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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별의 전쟁 5 - 난 우주 최고 절도전문가야

오늘의 쉼터 2016. 6. 10. 00:22

원숭이 별의 전쟁 5


- 난 우주 최고 절도전문가야




나는 근두운을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요마들을 관찰했다.

 

오랜만에 답사하는 오래 행성은 아름다웠다.


검은 모래의 사막과 초록 바위의 광야, 안개가 낀 계곡과 협곡, 연기를 내뿜고 있는 분화구,


얼어붙는 듯한 극지의 밤과 불타는 듯한 적도의 낮. 어디서나 각양각색의 요마가 출몰하고 있었다.


 

얼마 후 또 다른 사절단이 찾아와서 요마를 퇴치한 나의 행적을 기념해 앞으로 오래 행성을


‘원숭이 별’이라 부르기로 했다는 결정을 전해주었다.


나는 속에서 먹었던 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나의 내부에 있는 누군가가 혀를 내밀고 눈꺼풀을 빨갛게 뒤집으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무법자이지 법과 질서의 수호자가 아니다.


내가 왜 ‘훌륭한 원숭이’가 되어 명성에 얽매여야 하는가.

 

내게 명예를 수여하는 자들의 저의도 역겨웠다.


도대체 이 행성의 모든 백성들을 내가 지켜줘야 할 의무가 어디 있는가.


나의 능력은 과거의 손오공에 비하면 폐인이나 다름없다.


이 별의 요마를 모두 퇴치하려 한다면 나는 죽을 것이다.


모두들 자기 똥은 자기가 닦으라고 말하고 싶다 ……


그런데 그러면서도 왜 당장 이 별을 떠나지 않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했다.


며칠 후 나는 수렴동의 간부 원숭이들을 소집했다.

 

“이 별 사람들이 요마 토벌 전쟁을 하려면 창 칼로는 어려워. 과거의 첨단무기가 필요해.


레이저가 발사되는 광선총과 광선포를 찾아줘. 초음파탄, 전투비행정, 독극물 방사기,


전자덫도 구해야겠어.”

 

늙은 원숭이들은 일제히 입을 딱 벌리고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대왕님, 그런 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천상(天上)의 연방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적발되면 사형입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헌법이 발효된 후 천상 연방은 모든 레이저 무기를 폐기했습니다.


화약 무기조차 금지시키고 화약의 원료가 되는 초석까지 없애버렸습니다.


저희들이 어디 가서 무기를 구해올 수 있겠습니까?”

 

“나도 알아. 하지만 어딘가엔 옛날 무기들이 남아 있을 것 아닌가.


그 위치만 가르쳐 달라는 거야.”

 

원숭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눈길을 피했다.


그 때 제일 뒷줄에서 젊은 원숭이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대왕님, 그걸 알려드리면 저희도 공범이 됩니다.


천상 연방의 비밀 병참기지가 고로 행성에 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만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의 뉘앙스가 묘해서 나는 젊은 원숭이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푸른가 하면 푸르지 않고, 검은가 하면 검지도 않은 보기 흉한 안색을 하고


체구는 삐쩍 말랐는데 유순해 보이는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을 내었다.


양쪽으로 길게 찢어진 입 밖으로 이빨이 몇 개 드러나 있었다.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 혹은 그와 아주 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목


소리도 무척 귀에 익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말라깽이, 자네 이름이 뭐지?”

 

“손사하(孫沙河)라고 합니다. 지난 달부터 간부회의의 말석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를 따라 오게.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지.”

 

우리는 접견실을 나와 긴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층계를 올라가 육중한 나무문을 열고 나의 서재로 말라깽이를 데려왔다.


창문을 열자 뙤약볕으로부터 해방된 청량한 공기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우리는 폭포와 숲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창가의 탁자에 마주앉아 과실주를 나눠 마셨다.


말라깽이는 더듬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병참 기지 근처에 옛날 무기를 파는 암시장이 있습니다.”

 

“그런 암시장에서 광선총 한 정이 얼마씩 할까?”

 

“글쎄요. 250만 옹에서 500만 옹( 안에 光)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마다 자위대를 조직하려면 적어도 광선총 일만 정은 있어야 되는데 …….”

 

“그러려면 이 행성을 다 팔아도 모자랄 겁니다.”

 

나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라깽이를 쏘아보았다.


수렴동의 원숭이 주제에 세상의 물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심히 미심쩍었다.


이 녀석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말라깽이, 나는 돈을 주고 무기를 살 생각이 없어. 병참 기지에서 전부 훔칠 거야.”

 

말라깽이의 손에서 술잔이 떨어져 깨졌다.

 

“알았으면 계획을 세워 봐. 일 주일간 시간을 주지.”

 

“계획이라뇨?”

 

“나는 천도 복숭아를 훔친 우주 최고의 전문가야. 도둑질에도 원칙이 있고 순서가 있어.


첫째 목표 선정. 훔칠 물건을 확실히 정해. 있으면 다 들고 나온다는 충동절도는 금물이지.


둘째는 연구 개발. 침투로, 탈출로, 비상탈출로, 접선장소 등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돼.


셋째는 사전 작업. 장비를 구입하고, 공범과 계약을 맺고, 내부인사를 매수하는 거지.


넷째는 작업.


다섯째는 사후 작업. 장물을 안전한 장소에 은닉하는 거야.


여섯째는 배급. 같은 장물도 어떤 거래처를 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값을 받아.


일곱째는 돈세탁. 불법적으로 번 돈을 합법적인 돈으로 세탁할 방법을 찾는 거야.”

 

이건 말짱 헛소리였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원칙을 지켜본 적이 없고 언제나 즉흥적으로 도둑질을 했다.


나는 다만 말라깽이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