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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도주 1 - 가자 2005년 2월 11일 지구로…

오늘의 쉼터 2016. 6. 13. 15:15

제5장 도주 1


- 가자 2005년 2월 11일 지구로…



비명을 지르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조금 전에 혼자 도망쳤던 저팔계였다.

비장의 무기인 쇠스랑을 양 손에 틀어쥔 저팔계의 옷은 한바탕 격전을 치른 것처럼

그을리고 찢어졌다.

 

“어떻게 된 거야?”

 

저팔계는 덜덜 떨면서 대답 대신 먼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손바닥으로 눈썹을 가리고 시력을 끌어올려 팔계가 가리키는 곳을 응시했다.

텅 빈 허공의 한 곳이 마치 돌멩이가 던져진 연못 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누가 초공간을 순간이동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다음 순간 훤칠한 키의 청년 하나가 허공에 불쑥 나타났다.

잘 생긴 얼굴에 불길처럼 굼실거리는 장발의 곱슬머리.

검은 색의 부츠를 신고 검은 색과 은색이 섞인 방호전투복을 입었다.

놀랍게도 그는 어떤 1인용 비행정도 타지 않고 마치 땅 위에 선 것처럼

편안하게 허공에 서 있었다.

 

이랑진군(二郞眞君)!

 

심장이 쿵쾅 쿵쾅 갈비뼈를 두들기다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겠다고 아우성쳤다.

 

이랑진군 조욱(趙昱). 천상 근위군의 총사령관. 은하계 최고의 마법사.

여러 별에서 이랑신(神)이라고까지 숭배되는 인물.

그와 두 번이나 대결했음에도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오로지 서른 여섯 번 째 작전(三十六計) 때문이었다.

이랑진군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아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그가 무게 1억 톤의 아메바 생물로 변신해서 한 지역을 바다처럼 뒤덮은 뒤

근육을 수축시켜 그 지역의 모든 산맥을 부숴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이 유포되기도 했다.

변신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너무나 다르게 보인다 하여 이랑(二郞)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는 돌아서서 아직까지도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원숭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 지금까지 잘 싸웠다.

하지만 이제는 더 싸울 수가 없어. 지금 나타난 놈은 끔찍한 강적이야.

그러니 빨리 집에 가라. 집에 가서 처자식들을 데리고 몸을 피해라.

나도 가겠다. 오늘 용감하게 분전했던 너희들의 모습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나의 부하들, 저격수 원숭이들과 미사일부대 원숭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대왕님,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우린 대왕님을 좋아해요.”

 

원숭이들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나는 아직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사오정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되지?”

 

“잠깐만! 거의 다 됐어.”

 

그 때 나는 위잉 하는 공기의 파동을 느꼈다.

나는 사오정과 저팔계를 안고 근처의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우리의 머리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번쩍하는 빛이 천지를 뒤덮었다.

 

이랑진군의 애용 무기 풍뢰시(風雷翅).

 

금속제의 도장처럼 생긴 표창으로, 던지면 강한 폭풍을 동반한 번개가 평평한 날개를 펴면서

사방 1 킬로미터를 완전히 초토화한다.

 

흙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나는 부하들이 버리고 간 이온화 미사일 100기를 모조리 발사했다.

이랑진군은 내공을 담은 가벼운 손동작만으로 미사일을 흩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조금은 시간을 벌어줄 것이었다.

 

“사오정!”

 

사오정은 진흙으로 떡이 된 노트북을 들고 마지막 계산을 하고 있었다.

강력한 화약 무기가 있는 곳으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를

우주 상수(Cosmological Constant) 프로그램으로 계산하는 것이었다.

물질의 인력이 시공간을 휘게 만들기 때문에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어디서나 일정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고 있는 역동적인 것이다.

우주 상수 계산은 현재의 시공간을 좌표의 0도로 삼아 임시로 정적(靜的)인

우주 지도를 만들어낸다.

 

“됐어! 북북서 11시 20분 방향으로.”

 

또 다시 풍뢰시가 날아왔다.

우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함께 근두운에 몸을 날렸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이랑진군을 따라온 9개 중대의 특전부대 구요성(九曜星)이 나타났다.

구요성의 건장한 무사들은 1인용 비행정을 타고 두 손으로 잡는 거대한 양날검을 휘두르며

공격해왔다.

 

나는 여의봉을 피스톤처럼 거듭 찔러 앞을 열었고 팔계는 쇠스랑으로, 오정은

채찍으로 좌우를 밀어붙였다.

근두운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사정없이 날아가 한 가닥 혈로를 열었다.

 

간신히 구요성을 따돌리자 이번엔 포크레인처럼 거대한 부리를 가진 검은 수리매들이

새카맣게 하늘을 뒤덮었다.

지상엔 무게가 0.5톤은 될 법한 하얀 사냥개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리고 있었다.

이것들은 정상적인 짐승들이 아니었다.

이랑진군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호위병, 천응(天鷹)과 천구(天狗)들이었다.

이 때 사오정이 외쳤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동북동 2시40분 방향!”

 

근두운은 오른쪽으로 급선회해서 날아갔다.

사냥개와 수리매들이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이런 식으로 추격을 계속 피할 수는 없었다.

이랑진군의 부하들은 조요경(照妖鏡)이라고 부르는 생체추적 레이더를 가지고 있어서

어디까지라도 우리를 따라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2005년 2월 11일의 지구로. 그곳에 큰 전쟁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