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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일그러진 과거 6 - 묵묵히 쉼없이 100분간 황제를 팼다 변경변경취소

오늘의 쉼터 2016. 6. 20. 15:52

제7장 일그러진 과거 6


- 묵묵히 쉼없이 100분간 황제를 팼다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바크 강가의 우리 집은 기자들과 손님들로 미어 터졌다.

나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계속 밭은 기침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입만 열면 목소리가 주책없이 들떠 있었다.

의젓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상황에서 자꾸 본색이 드러나려고 했다.

나는 만취했다는 핑계를 대고 엘로이즈와 함께 4층 침실로 몸을 피했다.

 

우리 부부는 한적한 뒷산을 향해 있는 발코니로 나갔다.

달빛이 아내의 물결치는 금발머리 위에 후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아내가 소리 없이 울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지구를 떠난 후 처음 보는 아내의 눈물이었다.

 

“엘로이즈, 왜 그래?”

 

아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억지로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미안해요. 갑자기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어요.”

 

“무슨 노래?”

 

아내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인생이 얼마나 기막힌 것인지. 그 뜻을 아는 사람 없네. 행복이란 몹시 짧은 것.

가을날의 햇살과 같이 …… . 아내는 낯을 찡그렸다.

 

“죄송해요. 오늘 같은 날에.”

 

나는 한 팔로 신중하게 아내의 허리를 안고 가만히 손을 잡아보았다.

아내는 오랫동안 한 손을 내게 맡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저와 결혼하신 건 그 때 내가 갈 곳이 없었고 바다에 빠져 죽으려 했기 때문이죠?

제가 불쌍해서 이 별로 데려오신 거예요.”

 

“무슨 소리! 난 당신을 사랑해서 결혼한 거요.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저 매일매일 당신에게 잘 해주고 싶어 안달했어요.

내일이면 다시는 당신을 못 볼 것처럼 당신이 좋아하는 요리와 당신의 옷 세탁,

당신의 방들을 청소하고 당신의 물건을 정돈하는 일까지 전부 직접 했지요.

당신이 뭐든지 못 하는 게 없는 마법사라는 사실이 늘 불안했어요.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 제 곁에 머물러 있을 리 없잖아요.

당신이 이렇게 훌륭해지니까 …… 항상 겁을 내던 그 순간이 온 것 같아요.”

 

나는 웃으면서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아내의 터무니없는 공포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순진하고 좋은 사람. 내가 그대 곁을 떠날 리가 있나.

그러다가 나는 조금 섬뜩한 전율을 느꼈다.

이런 겸손과 체념, 욕심 없는 헌신과 순수한 관용 …… 이런 인간적인 미덕은

13세기 지구의 기독교 세계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레벨 0의 문명이 만든 아름다움. 내가 이룩하는 진보는 레벨 2의 문명을 열게 되리라.

종교와 인종, 국가에 얽매인 구세계의 모습이나 생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유롭고 활기찬 사회, 높은 생산성과 완전한 자유무역, 인간적인 발전의 가능성들이 남김없이

구현되는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아내 같은 사람들이 내가 창조할 신천지에 살 수 있을까?

나는 발전의 과정에서 쓸모 없는 존재로 분류되어 공적인 삶으로부터 추방되던 사람들을

우주 곳곳에서 목격했다.

그들은 눈치가 없고 전문성도 없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며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소금이었다.

아내의 젖은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불안했다.

그러나 한번 끓어오르기 시작한 손오공적인 피는 그런 순간적인 감정들을 지워버렸다.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웃어봐요, 엘로이즈. 당신은 오늘부터 영부인이야. 아 하 하 하 하.”

 

그러나 취임 다음 날부터 대통령 궁(宮)의 전화는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취임 축하 파티에서 마신 포도주가 깨기도 전에 연방공화국의 국제 우주정거장 베타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폭파되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

 

82명의 근무자들이 모두 죽고 20여 년간 엄청난 세금을 퍼부어 만든 우주 기지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화가 다락같이 난 나는 과거의 무법자 원숭이로 돌아갔다. 투혼이 불붙었다.

 

역사는 손오공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약간 터프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나는 선임 대통령들처럼 일하지 않았다. 손오공처럼 일했다.

 

<신의 전사단(戰士團)>이란 단체가 우주정거장 테러의 배후 세력으로 밝혀졌다.

나는 ‘정신 나간 짓’ ‘정치적 자살’이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신의 전사단에 도피처를 제공하고 있는

사막 제국으로 몸소 날아갔다.

그리고 제국의 통치자이며 신의 전사단이 믿는 유일신교(唯一神敎)의 대제사장인 무앗딥 황제가

의기양양하게 주재하는 환영 만찬에 두 손을 앞에 모은 얌전한 모습으로 참석했다.

 

나는 그날 밤 모기로 변신해 영빈관을 빠져 나온 후 황제의 침실로 스며들어갔다.

황궁의 침실은 방음 설비가 훌륭했다. 나는 먼저 경호원들과 동침하던 후궁을 때려 기절시켰다.

그리고 정확히 100분 동안 황제를 구타했다.

단 한 마디의 공갈도 하지 않고 묵묵히, 쉬지 않고 개패듯이 패기만 했다.

황제가 정신을 잃으면 화장실로 끌고 가 좌변기에 머리를 처박았다.

깨어나면 다시 때렸다.

구타가 끝나자 황제의 얼굴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팔뚝으로 그의 목을 끼고 꽉 조르면서 말했다.

 

“이 밥 팔아 똥 사먹을 놈아, 감히 내 나라를 분탕친 폭도들을 보호해? 신의 전사?

너희 신이 전지전능해? 내가 왜 세상에 악이 활보하는지 가르쳐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