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재회 1
- 꼭 돼지처럼 생긴 놈이 무서운 힘을 가졌어
일주일 후 말라깽이가 찾아와서 무기 탈취 계획을 브리핑했다. 나는 이의 없이 동의했다.
그 날 밤 나와 말라깽이는 말고삐를 끌며 조용히 수렴동을 빠져 나왔다. 근두운은 포기했다. 나의 비행정은 너무 유명해서 범행 현장에 내
이름을 광고하는 거나 다름 없었다. 우리는 점잖은 색깔의 도복을 입고 천상 연방의 사원들을 순례하는 여행자와 하인처럼 위장했다. 그리곤 초공간이
이어주는 황량하고 기괴한 길로 쉴 새 없이 말을 달려갔다.
황량한 사막의 밤하늘에 타원형의 달이 밤배처럼 헤엄쳐갔다. 또 다른 별에서는 큰 강이 가로질러가는 망망한 벌판 위에 번개가 번쩍이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 다음 별에서는 서리가 날리다가 염천의 태양이 이글거렸다. 몇 번 요마들을 보기는 했지만 우리는 싸움을 피해 얼른 달아나곤 했다.
여행 내내 말라깽이는 나의 충실한 하인이었고 특별히 수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닷새 동안의 여행 끝에 우리는 고로 행성에 도착했다.
“병참 기지는 <늙은 갈매기의 도시>라는 항구에서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먼저 항구에 가서 밀수선을 섭외해야 합니다. 무기를
훔쳐도 싣고 갈 배가 없으면 안되니까요.”
“밀수선? 그게 쉽게 찾아질까?”
“그 항구에 안면 있는 밀수업자가 있습니다.”
때마침 고로 행성은 봄이었다. 강가엔 버드나무가 푸르고 오색빛 모래펄엔 풀 내음이 싱그러웠다. 늙은 갈매기의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골짜기에
이르자 황혼이 깃들기 시작했다. 주홍빛에 물든 거울 같은 강물이 도시 한 가운데를 지나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말라깽이와 나는 골짜기의 개울로
내려가 옷에서 여행의 먼지를 씻어냈다.
물은 차갑고 상쾌했다. 시원하게 미역을 감으며 물 속에서 한참 동안 철벅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이 떠올랐다.
“이 봐, 도사(道士)들이 다 어디로 갔지?”
“예?”
“나는 지구에서 원숭이 별로 왔고, 원숭이 별 곳곳을 돌아다녔고, 원숭이 별에서 또 이 고로 행성까지 왔어. 그동안 요마들은 많이 봤지만
요마를 퇴치하는 도사는 하나도 보지 못했어.”
“우주가 넓으니까 어디 다른 별에 가 있겠지요.”
“아냐, 뭔가 이상해. 도사들은 천상 체제의 상징인데 이렇게 흔적도 없을 리가 없어.”
<천상> 또는 <하늘>이라 불리는 행성은 은하계의 수도(首都)이다. 수 천년 전 이 별에는 타오(道)를 추구하는
신앙인들로 결성된 ‘초절자(超絶者)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지혜를 탐구했다. 나중에 이
모임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서 이 별에 옥황상제의 행정부와 태상노군의 종교 평의회로 이루어진 이원적 체제를 수립했다.
600년 전 은하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 에너지 혁명으로 인해 전 우주적인 생산 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소비는 위축되는 심각한 불황에 빠졌던
것이다. 공해와 환경 문제, 복제 인간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시장 독점을 위한 전쟁도 나타났다. 이 여파로 무수한 별들이 황폐해졌다.
이 시기 은하계에서는 천상의 지도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천상은 연방을 결성해서 무위자연의 헌법을 선포하고 문명과 자연을 조화시키는 강력한
조치들을 단행했다. 전 우주에 하루 2시간 이상의 노동을 금지했으며 살상 무기를 폐기하고 복제 인간의 수명을 제한했다. 수렴동의 도시에서 살면서
낮에는 숲에서 지내는 원숭이들처럼 모든 종족들이 도시 생활과 자연 생활을 병행할 것을 권장했다.
무기 폐기로 인한 힘의 공백를 막은 것은 고도의 초능력을 소유한 천상의 도사 집단이었다. 반란, 분쟁, 혜성의 내습, 외계인의 침입 등,
불의의 사태가 벌어지면 천상은 도사들을 파견해서 이를 해결했다. 도사들은 다른 재야의 마법사들을 방사(方士)라고 불러 자신들과 구별했다. 도사는
천상의 지배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권력 집단이었다. 그런데 초공간의 재앙이 일어난 지금, 어째서 도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어두워진 골짜기를 빠져 나와 거리로 스며들었다. 늙은 갈매기의 도시는 지구로 치면 19세기 말의 카사블랑카나
마르세이유처럼 보이는 무역항이었다. 항구의 포근한 봄밤은 술꾼과 창녀들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거리의 행인들은 대부분 인간 종족이었다. 나는 상업
지구를 지나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한 부두로 향했다. 말라깽이가 길을 인도했다. 말라깽이는 불을 밝히고 인부들의 하역 작업을 감독하고 있는 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뱃사람을 한 명 찾고 있소. 고태공 선장이라고 성질이 사나워서 불곰이라고도 불리지요.”
노인은 안색이 변하더니 말라깽이와 나를 자세히 관찰했다.
“광고를 보고 찾아온 모양인데 그냥 돌아가는 게 좋을 거요.”
“광고라뇨?”
노인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아, 아니었소? 난 댁들이 고태공의 초빙 광고를 보고 온 방사인 줄 알았소.”
“선장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고태공은 이 년 전에 사위를 하나 얻었는데 알고 보니 그 놈이 요괴였소. 야금야금 그 집을 말아먹더니 아예 장인 장모를 내쫓았다오. 꼭
돼지처럼 생겼는데 무서운 힘을 가졌어. 몇 번 방사들이 놈을 몰아내겠다고 설치다가 모두 뼈가 부러지거나 반신불구가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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