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3
- 의원님,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나요?
엘로이즈가 이방 남자와 놀아났다는 소문이 마을에 떠돌았다. 격앙된 마을 사람들이 엘로이즈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사람들은 신을 믿지도 않는 악마 같은 인간과 통정한 여자를 가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지구인들의 촌스러운 인종주의와 종교관은 남녀의 감정적 개인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싸움이 일어났고 집이 불탔다. 가족들은 바람난 딸을 쫓아냈고 엘로이즈는 비통한 심정으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소식을 듣고 내가 달려갔을 때
엘로이즈는 근처의 어부에 의해 간신히 구조된 직후였다.
나는 난생 처음 나 자신의 행위가 만든 폐허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엘로이즈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흙투성이가 되어
모래사장에 쓰러져 있었다. 순간 나는 내가 파괴에 지쳤고 승리에 지쳤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패배하고 싶었다. 이 여자에게 져서 평생 이
여자의 포로가 되고 싶었다.
며칠 후 엘로이즈와 나는 한밤의 야음을 틈타 친구들이 마련해준 배로 섬을 탈출했다. 동지중해의 십자군 도시 아크레에 도착한 우리는 말과
식량과 하인을 사서 먼 동남쪽에 있는 페르세폴리스로 향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성전(聖殿) 도시였던 그곳에는 내가 아는 초공간의 구멍이
있었다.
도중에 우리는 몇 개의 군부대를 만났다. 무게 40킬로그램이 넘는 금속 갑옷을 입고 괴상망칙한 창을 휘두르는 십자군 기사들도 있었고 가죽
갑옷을 입고 반월도를 날렵하게 휘두르는 무슬림 기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여자를 데리고 여행하는 내게 시비를 걸다가 곧잘 강도로 돌변했다. 나 자신의 정체가
감추고 싶었지만 엘로이즈를 속일 수가 없었다.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은 내 피부에 상처를 내지 못했으며 조금만 힘 조절을 잘못하면 여의봉의 일격을 맞은 기사가 30미터 밖으로 날라갔다.
말과 하인이 죽자 엘로이즈를 업고 180킬로미터를 2시간에 달려가기도 했다. 고려인은 힘이 세다는 말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당신은 악마인가요?”
엘로이즈는 바들바들 떨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도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굳이 그녀의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마로 자처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주워들은 말로 이렇게 그녀를 안심시켰다.
“아니, 나는 그냥 마법사요. 이를테면 아더 왕을 모셨던 마법사 멀린 같은 사람이지.”
그녀는 내 말을 믿었고 체념했다. 사랑과 달관이 담긴 목소리로 악마만 아니면 괜찮다며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한 나는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발견한 초공간의 구멍을 찾았다. 우리는 그 구멍을 통해 지구를 벗어나 이틀을 전진했다.
그리하여 고대 중국인들이 ‘봉래산(蓬萊山)’이라 불렀고 페르시아인들이 ‘조상님들이 계시는 영원의 나라’라 부른 봉래 행성에 이르렀다.
봉래 행성에는 오래 전 지구에서 이주해간 인간 종족과 얼굴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팔다리가 긴꼬리 원숭이처럼 길고 귀가 뾰족하며,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달려 있는 ‘거보’라는 종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자연 환경은 지구와 비슷했고 기후는 온화했으며 13세기 지구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봉래 행성에서 나는 땅을 매입하고 최고의 기술자들과 목수들을 고용해 아득한 지평선을 거느린 푸른 초원 위에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
132개의 침실이 있는 지상 4층 지하 2층의 하얀 석조건물을 짓고 엘로이즈의 걸음으로 1시간쯤 걸리는 산책로를 만들었으며 사시사철 들꽃이
피어나는 선경(仙境) 같은 언덕을 꾸몄다. 초원을 굽이쳐 흐르는 바크 강의 물줄기를 끌어와 폭포도 하나 만들었고 보오트를 띄울 수 있는 나루터도
만들었다.
엘로이즈가 너무 적적하지 않도록 사설 공원도 하나 만들었다. 좋은 잔디를 깔고 소박한 놀이 시설과 피크닉 테이블을 설치한 그 곳에는 저녁
때면 하루 일과를 마친 이웃 주민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왔다. 우수한 집사와 가정부, 요리사, 정원사를 고용해서 이 모든 시설을 관리하게
했다.
엘로이즈는 행복해 했다. 그녀를 위해 마련된 저택의 쾌적함보다 그녀를 배려하는 나의 마음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듯 했다. 초원 위의
하얀 집에서 엘로이즈는 임신했고 10달 후 몸에 털은 좀 많지만 아주 잘 생긴 인간 종족의 사내 아이를 낳았다.
나의 인생은 사회적인 관계 속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자식이 생기고 집이 생기자 공적인 삶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나는 사설 공원에 놀러온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으며 그들의 부탁으로 몇 개 회사에 돈을 빌려주었다. 나, 바크 강가 하얀 저택의 주인 손오공은 ‘투자자’라는 사회적
존재가 되었다. 몇 번의 투자에서 성공을 거둔 뒤 나는 경영이 악화된 미디어 그룹의 대주주가 되었다.
그러자 아내와 아들의 사회적 삶에 그럴 듯한 간판을 선물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나는 연방 공화국의 상원의원에 출마했다. 선거 전문가가
고용되어 나의 경력과 감동적인 일화들을 창작했으며 내가 소유한 각종 방송매체들이 이것을 기정 사실로 만들었다. 광고에 아낌없이 돈을 뿌렸다.
나는 거뜬히 당선되었다. 아들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막후에서 나라를 움직이는 중앙 정보국장이 나를 찾아왔다.
“손오공 상원의원님,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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