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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별의 전쟁 4 - “클론”하자 털은 원숭이로…

오늘의 쉼터 2016. 6. 8. 18:00

원숭이 별의 전쟁 4


- “클론”하자 털은 원숭이로…




“무례한 요괴 놈아, 너는 제천대성이란 이름도 못 들었느냐?”

 

“제, 뭐라고? 키는 내 무릎에 오고 나이는 서른 살도 못 돼 보이는구나.

쥐불알 만한 원숭이 놈이 감히 나와 겨뤄 보겠다니.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나는 상대의 무식함에 어안이 벙벙했다.

 

“못 배운 자식.”

 

나는 앞으로 뛰쳐나가며 여의봉을 창처럼 쥐고 늑대인간의 면상을 찔렀다.

용케 그것을 피한 요괴는 칼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공격해왔다.

나는 칼을 받아넘기고 녀석의 어깨를 후려쳤다.

이렇게 치고 받기를 되풀이하자 싸움을 지켜보던 늑대인간의 부하들이 나를 노리며

노궁(弩弓)의 화살을 겨누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해졌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나도 분신술(分身術)을 할 수 있나?

 

분신술이란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내는 초고속 복제기술이다.

방법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클론이라면 클론도 클론을 만들 수 있을까?

없다면 나는 나 자신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될 것이다.

 

제기랄, 아니면 말라지. 나는 가슴의 털을 한 줌 뽑아 입에다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입김에 내장된 변환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며 털을 씹어서 훅 내불며 외쳤다.

 

클론!

 

털들이 날아 허공에 불려가는 짧은 찰나가 영겁처럼 느껴졌다.

다음 순간 나는 감격했다.

털들은 저마다 1.3 미터 정도의 검은 물체로 늘어나더니

금세 삼십 마리 정도의 작은 원숭이가 되어 나를 엄호하듯 겹겹이 둘러쌌기 때문이다.

 

늑대인간들이 놀라 괴성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나의 작은 원숭이들은 두 무리로 갈라졌다.

하나는 활을 든 늑대인간들을 공격하고 다른 하나는 혼세 마왕이라는 녀석의 사지에 달라붙었다.

 

작은 원숭이들은 약삭빠른데다 주먹이 강해서 맨손으로 늑대인간들을 때려눕혔다.

다른 무리는 앞뒤로 벌떼처럼 혼세마왕에게 엉겨 붙어 사타구니를 깨물고 털을 잡아 뽑고

눈알을 후볐다.

 

이 뜻밖의 변고에 요괴는 정신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앞뒤 분간 없이 거세게 칼을 휘둘러 보기도 했지만 나의 작은 원숭이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연달아 파상 공격으로 덮쳐갔다.

 

이 틈을 타서 괴물의 칼을 빼앗은 나는 작은 원숭이들을 비키라 하고 녀석의 목을 베어버렸다.

목이 달아난 괴물의 몸은 푸시식 푸시식 하는 소리를 내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피를 흘리며 흙 바닥에 뒹굴던 괴물의 머리는 나에게 저주를 내뱉으며 사나운 포효를 하더니

역시 화염에 휩싸였다.

 

이 광경을 본 졸개 늑대인간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나와 작은 원숭이들은 늑대인간들을 때리고 죽이며 밖으로 내몰아서

애초에 그것들이 출현했던 초공간의 구멍으로 쫓아버렸다.

나는 나의 분신들을 회수하고 요새를 뒤져보았다.

 

감옥에서 갇혀 사육되고 있던 수렴동의 원숭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을 나오게 한 뒤 요새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 일이 끝나자 나는 걸음을 옮겨놓을 수 없을 만큼 온 몸이 아파옴을 느꼈다.

 

절뚝거리며 수렴동으로 돌아오자 온 나라의 원숭이들이 다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자식을 되찾은 부모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박수갈채를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나를 찬양했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고 궁성 한 구석의 내 방으로 들어가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이튿날엔 자갈을 깐 광장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다.

다른 도시에서도 소문을 듣고 손님들이 찾아왔다. 술

에 진창으로 취한 데다가 옆에서 좋은 소리만 해주니 나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노래를 부르고 춤까지 춘 나는 갑자기 연민의 정을 느껴 실언을 하고 말았다.

 

“모두 걱정하지 마. 돌아온 김에 괴물들은 내가 몽땅 청소해주지.”

 

얼마 후부터 나는 감당 불가능한 사태에 직면했다.

오래 행성에 사는 온갖 종족의 외교관들이 수렴동으로 찾아왔다.

요정들, 인어들, 야차들, 난쟁이들, 원숭이들, 오랑우탄들, 고릴라들, 털 없는 원숭이들.

그들은 한결같이 비참한 얼굴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처음에 초공간이 발견되었을 때는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공

간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잖아요.

얼마 동안은 실제로 좋은 통로였습니다.

은하계가 하나가 되는 것 같았지요.

세상에 그리로 괴물들이 흘러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초공간은 이제 지옥의 구멍이 되었어요.”

 

“말도 맙쇼.

큰 것이 하나 출몰할 때도 있고 작은 것들이 무리 지어 나와 약탈을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포악한 짓들을 하고 신성한 장소를 더럽힙니다.

아예 우리 땅을 빼앗아 눌러 사는 요마들도 많아요.”

 

접견을 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분신술을 실행해 싸운 직후 나는 격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얼마나 괴로운지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나 자신이 두 셋으로 나뉘어 어딘가에서 기진맥진한 내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그런 분열된 감각마저 맛보았다.

나는 내가 짧은 시간 동안은 진짜 손오공처럼 괴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지구력은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았소. 일단 내게 시간을 좀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