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2
- 사내의 몸은 벌거벗은 두 여자와…
“이 항구에 고태공 선장의 동업자는 없을까요?”
“당신들, 밀수선을 찾고 있구료.”
노인은 희미하게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없소. 원래 이 곳의 밀수업은 고태공 조직이 독점하고 있었소. 장인의 배를 몽땅 빼앗은 사위 놈은 한 척씩 팔아서 놀고 먹을 뿐 일에는
관심 없어요. 자, 자꾸 묻지 말고 그만 가보시오. 나는 어느 쪽에도 미움 받고 싶지 않거든.”
우리는 몸을 돌려 부두를 빠져 나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굴다리 입구에 앉은 거지에게 고태공 선장의 거처를 물었다. 거지는 좌우를
살피며 동냥그릇을 내밀었다. 나는 1옹 짜리 금화 한 닢을 그릇에 던져 넣었다. 거지가 속삭였다.
“저리 가서 세 번째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도시오. 큰 길을 한 번 더 지나면 분수가 있는 광장이 나올 거요. 그 광장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의 큰 집이 원래 불곰이 있던 저택이고 왼쪽의 더러운 오층 건물이 지금 불곰이 사는 곳이오.”
그로부터 30분 뒤 우리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오층에서 고태공 영감과 마주 앉아 있었다. 고태공은 불곰이라는 별명처럼 백발의 숱이 많은
머리에 얼굴이 붉은 영감이었다. 쪽박을 찼을 망정 엄청나게 큰 입과 두꺼운 입술, 쭈글쭈글한 눈두덩 속에 틀어 박힌 눈은 녹록치 않은 위압감을
풍겼다. 이만한 영감을 내쫓고 재산을 빼앗을 정도라면 돼지 요괴는 상당한 괴물일 듯했다. 고태공은 내가 손오공이라는 말을 듣자 정신을 잃을 만큼
기뻐했다.
“이제는 살았습니다! 필마단기로 천상을 분탕친 손오공님일 줄이야. 요마만 물리쳐주신다면 배가 문젭니까? 어떤 하물(荷物)도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키를 잡고 바다의 초공간을 통해 안전하게 운반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과거의 허명으로 허세를 부려야 하는 것일까. 기분이 씁쓸했다.
“그 요괴에 대해서 더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습니다.”
“이 늙은이에겐 딸이 셋 있습니다. 2년 전 바다 건너로 유학 갔던 큰 딸이 사위감을 하나 데려왔습니다. 얼핏 보니 얌전한 위인이더군요.
조실부모했다는 것이 흠이기는 했지만 똑똑하고 돈도 많았습니다. 좋은 데릴사위를 얻는구나 싶어 얼른 결혼을 시켰지요. 그런데 이 놈이 제 얼굴을
둔갑시킨 요괴였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처음에는 사람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귀가 커지면서 밑으로 처지더니 입이 뾰족한 바보 같은 얼굴로 바뀌었어요. 들창코가 큼지막한
것이 꼭 돼지 같단 말이에요. 거기다 밥은 또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몰라요. 고기에 술까지 좋아해서 그 놈을 먹이느라 살림이 콩가루 밀가루가
되어버렸죠.”
“먹새가 좋은 만큼 일은 잘 했겠지요?”
“천만에요. 언제부턴가는 전혀 일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 같은 밀수업자들은 1년 365일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데 말이죠. 그래서 욕을 좀
했더니 발끈하더군요. 우리 내외와 작은 딸들은 맨 몸으로 집에서 쫓겨났고 큰 딸은 골방에 갇혔어요. 방사들을 불러서 몇 번이나 놈을 쫓아내려
했지만 번번이 나까지 죽도록 두들겨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에요.”
“잠깐만요.”
그 때 고태공과 나의 대화 사이로 말라깽이가 끼어들었다.
“사위의 이름을 뭐라고 하죠?”
“처음 자기를 소개하면서 강엽이라고 했어요. 요괴가 댄 이름이니까 믿을 수야 없지요.”
말라깽이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궁금했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벌벌 떠는 고태공을 끌고 광장 맞은 편
저택의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고태공, 딸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시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나는 손톱 만한 파리로 변신해 저택의 정문을 넘어갔다. 일단 동정을 살피며 골방에 갇혀 있다는 큰 딸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넓은 정원을 날아가니 근사한 2층집이 나타났다. 한 때 잘 나가던 밀수업자의 집답게 저택의 규모가 굉장했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
들어간 나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더러움과 너절함으로 경악을 불러 일으켰다. 소파의 등받이는 밑으로 내려앉았고 붙어 있어야 할 나무장식들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주위의 벽은 먼지가 뒤덮인 거미줄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거울은 먼지와 오물로 떡칠 되어 기괴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방바닥은
덩어리째 뒹구는 호밀빵, 쏟아버린 포도주, 깨진 술병, 먹다 남긴 국수 가락, 고기 국물이 부패해가는 접시들, 구토한 내용물, 까마득히 잊혀진
빨래감들로 가득했다.
정말 더럽게 불결한 요괴군.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 넓은 저택이 이렇게 구석구석 더러워질 수 있지?
실내 공기를 가득 메운 악취를 참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1층 거실의 불을 지핀 벽난로 앞에서 뭔가 허연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트도 없는 낡은 침대 쿠션 위에 벌거벗은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엉켜 있었다.
남자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으르렁대며 한 여자와 합쳐졌다가 다시 다른 여자와 합쳐졌다. 가지처럼 윤기가 흐르는 검은 피부의 여자와 구워진
황토 같은 유방을 가진 노란 피부의 여자.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뚱뚱한 남자의 몸이 허공의 깃발처럼 퍼득이며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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