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4
- 거짓말을 밥먹듯하는 당신이 필요해요
정보국장은 나에게 간곡히 출마를 권유했다.
“상원의원님, 지금은 우리 별 문명의 혁명적 전환기입니다. 우주의 모든 별들은 4단계의 문명으로 분류됩니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레벨 1의 문명. 원자력 같은 핵융합 연료와 상온 초전도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레벨 2의 문명. 태양 같은 항성의
에너지를 직접 끌어다 쓰는 레벨 3의 문명. 시공간의 구조를 움직일 수 있는 초에너지를 사용하며 완벽한 안정성에 도달한 레벨 4의 문명.
우주에는 <천상>이나 <극락> 같은 레벨 4 문명에 도달한 별이 있는가 하면 아직 화석 연료조차 알지 못하는 레벨 0
문명의 별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종, 종교, 민족으로 갈갈이 찢어져 십자군 전쟁 같은 개싸움을 하고 있는 지구가 바로 레벨 0의
문명이죠.”
나는 뜨끔했다. 정보국장의 이름은 종규(鐘 )라고 했다. 천상 근위군 총사령관인 이랑진군 조욱 밑에서 쭉 정보참모로 일했던 경력을 가진
인물. 이 녀석이 내 행적을 쭉 꿰고 있구나. 내가 과거 천상을 분탕질한 제천대성이라는 것도 안다 이거지. 그러나 알면 아는 거지 왜 쓸데없이
남의 과거는 파헤치고 지랄이란 말인가. 나는 대뜸 우락부락하게 말했다.
“지구가 어쨌다는 거요. 지구가. 대통령 출마를 하라면서 남의 별 이야기는 왜 하나? 당신이 킹 메이커라는 소문은 들었어. 방귀깨나 뀌고
사는 줄은 알고 있으니까 빨리 본론이나 말해 봐.”
순간 정보국장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싸악 칼로 오려낸 듯 쌀쌀하고 차가운 것이 번득였다. 나는 한 술 더 떠서 그의 눈 앞에 험악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코딱지를 후비며 물었다.
“왜 초 치는 소리 한다고 화났어? 나 원래 이런 놈이야. 잘 알잖아.”
“아, 아닙니다.”
정보국장은 헛기침을 하며 앉음새를 고치더니 감정을 억제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문명을 레벨 1에서 레벨 2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행성 정부가 수립되어야 합니다. 무분별한
분쟁과 생태계 파괴를 방치하는 국가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이 역사적 과업을 완수할 위대한 지도자는 오직 의원님뿐입니다. 의원님께서 꼭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
“왜? 그게 어째서 나야?”
“행성 정부가 수립되고 하나의 행성 문화가 전파되고 행성 문명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꼭 한 가지 사라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광신(狂信)입니다. 사악한 정치인들은 종교, 민족, 인종, 국가 같은 낡은 고정관념 뒤에 숨어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고정관념에 대한 맹신을 비판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런 시기에 의원님보다 더 훌륭한
본보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주사(宇宙史)를 통틀어 손오공님보다 더한 변덕의 왕자는 없었습니다. 의원님께선 가히 우주적인 기념물이십니다.”
“너 지금 나 욕하는 거지? 내 정체를 까발겨 보니 믿을 수 없는 놈이다, 이런 말 아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늘에 맹세코 의원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의원님의 영웅담은 우주의
모든 별에 전해져서 <서유기> <취경 전쟁> <원숭이 왕의 모험> 같은 책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온 우주가
의원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얽매이는 것을 혐오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무엇이든 제멋대로 해버리는 수완가. 우리 행성에 필요한 지도자는
바로 그런 분입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무슨 거머리를 쳐다보듯이 정보국장을 건너다보았다. 정보국장은 홀홀히 물러서지 않았다.
“의원님을 향한 불멸의 존경을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과거 손오공님이 제천대성이란 높은 지위를 박차고 천도복숭아를 훔쳐 천상을 도망칠 때
지었다는 <변덕쟁이의 여행 노래>는 지금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재평가되어 은하계 시가문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정보국장은 어리벙벙한 내 앞에서 친히 몸을 일으켜 엄숙하게 차렷 자세를 취하더니 내가 지었다는 시를 낭송했다.
떠나리라.
착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 경박하기도 하고 엄격하기도 한 나를 찾아서.
다양함 속에서 내 영혼의 불꽃은 타오르리니 너무 오래 지속되는 모든 것들은 나를 불쾌하게 하리라.
근두운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
천도복숭아 정원의 나무그늘에서 쉬는 것.
천상의 도 닦는 늙은이들이 나를 둘러싸게 하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이니 다 떨치고 나서리라.
길은 다른 길을 불러 끝이 없으리라.
나는 삶 속에서 삶을 증오하리라. 죽음 속에서만 삶을 사랑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는 단 한 순간만 나를 기쁘게 하는 자.
내가 존경하는 자는 어디에고 존재하지만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
변화무쌍(變化無雙)만이 나를 지배할 수 있나니.
오래 머물렀도다, 나는 떠나리라.
시 낭송을 듣고 있던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도대체 어떤 뻔뻔스런 3류 소설가 놈이 자기 소설 속에 이런 개떡 같은 것을 내 시라고 끼워
넣었단 말인가. 머리로 열이 오르다 못해 뱃속이 다 꾸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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