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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도주 3 - 여긴 한국의 인천 앞바다. 美·北간에 전쟁중…

오늘의 쉼터 2016. 6. 13. 15:25

제5장 도주 3


- 여긴 한국의 인천 앞바다. 美·北간에 전쟁중…



허공에 던져진 나의 몸은 아래로 아래로 줄달음치면서 삭풍에 휩싸였다.

겨울 하늘의 냉각된 공기가 눈썹을 얼리고 얼굴을 얼리고 가슴을 옥죄었다.

곧이어 밑으로부터 몰아쳐 올라오는 차가운 운명처럼 바닷물이 단단한 벽이 되어

나를 때렸다.

 

나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가 자맥질 끝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귀를 찢는 폭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불을 뿜는 긴 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벼락이 뭔가를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괴물 수리매를 꼭 닮은 헬리콥터들이 종횡무진 하늘을 누비면서 엄청난 화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하늘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헬리콥터들의 공격이 일시에 멎었다.

 

“AH-64 아파치 헬기들이야.”

 

중얼거리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사오정이었다.

사오정도 바닷물에 몸이 얼어 시커먼 얼굴이 더 푸르딩딩하게 변해 있었다.

 

“4대 천왕과 석궁 부대는 어디 있지?”

 

“모두 죽었어. 헬기에서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과 고속 연발의 철갑탄을 맞고 산산조각이 났어.”

 

“이랑진군은?”

 

“잘 모르겠어. 스팅어 미사일을 한 방 맞는 것은 보았는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레이저 무기에 대비해 강력한 호신강기(護身剛氣)를 길러온 천상의 전사들이

 600여 년 전에 사라진 화약무기에 죽어버리다니.

강철보다 더 단단한 전사들의 피부는 소총 사격이나 수류탄 공격 에도 끄덕 없었다.

 

“저런 원시적인 무기에 죽다니. 믿을 수가 없군.”

 

“지구의 화약 무기는 달라.

우리는 일찍부터 화약 무기를 포기하고 표적을 정밀 조준할 수 있는 레이저 무기를 개발했지.

하지만 지구인들은 화약 무기에만 몰두해서 살상력과 정확도를 높였어.

탱크의 장갑 철판을 뚫는 저 철갑탄은 1분당 550발씩 작열해. 형이라고 별 수 있겠어?”

 

이 때 철벅거리면서 팔계가 헤엄쳐왔다.

그의 비대한 몸은 인어처럼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나는 팔계가 옛날 천상의 해군 장교였고 ‘천봉원수’라는 제독 계급까지 승진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물론 그 후에 성범죄 혐의로 체포되어 돼지 종족으로 환생하는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팔계는 별로 숨찬 기색도 없이 물었다.

 

“사오정,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2005년 2월 11일의 지구.”

 

2달 전 내가 지구를 떠났을 때는 2002년이었는데 ……

은하계 중심부의 한 달은 지구의 17개월쯤 되는 것 같다.

내가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역 여행을 했을 때 지구는 당나라 시대였다.

지구 시간으로 1300여 년 전.

그러나 은하계 중심부의 시간으로는 아마 77년 전의 일일 것이다.

 

“지구 어디?”

 

“한국의 인천 앞바다야. 미국과 북한이 지난 연말부터 전쟁 중이야.

지금은 미군들이 서해안에 상륙하려는 북한군을 막고 있지. 앗, 우릴 보았다.”

 

사오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수 킬로 미터 전방에서 헬기 한 대가 대열을 이탈해서 우리 쪽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닷물 속으로 잠수했다. 팔계와 오정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물 속을 걸으면서

전음술(傳音術)로 대화했다.

마치 오래된 에코 마이크에서 나는 소리처럼 한 단어 한 단어가 물 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저 멀리서 우릴 어떻게 본 거지?”

 

“본 게 아냐. 더 높은 상공에 떠 있는 무인항공기의 열 추적 장치가 우릴 감지한 거야.

시애틀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 미 국방성을 해킹해봐서 잘 알아.

무인항공기가 우리를 감지하면 합동 감시 레이더 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가장 가까운 전투부대의 모니터에 우리의 아이콘이 나타나.

아까 헬기와 전투기들이 벌떼 같이 달려든 이유도 바로 그거야.”

 

“그런 얘길 왜 이제 하는 거야!”

 

저팔계가 사오정에게 화를 내었다.

그의 입가에서 뽀글뽀글 기포가 끓어올랐다.

 

“무슨 소리야?”

 

“홍콩에서 펀드 매니저를 할 때 좋아하던 한국 여자가 있었는데 …… 죽었을까 살았을까?”

 

“형, 여자 얘기하고 먹는 얘기 말고 좀 다른 이야기 없어?”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네.”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몸의 곳곳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고 눈 앞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나는 몇 시간 정도의 잠수는 가능했지만 팔계나 오정처럼 물 속에서

며칠씩 버틸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나는 점점 가빠오는 숨을 참으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옮겨갔다.

 

해안에 도착했을 때는 황혼이 깔리고 있었다.

초병(哨兵)들이 발포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차가운 물 속에서 너무 피를 많이 흘린 나머지 눈 앞이 가물거렸다.

지친 것은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사시나무처럼 떨며 걷다가 폭격에 반쯤 무너진 집을 발견했다.

비교적 성한 방으로 들어가자 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젖은 옷을 벗고 때묻은 커튼을 뜯어 물기를 대충 닦은 우리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