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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삼장법사 최후의 전생(轉生) 3 - 삼장법사님이 세운…

오늘의 쉼터 2016. 6. 13. 16:59

제6장 삼장법사 최후의 전생(轉生) 3


- 삼장법사님이 세운…




근두운은 한강을 건너 북으로 북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생체의 열과 속도, 텔레파시까지 감지하는 조요경을 염려해서

시속 60킬로미터 정도를 유지했다.

 

한강 주변의 경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모든 한강 교량들이 폭파되었고 그 뒤에 진격하는 군대가 가설한 듯한

임시부교가 놓여 있었다.

한강 북쪽은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던 것 같았다.

거리마다 산산이 부서진 건물과 트럭들이 처참한 몰골로 누워 있었다.

어떤 곳에는 처참하게 찢어져 누군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서울이란 게 엄청 큰 도시군. 이 전쟁은 우리 수렴동보다 더 끔찍해.

팔계의 말에 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끔찍할 수 밖에. 한국 전쟁의 승패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었으니까.

한국은 수도권에 산업시설의 40퍼센트, 인구의 50퍼센트가 밀집해 있는 나라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 중요한 동원 자원을 거의 다 장악하게 되고 한국군은 대전 이남에서

 예비군을 동원해야 하거든. 그렇게 되면 병참선도 일본과 미국으로 길어지는데 북한군은

그 병참선을 끊어놓을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지.”

 

근두운은 서울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친 거대한 암산을 넘었다.

순간 우리는 숨을 멈추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에서 대지의 고통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도로란 도로는 기계화 부대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모조리 파괴되고

저지용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길에 그을려 새까맣게 타거나 무너졌다.

어떤 건물에는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었다.

 

땅은 온통 폭진(爆塵)의 검은 색과 피의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구릉은 모두 참호(塹壕), 간이호, 개인호로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었고

다 치우지 못한 시체의 파편들, 구멍난 철모, 부러진 소총, 폭파된 박격포가 뒹굴고 있었다.

 

그 앞으로 북한군 탱크 수백 대가 표적 탐지 인공위성에 의해 정밀 유도되는

브릴리언트 탄을 맞고 고철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조금 더 날아가자 최근 소규모 유격전이 있었던 듯 백여 구의 시체가 산기슭에 뒹굴고 있고

방독면을 쓴 사망등록계 사병들이 서류철을 들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슬프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재수도 없지. 전쟁은 미국이 일으키고 전사는 한국인들이 하다니.”

 

“이런 게 디지털 전쟁이래. 2005년 2월 1일까지 미군 전사자 14명,

남북한의 한국인 사망자 620만명. 전 인구의 8.7퍼센트가 죽었다는군.”

 

노트북으로 [CNN]의 웹페이지를 들여다보던 사오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후방도 지옥이야. 식량과 의약품은 공수되는데 물이 없대.

물이란 물은 모두 생물학 무기와 화학 무기에 오염되었거든.

한국인들 말이 차라리 1950년의 전쟁이 더 견딜만 했다고 그런다는군.”

 

“이 전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글쎄,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은데. 미군과 한국군은 평양을 점령했고

평양을 중심으로 각 지역 요새에서 저항하는 북한군들을 소탕하고 있으니까.”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북한군이 왜 이렇게 무력하게 당했지?”

 

“무기가 있으면 뭐해. 눈이 없는데. 디지털화된 적군에게 아날로그 군대가

미사일 자랑을 하는 건 우리 화약 있어, 불살라 줘 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미군은 지하침투 집속 폭탄으로 지하요새의 탄도미사일들을 초기에 날려버렸어.”

 

전쟁의 폐허는 끝없이 북으로 북으로 이어졌다.

어디 없이 시체가 흩어져 있었고 쓰러진 도로 표지판에는 <파주> <문산>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얼마를 더 날아가자 어떤 건물도 없는 논두렁 밭두렁들이 보이다가 황량한 갈대밭이 나타났다.

근두운은 임진강을 건너 서북쪽으로 날아갔다.

 

자비산에 다다른 것은 저물녁이었다.

나무들이 잎새를 다 떨궈버린 겨울산에는 전쟁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탈속

청정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1952년 이전에는 ‘황해도 황주군 여계산’이라고 불리웠다는 이 산은 지도를 보면

평양에서 남쪽으로 40킬로미터 거리였다.

여기서 우마왕과 삼장법사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산길을 걸어 절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어리둥절해졌다.

절 옆의 반반한 공터에 ‘MSF(국경없는 의사회)’ ‘ICRC(적십자 국제위원회)’ 등의

마크가 붙은 천막들이 가설되어 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로 꼭꼭 여미고 난로를 피운 약 수십 개의 간이 침대에는

퀭한 눈을 하고 팔다리에 피 묻은 붕대를 감은 북한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먹지 못해 뼈만 남은 몸 때문에 머리만 기형적으로 커 보이는, 탈진한 아이들도 누워 있었다.

그들 옆을 파커를 입은 의사와 간호원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나는 천막 사이를 지나다가 가스불을 피워놓고 방수제를 녹이며 고장 난 발전기

차량을 고치고 있는 중년 남자를 보았다.

벙거지를 쓰고 얼굴에 온통 오일과 검땡을 묻힌 남자는 나를 보더니 희색이 만면해졌다.

 

우마왕이었다.

 

“손오공님, 오실 줄 알았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여기는 삼장법사님이 세운 자선병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