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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천상의 공습 2 - 극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오늘의 쉼터 2016. 6. 13. 07:45

제4장 천상의 공습 2


- 극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 날 밤 우리 셋은 은하계의 무수한 웹 게시판에 폭로 기사를 갖다 걸었다.

 

밤새도록 그 짓을 하다가 출출해진 우리는 궁전의 주방에서 음식과 술을 방으로 가져왔다.

쓰잘데없는 옛날 얘기를 하며 밤참을 먹어 치운 후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이부자리를 나란히 깔았다. 수렴동 골짜기 너머로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때 사오정이 불쑥 참았던 말을 꺼내었다.

 

“형들, 극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듣자 자리에 누웠던 저팔계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몽롱한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한동안 눈을 비볐다.

그러다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고 싶어. 다시 수계(受戒) 의식을 치르고 출가할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어.

영원히 이 식색(食色)의 고해에서 벗어나고 싶어.”

 

“말 같지 않은 소리. 너처럼 밝히는 놈이 그걸 그만 둬?”

 

“에잇, 형 같은 속물이 뭘 안다고 그래!”

 

팔계는 갑자기 고함을 지르면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얼마나 세게 쳤던지 바닥은 금이 가버렸다.

나는 기가 막혔지만 살기등등한 그의 기세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형이 나를 알아? 형이 여자를 알아?

나는 수백년 동안 정말 죽을 지경으로 색정(色情)이란 병을 앓아왔어.

난 아직도 그 기억에 몸을 떨어. 핥고 빨고 하고 또 하다 보면

여자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뭐든지 먹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홍콩에서 만난 처녀 하나는 정말 사랑스러웠어. 처음엔 그 여자의 머리핀을 집어삼켰어.

온 몸이 짜릿짜릿하더군. 그 여자의 머리카락도, 그 여자의 살도, 그 여자의 골수도,

더러운 귀지도, 말라붙은 피딱지도 그녀의 것이라면 모두 먹어주고 싶었어.”

 

“알았어. 그만 해.”

 

“처음 얼마간은 참았어.

나도 불문에 귀의했던 놈인데 마음 속에 눈꼽 만한 불성(佛性)은 있지 않겠어? 하지만 소용 없더군.

술에 만취했다가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여자는 살점 하나 남아 있지 않았어.

겨울이었는데도 파리들이 핏물이 흥건히 배어 나온 이불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만하라니까.”

 

“뼈를 부러뜨리고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었더란 말야.

내가 사랑하던 여자를. 이래도 지긋지긋하지 않겠어? 난 돌아가고 싶어. 난 돌아가고 싶다고.”

 

순간 분노의 소용돌이가 가슴 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며 모든 것을 감쌌다.

나는 팔계의 턱을 갈겼고 팔계는 엄청난 힘으로 내 배를 되받아쳤다.

그의 타격은 송곳처럼 내 몸을 꿰뚫었고 고통은 격정을 돋구어 한층 더 미친듯이 돌진하도록 만들었다.

 

더러운 이빨을 드러내고 격렬한 주먹질을 휘두르던 팔계는 어느 순간 방 구석으로 몰렸다.

격앙한 나는 의자와 컴퓨터, 책상, 쇠화로, 부젓가락 등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총동원하여

 팔계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팼다.

사오정이 결사적으로 나를 잡고 늘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팔계를 패죽였을 지도 모른다.

 

제 정신이 돌아오자 나는 벽과 천정이 부서져버린 방에서 몸을 떨며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냈지?

팔계가 잡아먹은 인간에 대한 기묘한 동정심 때문에? 아니, 아닐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동생들은 삼장법사를 만나기 전까지 각각 복릉산과 유사하에서

수도 없이 식인(食人)을 한 살인자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새삼스럽게? 나는 부러진 이빨과 핏물 섞인 침을 내뱉으며 겨우 내 행동을 얼버무렸다.

 

“내 앞에서 잘난 척 하지 말랬지. 이 새끼가 건방지게 사람 잡아먹은 얘기를 하고 있어.”

 

원숭이 위병들이 부서진 방문 앞에 서서 걱정스런 얼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성난 눈길과 마주치자 그들은 즉시 그 곳을 떠났다.

 

“찍소리 말고 자.”

 

나는 이부자리 위에 떨어진 돌조각과 흙가루를 털어내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사오정이 원망스런 얼굴로 나를 흘겨보다가 이부자리를 대충 청소하고 의식을 잃은 저팔계를

그 위에 뉘였다.

어디가 부러졌는지 참을 수 없이 욱신거리는 갈비뼈를 만지며 잠을 청하자 문득 극락의 추억이 떠올랐다.

 

끝없이 계속되는 황야와 사막, 험난한 산들, 수없이 많은 죽음의 풍경들을 지나 나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기와 만났었다.

백단향, 용연향, 사향, 유향, 그리고 사라라 향기. 꽃의 색깔처럼 은은한 향기들이

음악처럼 흐르는 하늘을 쳐다보면 벼랑에 걸린 폭포처럼 수려하게 흰 빛의 아름다운 누각들이

먼 산 중턱에 붙어 있었다.

 

그 곳이 바로 서역 행성의 수도, 지고한 기쁨의 도시,

<극락>이었다. 극락을 중심으로 연꽃의 꽃잎 모양을 한 여덟 개의 산맥들이

땅 위를 달리며 정겨운 거리와 아담한 인가를 거느린 작은 마을들을 품고 있었다.

 

순박한 아이들과 괴로움을 모르고 사는 어른들이 있는 마을을 지나면

극락을 둘러싼 향기로운 자작나무 숲이 있었다.

그런 숲에 둘러싸여 많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사는 아름다운 사원들이 있었다 ……

나는 몸을 뒤채며 중얼거렸다.

 

“나약한 자식들. 부처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 나는 이 아수라장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