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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3 - 저 요괴가 저팔계형이야

오늘의 쉼터 2016. 6. 10. 15:42

재회 3


- 저 요괴가 저팔계형이야




 세 사람의 육체가 벽난로의 불빛에 흐느적거렸다.

노란 피부의 여자가 당나귀처럼 엎드려 갸르릉거렸고 검은 피부의 여자는

소리를 지르다가 죽은 대합처럼 널브러졌다.

 

다음 순간 엎드렸던 여자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자의 등에 달라붙은 남자가 탐욕스러운 이빨로 여자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 광경은 심한 혐오감과 역겨움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즉시 불타는 짐승의 우리 속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끼며 계단의 난간 위에 내려앉았다.

 

내가 날개를 쉬고 있는 동안에도 남자는 쉴 새 없이 뚫고 비비고 휘젓고 찔렀다.

거실의 공기는 불타오르는 장작의 화기와 음식, 위스키, 땀 등으로 말할 수 없이 끈끈했다.

그을음을 내며 타는 불꽃이 어두운 벽난로 속에서 음산하게 너울거리며 춤을 추었다.

 

이윽고 침대 쿠션 위의 남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일어나 앉았다.

그는 위스키 병을 들어 병째로 입에 부어넣더니 시위하듯이 으핫핫핫 하고 웃었다.

순간 불꽃을 등진 남자의 검은 윤곽 속에서 돼지 주둥이처럼 튀어나온 보기 흉한 입이 너울거렸다.

 

“이 추잡한 요괴 놈아!”

 

나는 파리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몸을 솟구쳤다.

그리곤 귓속의 여의봉을 뽑아내며 난간에서 1층의 거실로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여의봉은 태산이라도 쪼갤 법한 기세로 요괴를 내리쳤다.

 

“웬 놈이냐!”

 

요괴의 비대한 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민첩하게 움직였다.

술병을 내던진 요괴는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와 공격을 펼쳤다.

그는 몸을 피하면서 왼쪽 팔뚝에 기를 모아 여의봉을 쳐내고 오른손의 주먹으로

내 옆구리에 일격을 가하려 했다.

 

그렇지만 급작스럽게 당한 기습이었다.

요괴의 방어는 나의 공격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여의봉은 요괴의 왼팔을 부러뜨렸다.

요괴는 비명을 지르며 거실 바닥을 뒹굴었다.

한바탕 몸을 굴린 요괴는 상하지 않은 오른팔로 벽난로 옆의 쇠스랑을 집어들었다.

 

아홉 개의 갈퀴가 달린 그 쇠스랑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의 뒤쪽에서 무엇인가가 움찔했다.

이게 뭐지? 다음 순간 숨가쁜 싸움의 진행이 일체의 상념을 지워버렸다.

 

쇠스랑을 휘두르며 요괴가 돌진해왔다.

쇠스랑과 여의봉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요괴는 발길질로, 나는 주먹질로 서로에게 강렬한 타격을 가했다.

나는 고통을 무릅쓰고 요괴를 건너편 벽으로 밀어붙였다.

 

양 손으로 요괴의 턱과 머리카락을 움켜쥔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요괴의 목을 비틀었다.

동시에 요괴의 머리를 힘껏 벽에 짓찧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 내 팔을 움켜쥔 요괴의 손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힘을 주면 요괴의 목이 나뭇가지처럼 부러질 찰나였다.

 

나의 뒤 쪽에서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요괴들의 협공? 나는 몸을 돌려 등 뒤의 적을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적은 기다렸다는 듯이 풀쩍 뛰어 물러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오공 형, 그만 둬.”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번개처럼 빠르게 나의 발길질을 피한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하인 말라깽이였기 때문이다.

말라깽이가 이런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순간 배신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 놈, 나를 속였구나.”

 

나는 허공으로 손바닥을 내밀어 바닥에 떨어진 여의봉을 끌어당겼다.

여의봉은 고무줄에 달려 당겨오는 공처럼 내 손으로 빨려 들었다.

나는 여의봉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말라깽이를 공격했다.

말라깽이는 가느다란 지팡이를 뽑아 나의 여의봉을 막았다.

말라깽이의 지팡이는 단단한 말채찍처럼 휘어지면서 연거푸 나의 공격을 막아냈다.

 

“큰형, 그만 하라니까.”

 

말라깽이의 눈이 나의 눈에 뭔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보는 순간 머릿속 어딘가에서 조그마한 충격이 왔다.

말라깽이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얼굴에 돋아있던 원숭이의 털이 사라지면서 머리 위에 붉은 색의 머리카락이 자라나 흐트러졌다.

목과 가슴, 손등에서도 체모가 사라졌고 귀는 뾰족해졌으며 코는 보기 좋게 솟아나 오똑해졌다.

 

“너는!”

 

나는 힘겹게 내뱉었다.

 

“그래, 나야.”

 

심장이 몇 번이나 고동치는 동안 나는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직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마지막 만난 이후 지구 시간으로 1300여 년이 흘러갔다.

 

“사오정(沙悟靜)! 네가 정말로 살아 있었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정말 까마득하게 오랜만이야. 큰형이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수렴동에서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이제 보니 큰형은 옛날 기억을 많이 잊어버렸군.

정신 차려. 큰형이 죽이려고 하는 저 요괴는 둘째 형이야.”

 

“뭐라고?”

 

“아까 고태공 선장이 이 요괴의 이름을 강엽이라고 했잖아.

 그 이름도 잊었어? 저강엽(猪剛 ), 팔계 형의 본명이잖아.”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비대한 몸의 돼지 요괴는 반쯤 머리가 깨어진 상태로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이 녀석이 저팔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