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삼장법사 최후의 전생(轉生) 6
- 인생이 꼬이니까…
우리는 스승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몸에 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자선병원으로부터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다 들 방독면을 쓰고 번쩍거리는 플라스틱 섬유의 방균복과 장갑, 장화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스승의 양팔에 링거를 꽂고
콧구멍으로 산소 튜브를 넣은 뒤 뭔가를 주사했다. 순식간에 스승은 심전도 코드를 무수히 단 중환자로 변했다.
의사들이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우리를 보고 사색이 되었기에 나는 섭혼술로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우리는 스승이 오늘밤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방을 나왔다. 우마왕의 안내로 절 앞의 마을로 내려온 우리는 구운 개다리를 뜯으며 진탕만탕 술을 퍼마셨다. 팔계와 오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거 참 이상하지. 잘 나가고 있을 때는 스승님 같은 건 요만큼도 생각한 적이 없어. 인생이 안 풀리니까 자꾸 옛날 생각이 나네. 스승님은
늘 내 편을 들어주었지.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이랑진군의 머리가죽도 벗길 수 있어.”
팔계의 푸념이었다. 나도 우울했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스승의 모습도 우울했지만 스승이 남긴 ‘이타행’이라는 말이 더욱 나를
우울하게 했다. 이 세상이 모두 겹쳐져 있고 우리는 모두 남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면 내 장구한 일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스승님은 우리가 얼마나 허랑하게 살아왔는지 모르시는군. 우리끼리 극락으로 가라니. 큰형, 작은형, 어디 좋은 약 좀 없을까?”
오정이 앞골 뒷골이 같이 쑤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것이 있을 리 있나. 나는 약이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 지구의 문화인들이
신용카드처럼 가지고 다니는 질병들은 나와 인연이 없다. 당뇨병, 류마티스, 위산과다, 고지혈증, 협심증, 암, 백혈병. 이런 고품격의 질병들은
내 핏속을 흐르는 야만적인 에너지를 싫어한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모든 독소는 펄펄 끓는 내 혈액의 자연치유력에 의해 …… 이 때 나에게 해결책이 떠올랐다.
“내 피를 복용하면 어떨까?”
“뭐라고?”
“내가 천상의 반도원에서 천도복숭아를 도적질해 먹은 걸 잊었어? 내 혈액에는 9천년 만에 한번씩 익는 천도복숭아의 신비한 성분이 돌고
있다고.”
“알코올이 더 많이 돌고 있겠지.”
술이 취해 얼굴이 불콰해진 팔계의 반응이었다.
“이 자식이!”
“게다가 형은 진품도 아니고 클론이잖아.”
나는 술상을 뒤엎고 팔계를 두들겨 팼다. 나도 꼭지가 돌아갈 정도로 만취해 있었던 것이다. 팔계도 그동안의 의기소침을 만회하겠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지만 어림도 없었다. 정신을 잃은 팔계를 거꾸로 들어 꿀꿀이죽통에 처박아버린 나는 식식거리며 돌아와 우마왕에게 팔뚝을 내밀었다.
“자, 링거병으로 하나 가득 뽑아 봐.”
우리는 선방으로 돌아가 산소호흡기를 뺀 모든 장치를 제거하고 스승의 몸에 링거병에 든 나의 혈액을 주입했다. 의사들이 혈액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악을 썼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의 혈액을 받은 스승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가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온 몸에서 검은 땀이 솟구쳐 나오면서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강한 전류에 감전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스승은 그런 상태로 24시간을 앓았다.
다음 날 스승은 식은땀투성이가 되어 깨어났고 열이 내렸다. 극도로 쇠약해졌지만 두통과 심장발작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시 24시간이 지나자
스승은 병상에서 몸을 일으켜 심원사 경내를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우리는 스승을 따라 절 바깥의 산길을 산책했다. 얼굴이 엉망이 된 팔계도 쩔뚝거리며 따라왔다.
나무들 사이로 뻗어 있는 단단한 흙길은 조용했다. 불과 40 킬로미터 북쪽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오르자 잿빛 겨울숲 속에 놓여 있는 보광전 팔작지붕의 간결하고도 소산한 아름다움이 눈길을 끌었다.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새어 나오는 햇살이 우리의 머리 위로 비스듬히 비쳐왔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찾아왔다.
발 앞에 떨어지는 햇살은 일련의 다른 이미지를, 외양은 똑같으나 미묘한 점에서 다른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 그곳은
극락이었다. 옛날 나는 이렇게 스승을 시봉하고 이런 길을 걸었었다.
14년에 걸친 오랜 여행을 마친 직후. 넉넉한 기쁨과 겸허한 성취감, 그윽하게 빛나는 극락의 아름다움이 이어지던 길. 그 때 스승이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물이 흐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오공, 옛 일을 생각하고 있나요?”
나는 가슴께가 선뜩해져서 눈길을 돌렸다. 스승의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맑은 물처럼 내 안의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그대는 나를 다시 이승에 붙들어놓았어요. 나는 그 보답으로 그대의 지나온 생을 보여 주겠어요.”
“지, 지나온 생이라뇨?”
“그대의 기억에는 생의 어떤 부분이 지워졌어요. 나는 그대의 혼백을 삼매경(三昧境)으로 데려가 모든 카르마(業)를, 심지어 죽음과
전생(轉生)까지도 다시 체험하게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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