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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43장 공생당 [7]

오늘의 쉼터 2016. 6. 20. 14:16

<449>43장  공생당 [7]


(897) 43장 공생당 - 13



몸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여자 셋이 노래를 부른다.

밝고 흥겨운 노래, 가사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남녀의 사랑 노래다.

서동수는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여자들을 응시했다.

이곳에서는 키 크고 볼륨이 있는 여성이 미인 취급을 받는다.

볼륨이라고 해서 통통한 정도는 아니다.

곡선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몸매다.

얼굴형도 갸름하면서도 윤곽이 선명하며 쌍꺼풀은 드물다.

대체적으로 천연미인. 제복이 잘 어울리는 여성.

이렇게 파티에 초대받아 북한 미인들을 볼 때마다 서동수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저런 미인들을 모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러고는 꼭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연산군과 채홍사다.

“한잔 드시지요.” 

김동일이 술잔을 들면서 말했다.

원탁에 나란히 앉은 둘의 정면이 무대다.

거리는 5m 정도밖에 안 돼서 가수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들린다.

술잔을 든 서동수가 50도짜리 백두산 인삼주를 한 입에 삼켰다.

그때 김동일이 옆으로 얼굴을 붙이더니 말했다.  

“이번에도 군에서 장난을 치려고 합니다. 형님.”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시선을 주었을 때 김동일이 빙그레 웃었다.

다시 가수 셋이 노래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더 경쾌한 리듬이다.

파티장 안에는 원탁이 둘 놓였는데 각 원탁에는 20명가량이 앉았다.

합(合)이 40명쯤 된다.

서동수가 앉은 주빈석에도 사복 차림의 장군이 절반 정도는 된다.

김동일이 힐끗 가수들에게 시선을 주더니 다시 서동수의 귀에 입을 가깝게 대었다.

“지금 우리 원탁에 앉은 장군 중에서도 셋이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지요.”

마치 가수들의 미모를 말하는 것 같다.

김동일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도 따라 웃었다.

그러고는 낮게 물었다. 

“방법이 있습니까?” 

“배후가 중국이오.” 

그래놓고 다시 무대 쪽에 시선을 준 김동일이 손가락으로 가운데 가수를 가리키며

서동수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유학이를 시켰더니 이자가 중국 쪽에 붙은 군 강경파와 내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중첩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는 김동일이 다시 빙그레 웃었다.

서동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문득 김동일에 대한 감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권력 세계에서 수십 년 지내온 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유 같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못한다.

한국의 역대 어떤 지도자라고 해도 이런 분위기에선 단 며칠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김동일은 30대 중반이지만 젖을 떼면서부터 지도자 수련을 받은 것이나 같다.

그때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기 시작하던 김동일이 따라서 손뼉을 치는 서동수의 귀에

다시 입을 가깝게 대었다.

“아버지가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지요. 아무도. 그 말씀이 내 머리에 박혀 있지요.”

그러고는 얼굴을 펴고 웃는다.

노래는 절정에 이르렀고 김동일의 손가락 표적이 된 가운데 가수는 얼굴이 상기된 채 열창을 했다.

미인이다.

저런 얼굴에 저런 몸을 갖추고 있다니.

손뼉을 치던 서동수의 시선이 여자와 마주쳤다.

김동일은 진한 화장을 싫어해서 여자는 민얼굴이나 같다.

갸름한 얼굴형에 반짝이는 눈, 막 벌어진 꽃잎 같은 입술, 목소리는 얼마나 낭랑한가?

그때 노래가 끝나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가수들이 인사를 했다.

그러나 김동일이 가운데 가수에게 손짓을 했다.


“형님, 미인이지요?”

김동일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입안의 침만 삼켰다.

그때 가수가 다가와 인사를 하더니 서동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898) 43장 공생당 - 14



여자 이름은 송은하, 27세, 평양악극단 소속이 된 지 4년째라고 했다.

밤 11시 반. 이곳은 제11초대소의 방 안이다.

송은하와 함께 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송은하는 은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는데 온몸의 곡선이 드러났다.

초대소 방에서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서동수는 오늘도 감동한다.

김동일과 나눈 한반도 역사를 바꿀 만한 이야기도 잠깐 잊을 정도다.

그만큼 여자의 매력은 정신을 흐리게 한다.

백두산 인삼주를 마신 취기가 뒤늦게 올라오고 있다.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갈 거냐?” 

뻔히 알면서도 서동수가 묻자 송은하는 다소곳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장관님.” 

“언제부터 내 파트너가 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냉장고 옆쪽 찬장에서 위스키병과 잔을 꺼내면서 물었더니

송은하가 서둘러 다가와 거들면서 대답했다. 

“연회 준비를 하면서 들었습니다.” 

“마른안주나 탁자 위에 갖다 놔.” 

“네, 장관님.” 

“내가 여자 좋아한다고 위원장께선 매번 신경을 써 주시는군.”

혼잣소리처럼 말한 서동수가 술병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마른안주와 얼음통까지 탁자 위에 갖다놓은 송은하의 얼굴에 엷게 웃음이 떠올라 있다.

서동수가 송은하의 잔에도 술을 채워주면서 물었다.

“하지만 난 꼭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야.

그것을 위원장께서도 아시지. 넌 내 파트너가 된 대가로 뭘 갖고 싶어?”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송은하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맑은 눈, 속눈썹이 가늘어 눈동자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서동수는 자신의 몸이 송은하의 눈 안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을 마력(魔力)이라고 하는가? 그때 송은하가 말했다.  

“평양악극단이 한랜드에서 정기 공연을 하도록 해주세요.” 

송은하의 두 눈이 반짝였고 윤기 흐르는 입술이 반쯤 벌어져 있다.

서동수가 시선만 주었을 때 송은하의 말이 이어졌다. 

“단원이 모두 70명입니다. 가수가 8명, 밴드가 27명, 무용수가 23명, 제작원이 10여 명인데요…….”

“오늘 봤어.” 

서동수가 말을 잘랐다.  

“네가 가장 눈에 띄더구나. 위원장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작년에 중국 순회공연을 했는데 수익을 별로 내지 못했어요.”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송은하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남조선의 K-팝이 대세거든요. 우린 그런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래드에서도 K-팝이 인기인데.”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송은하를 보았다.

K-팝이 일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금방 모방할 수 있다면 지금쯤 세계 각국에서 알파벳 26자를 다 쓰고도 모자랄 만큼

팝이 범람했을 것이다.

한 모금 술을 삼킨 서동수가 말했다.


“좋아. 평양악극단 전용 극장을 만들어 주도록 하지.”

숨을 들이켠 송은하가 시선만 주었을 때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악극단을 한랜드의 전속 극단으로 계약하면 되겠군. 그렇지?”

“그, 그것은…….”

송은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정기 공연을 부탁했는데 전속 극단으로 계약하겠다니.

예를 든다면 월셋집을, 그것도 후불 조건으로 월셋집을 얻으려고 부탁했다가

덜컥 전셋집을 공짜로 주겠다는 말을 들은 것과 같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물론 조건이 있어. 네가 내 애인이 되는 거야. 그쯤은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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