시시즘을 어루만져주는 것을 느꼈다.
변화무쌍(變化無雙)만이 나를 지배할 수 있나니 …… 그 구절을 읊조리자 지나온 8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봉래 행성에서의 생활은 목가적이었다. 모험과 스릴을 추구해온 내 삶의 모델은 이제 가족과 안정으로 의미의 중심을 옮겼다. 아내와 아들을
위해 지치지 않고 하루 하루의 신성한 사원을 지어 올렸다.
나는 먼저 132개의 방이 있는 4층 집을 장식하고 개조하는 일에 몰두했다. 넓은 정원에 가장 좋은 잔디를 깔고 그 둘레에 아내의 향수를
달래줄 사이프러스 나무와 올리브 나무, 삼나무를 심었다. 거실을 여러 그룹의 안락의자와 작은 테이블로 채우고 근사한 벽난로를 설치했으며 식당과
연회장을 대리석으로 꾸몄고 주방 설비를 아내가 좋아하는 고전적인 스타일로 바꾸었다. 뒷산을 정비해 수영장과 골프장과 조깅 코스를 만들었고,
아들의 친구들이 법석을 떨 아담한 놀이공원을 지었다.
2층에는 영화관을, 3층에는 서재를 설치했다. 서재에는 우주의 온갖 별에서 구해온 11만권의 책들을 가득 채웠다. 나는 생전 처음 책
읽기의 쾌락에 빠져들어 오전 내내 책을 읽었다. 책 속에 진리가 있다고 떠버리는 인간은 책이라곤 조금도 읽지 않는 놈임에 틀림없다. 소파와
안락의자와 책상과 베란다를 오가면서 각양각색의 자세로 읽고 싶은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의 진리 따위는 도무지 귀찮아서 알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모든 책은, 특히 문학작품은 이제까지 겪은 실제적인 모험보다도 더 완벽하게 인생에 대한 승리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난 이렇게 편안하게
빈둥거리며 너를 읽고 있는데 너는 인생을 이렇게도 어렵게 살고 있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의 무의식은 중얼거렸다. 그래. 시인(詩人) 잘 하고
있어. 계속 고독과 가난 속에 살며 거지처럼 주접을 떨다가 매독에 걸려 죽도록 해.
오후에는 정원을 가꾸거나 그림을 그리다가 돌아온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을 맞아서 즐겁게 놀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300명 분의 부페 음식과 20상자의 포도주를 주문해서 정원에 파티를 열었다. 나도 연미복을 입고 신사라고 부르는 얼간이가 되어 손님들과
껄껄댔다. 이 모든 것이 도로(徒勞)였고 이 모든 것이 의미였다. 아내를 보살피고 아들을 키운다는 가장 진지한 놀이를 했던 것이다.
다양함 속에서 내 영혼의 불꽃은 타오르리니 너무 오래 지속되는 모든 것들은 나를 불쾌하게 하리라 …… 노래의 한 구절이 정말 내 내면의
말인 것인 양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행성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연방공화국의 정권을 잡는다? 그것은 새로운 모험이었다. 갑자기 노래와 똑같은 감정이 일어나서 핏속에 잠자고 있던 가장 손오공적인 불꽃을
되살렸다.
“좋소. 한번 들어봅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잘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겠소?”
사태는 빠르게 전개되었다. 지역의 테마 파크 개장식에 텔레비전 기자들을 모아놓고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을 때 상당수의 군중들은 내가
농담을 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나의 돈과 중앙정보국의 조직이 곧 여론을 변화시켰다.
매스컴은 입을 모아 전행성적인 환경 위기를 경고하고 빈약한 재정의 국가 조직에 내맡겨진 무책임한 개발, 정치적 불안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연방공화국의 독주에 저항하는 외국인들의 테러도 일어났다. 이런 와중에 텔레비전은 매일 황금시간대에 나의 연설을 담은 광고방송을
내보냈다.
“나는 우리 행성의 야만적인 광신들을 뿌리뽑고 진정한 진보를 이룩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종교와 인종, 민족과 국가의 오랜 체제들은
지금 이기적인 정치인들에 의해 악용되어 광신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행성의 정보 혁명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하나의 행성문화와 하나의
행성경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는 정치인들은 이 같은 변화를 거부합니다. 국가 대결 구조의 낡은 틀을
동원하여 우리 연방공화국을 모략하고 우리에게 잔인한 테러를 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텔레비전 정치연설에 어울리는 온화하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강경하고 단호한 말들을 퍼부어댔다.
“만약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연방공화국은 곧바로 행성문명 창출전쟁에 돌입할 것입니다. 국가기구를 가장하고 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깡패집단과
유일신교의 광신에 물든 암살단들은 더 이상 대화의 상대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 행성의 암세포들입니다. 시기를 놓치면 우리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정치적 위기와 생태계의 붕괴에 직면하게 됩니다. 저는 신속한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할 것입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나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나는 열심히 반박했다.
“낡은 평화주의는 우리의 생명과 자유와 번영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국민 여러분 모든 것은 결국 변합니다. 오직 변화만이 우리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운명의 변덕에 맞서서 우리가 더 빨리 변화합시다. 오늘 저에게 작은 권한을 주시면 저는 여러분께 미래를 지배할 큰 힘을
드리겠습니다.”
1년 후 나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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