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일그러진 과거 1
- 날 평범한 남자로 사랑해 줄 여자가…
기억을 회복하라는 스승의 말을 듣자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교차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공포와 함께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나는 나 자신의 무의식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가족과 관련된 과거에 대해 들을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다.
작금만 해도 우마왕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에 접촉하자마자 나의 마음은 뒷걸음질쳤던 것이다.
“손오공, 그대가 자신의 진정한 고통을 아는 것은 이 전쟁만큼 이 재앙만큼 중요해요. 모든 것이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겹쳐져 있어요.”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복잡한 과거사는 알고 싶지 않아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대는 왜 과거를 어둠 속에 묻어두고 싶은 거지요?”
스승의 목소리는 힘이 넘쳐흘렀고 얼굴은 미소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빛은 너무 강해서 마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제까지 사경을
헤매던 사람이 아니었다. 스승은 역시 최종 수행자였다. 생과 사를 겪지만 동시에 생사를 초극(超克)해서 언제라도 자신의 희망에 따라 완전한
해탈(解脫)에 이를 수 있고 또 전생할 수도 있는 존재. 순간 내 안에서 울컥 하는 거부감이 일어났다.
“버리고 떠난 옛집에 왜 돌아갑니까? 나 손오공은 세상과 부딪히는 용사입니다. 태풍과 겨루고 태풍을 휘어잡고 태풍을 타도하면서 오직
앞으로만 전진합니다.”
스승은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대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어요. 자신이 진짜인가 클론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공포는 본질적으로 그대를 지배하지 못해요. 정말로 그대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것이에요. 자, 기억의 문을 활짝 열고 상실했던 감정들과 만나보세요.”
스승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승의 손이 머리에 살짝 닿는 순간 눈 앞은 하얀 섬광으로 가득 찼다. 오싹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 빛은 눈
앞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내 영혼을 빨아들였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이마가 안쪽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서서히 벌어지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것은 고대 인도인들이 ‘사크티 팟트’라 부른 영적 에너지의 주입이었다. 타인의 영혼을 각성시켜 사마티(삼매경)로 데려간 뒤 죽음과 전생의
과정을 스스로 체험하게 하는 수행이었다.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약 1분 정도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마티에 들어간 나의 의식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경험했다.
나는 하얀 섬광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갔다.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 극락을 나온 나는 혼자 살았고 모험을 했다. 나는 새로운 경험과
격렬함과 느낌이 있는 생활을, 행위를, 창조와 창조를 위한 파괴를 열망했다. 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정신이었다. 끝없이 떠났고 여행했으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비참하게 멸망시켰다. 나는 마침내 …… 파괴에 지쳐버렸다.
이 곳 주민들이 지구라고 부르는 별로 돌아왔을 때는 13세기였다. 한없이 가능한 경험을 추구한 끝에 나는 그 때 다른 것을 열망하고
있었다. 감정적 유대를 통해 나를 다른 사람의 인생과 연관 짓는 경험. 즉,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내는 털 없는 원숭이가 좋았다. 모든 문명화된 원숭이 종족에게 나의 악명은 전설적인 것이었다. 나는 나를 평범한 남자로 사랑해 줄 여자가
필요했다.
신부감을 찾기 위해 나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으로 가서 고려인이 되었다. 1231년 살리타이(撒禮塔) 원수가 이끄는 몽골군이 고려로
쳐들어왔다. 나는 몽골 기병대의 졸병이 되어 지구의 서쪽으로 나아갔다. 널려 있는 시체들, 검은 연기가 소용돌이치는 마을들, 안개 낀 초원,
스산한 자작나무 숲의 타이가를 지나갔다. 바람 부는 해안의 푸른 고요와 눈 덮인 산정의 차디찬 달빛을 지나갔다. 자고 나면 새로운 땅과 새로운
인종의 여자들이 나를 매혹시켰다.
1248년 나는 엘지기데이(亦勒赤格) 원수의 서방원정군을 따라 흑해(黑海)에 이르렀다. 알타이 산맥에서 이밀 지방으로, 세미레치에 강에서
일리 강으로, 시르다리아 강에서 아무다리아 강을 거쳐 흑해 연안의 도시 갑파에 도착한 것이었다. 출세 같은 귀찮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듭되는 싸움 때문에 나의 전투능력이 알려져 나는 그 무렵 장군이 되어 있었다. 이름은 소코르(鎖豁兒)라고 했다. 어느 날 원수가 나를 불렀다.
“소코르 장군, 그대는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지요? 여기서 삼천리 떨어진 키프로스 섬에 갈리아(曷羅:프랑스) 인들의 왕이 머물고
있소. 가서 그를 우리의 동맹군으로 포섭하시오.”
엘지기데이의 임무는 압바스 왕조의 이슬람 제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 서쪽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했던 엘지기데이는 적의
적, 즉 대군을 이끌고 십자군 원정을 나선 루이 9세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1248년 가을 키프로스 섬에 주둔한 젊은 프랑스 왕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의 처소에서 나는 일생일대의 감동에 사로잡혔다.
내가 체험한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모아놓은 여자, 나의 신부, 나의 연인, 나의 누이, 엘로이즈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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