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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삼장법사 최후의 전생(轉生) 4 - 삼장법사가 미국여자로?

오늘의 쉼터 2016. 6. 13. 17:04

제6장 삼장법사 최후의 전생(轉生) 4


- 삼장법사가 미국여자로?



우마왕은 내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이 팔계, 오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른 침을 삼키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되도록 무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히 스승님인가? 어떻게 삼장법사님을 찾았나?”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슬러 올라갔죠.

이전의 생애에서 법사님께서는 한국의 선승(禪僧)으로 1946년에 입적하여 극락에 가셨고

얼마 후 극락을 떠나 다시 지구에 환생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 전생(轉生)하신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셨기에 그 날,

그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역추적해서 어릴 때부터 영적인 능력을 보이시고 커서는

출가하신 삼장법사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극락으로 가셨다가 다시 전생을 하셨다니?

그것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 극락에서 추방되셨다는 말이 아닌가.”

 

“아닙니다. 이전의 생애에 삼장법사님은 이미 성불(成佛)하시어

이 아스트랄 세계를 여의시고 극락으로 가셨었습니다.

그러나 고국에 장차 큰 고통이 닥칠 것을 알고 중생을 돕기 위해,

중생을 섬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이 세계에 남아 있겠다고 자원하시어

스스로 전생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더욱 스승을 만나기가 싫어졌다.

나는 도대체가 힘도 없으면서 세계의 재난을 책임지고 떠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

 

그런 자들은 진리니 도니 하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내세워 자신이 왕관 없는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는 불가능한 세계를 꿈꾸고 있다.

 

지난 과거를 더듬어보면 스승은 얼마나 앞뒤가 꽉꽉 막힌 당나귀였던가.

내가 너무 살인을 즐긴다고 툭하면 주문을 외워 내 머리의 쇠테를 죄어댔다.

팔계의 말만 믿고 나를 파문해서 고향으로 쫓아 보낸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

가까운 과거의 기억들이 마치 짙은 안개에 휩싸인 듯이 희미한데 비해

스승과 함께 했던 서역 여행의 기억들은 심란할 정도로 똑똑하게 그려진다.

그런 스승이 수십 번 더 전생을 하면서 공덕을 쌓아 그렇게 거룩해졌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내가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다물자 오정이 우마왕에게 물었다.

 

“이생에서 스승님의 속명과 법명은 무엇이고 세수는 얼마나 되시는지요?”

 

“예, 삼장법사님의 속명은 트리니티 앤 모스, 법명은 현장(玄奬), 세수는 서른 여덟이십니다.”

 

“트리 … 뭐라구요? 아니 그럼 스승님이 …… ?”

 

“그렇습니다. 이생에서 법사님은 미국 땅에서 여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팔계와 오정도 할 말을 잊은 듯 뒷통수만 긁적거렸다.

우마왕은 간단하게 스승님의 속연(俗緣)을 요약해주었다.

 

이생에서 삼장법사님은 1965년 보스턴에서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영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MIT의 생물학 교수였다.

 

트리니티는 어릴 때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였다고 한다.

단순히 학교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사에 대해 놀라운 이해력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녀는 8살 때부터 동네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그들의 개인적인 고민을 듣고 극적인 해답을

조언하곤 했다고 한다.

 

자라서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학부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서른 두 살에 트리니티는 연봉 20만불을 받는 알츠하이머 병 전문의였고

사랑하는 남편과 6살 난 딸을 가진 행복한 주부였다.

 

전세계의 돈 많은 노인들이 병의 진행을 막고 인공지능 장치를 이용해

완벽한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트리니티의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그 해 딸이 죽자 그녀는 홀연 병원을 사직하고 미국을 떠났다.

학부 때부터 한국의 선불교를 배우고 참선 수행을 했던 그녀에게 이것은 사실상의 출가였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을 떠돌며 마음 공부를 한 뒤 트리니티는 서울의 화계사에서

수계를 받고 ‘현장’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우마왕은 우리를 심원사 선방으로 안내했다. 절의 안뜰을 가로지르면서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부디 조심해주십시오. 지금 법사님께서 매우 위독하십니다.”

 

“아직 젊으신데 왜 위독하시단 말입니까?”

 

“두 달 전 심원사 주지로 임명되어 오신 뒤 이 자선병원을 만드셨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많지만 초기에는 혼자 30,40명씩 수술하며 잠도 못 자고 일하셨어요.

게다가 군과 민간단체들을 찾아 다니며 식량과 약품을 얻어다가 전쟁통에 부상한

민간인들과 고아들,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셨어요.

그러다가 생물학 무기에 감염되셨어요.”

 

“지금 용태는 어떻소?”

 

“심각한 패혈증입니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심한 두통과 오한, 심장발작에 시달리고 계세요.”

 

우마왕이 두어번 헛기침을 하고 선방을 열었다.

 

스승이 머무는 선방은 작은 방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깥 방은 온갖 언어로 씌어진 책들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빽빽이 쌓여 있었고

안쪽 방은 아무 가구도 없는 빈 벽에 밀짚모자와 두루마기 하나가 걸려 있었다.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시오. 숙생(宿生)의 인연이 있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