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5
- 경보장치 끄는 일은 해킹전문가의 몫이었다
“여자와 같이 사는 게 고행이야?”
“고행이 아니면. 솥에 물 데우고, 비 새는 지붕 고치고, 장인 영감 시중 들고,
때 되면 마누라 몸에 뜨거운 쇠못 박아주고. 이게 괴롭지 않으면 뭐가 괴로와?”
“헛소리 작작해. 이 자식아. 우린 지금 네 장인 부탁으로 너 때려잡으러 온 거야.
마누라를 골방에 가둬놓고 매춘부들과 놀아나면서 뭐가 어쩌고 어째?”
나의 일갈에 저팔계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멀뚱멀뚱 눈만 꿈벅거리면서 딴청을 피우던 그는 아침을 먹자며 일어섰다.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더니 배가 고파.”
부엌은 다른 방보다 더 더럽고 난잡했다.
저팔계는 불을 피우고 기름때가 묻은 프라이팬에 스테이크를 데웠다.
껍질을 벗겨놓은 삶은 감자 한 냄비와 빵 덩어리도 내왔다.
“자, 먹어. 먹으면서 얘기 하자구.”
사오정과 내가 뜨거운 차를 한 잔씩 마시는 동안 팔계는
성한 오른손으로 고기를 쥐고 탐욕스럽게 뜯어먹었다.
감자도 쓸어넣었고 빵을 찢어서는 번질거리는 입술을 한번 닦은 후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누런 이빨로 뼈다귀에서 기름진 살점을 뜯어내면서 때로는 뼈조각을 뱉으며
족히 6인분은 될 법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식사가 너무 오래 걸렸기에 그가 입을 닦는 사이 사오정이 질문을 했다.
“둘째 형,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온 거야.
둘째 형은 스승님의 서역 여행에 공을 세워 <극락>의 정단사자가 되었었잖아.
극락에서 제일 좋은 호텔의 지배인으로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최근까지도
잘 지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저팔계는 빵조각을 뜯다 말고 화를 버럭 내었다.
“넌 밥만 먹고 사냐? 밥만 먹고 살아?”
저팔계는 트림을 하고 이를 쑤시더니 갑자기 슬픈 표정이 되어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중생들의 근원적 현실을 너무 사랑해. 그래서 고초를 겪고 있어.”
“중생의 근원적 현실?”
“먹어서 자기를 보존하고 쇠못을 박아 종족을 보존하는 거지.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세상은 왜 발광할 지경으로 예쁜 여자들을 만들어서
자꾸 내 눈 앞에 알짱거리게 하는 거야?
극락의 호텔에서 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바람에 내 인생이 완전히 금 가버렸다.”
“그러니까, 강간 미수였군.”
“팔부천룡들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는데 도저히 감옥살이는 못 하겠더라.
그래서 지구로 도망쳤어. 홍콩에서 돈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살았지.
그런데 이번엔 유부녀랑 말없는 대화를 좀 나누다가 그 남편에게 걸렸지 뭐야.
정당방위로 한 대 친 것이 그만 그 자를 죽여버렸어.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더군. 다시 도망쳐서 이계로 흘러든 곳이 여기야.”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깔깔깔 웃었다.
나 혼자만 아무도 반기지 않는 무법자,
고향을 빼면 갈 곳도 없는 낙오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보다 더한 병신들도 이렇게 멀쩡한 얼굴로 살고 있지 않은가.
“팔계야 그렇다면 마침 잘 됐다. 너 이왕 버린 몸이니 나랑 동업 좀 하자.”
나는 병참 기지를 털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처음에 심드렁하던 팔계는 노획물의 규모를 듣고 눈빛을 반짝였다.
“그거 큰 건이네. 좋아! 어차피 이 별에서 더 묵새기기도 틀린 거 같고.”
그 날 밤 나와 저팔계와 사오정은 병참 기지가 내려다 보이는 산봉우리에 올라갔다.
나는 압축 캡슐을 열고 때 맞춰 불어주는 바람에 실어 잠이 오게 하는 벌레인
수면충 10만 마리를 살포했다.
2시간 뒤 산비탈을 내려갔을 때는 기지 안의 모든 사람들이 혼곤한 잠에 골아 떨어진 뒤였다.
엄중하게 보안장치가 된 기지였지만 나의 여의봉 앞에는 무인지경이었다.
여의봉 안에는 모든 전자식 잠금 장치를 열 수 있는 강력한 해쇄(解鎖)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미리 구한 병참 기지의 단면도를 보며 어렵지 않게 옛날 레이저 무기들이 보관된 무기고로
접근했다.
각종 감시카메라를 끄고 경보장치를 해제한 것은 극락 최대의 컴퓨터 해킹 사건을 일으켰던
사오정의 몫이었다.
드디어 산더미처럼 거대한 무기고가 열렸다.
무기고는 기이한 느낌을 줄 만큼 깨끗했다.
금속 재질의 판넬로 이루어진 바닥은 잘 문질러 닦은 티크처럼 반짝였고 온갖 무기들이
견고하게 만들어진 보관대에 일목요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광선총, 초음파 권총, 양자 수류탄, 신경파괴탄, 전자기 폭음탄, 초음파탄,
전자덫 같은 소형 장비에서부터 광선포, 열 기폭기, 이온화 미사일 발사기,
빔 튜브 같은 중량급 무기들, 무인조종탱크, 대전차 파괴로봇, 터보 레이저 트럭,
전투비행정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한쪽 구석에는 전투 로봇들까지 있었다.
가늘고 쭈삣한 도끼 같은 얼굴의 로봇들은 내부 조명을 받아 음산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조심스럽게 창고 안을 둘러보던 사오정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수백년 전에 압수한 무기를 봉인해 둔 창고야?
이건 막 팔려는 물건들을 비치해둔 백화점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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