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신행마동

第 二十 章 한 쌍이 시작하면 한 쌍은 끝을 본다.

오늘의 쉼터 2016. 6. 2. 11:58

第 二十 章 한 쌍이 시작하면 한 쌍은 끝을 본다.


{으아아악!}
비명이었다.
하나 그 비명은 죽은 자의 목에서만 감도는,

산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비명이었다.
소일초...
그가 지금 막 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자는 검은 복면인이었다.
한데 침입자는 단지 한 명 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나 그들의 무공은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비명없이 죽여가는 소일초의 얼굴에는 화가 나있었다.
(비명이 나면 안된다.

저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멈춰져서는 재미적다.

그들은 그 일을 끝내야 한다.)
어둠을 적시며 자욱하게 뿌려지는 피...!

벌써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소일초의 잔인한 손 속에 죽어갔다.

단 한 마디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원천기 네가 바라는 것을... 빨리 해라! 한천녀! 원천기! 어서...!)
불나비처럼 침입자는 소리없이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덮쳐들었다.
하나 소일초의 무공은 그들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주소아는 그의 허리에 손을 감고 머리를 기댄채 꼼작도 않는데...

소일초의 무공을 직접 대하는 복면인들의 두 눈에 경악과 공포의 빛이 진하게 떠오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일초의 신경은 여전히 그들 보다는 어두운 방에 더 가있다는 사실이었다.
소일초는 파리떼를 쫓는 소꼬리 마냥 손을 휘둘러 그들을 소리없이 죽이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 가득 피어나는 혈화(血花)...
(합쳐져라! 원천기! 한천녀!)
소일초의 간절한 외침이 입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 × ×

(죽엇!)
쉬익!
한천녀의 좌수(左手)가 그대로 원천기의 백회혈(白會穴)로 내리쳐졌다.
실로 원천기의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문득 원천기는 뜨거운 시선으로 아래에 누워있는 한천녀의 두눈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천녀의 귓전으로 뜨겁게 흘러드는 음성,
{한천녀! 어서 날 죽이시오.}
그 음성에 한천녀의 좌수는 원천기의 백회혈 바로 위에서 굳어지고 만다.
{...!}
한천녀는 볼 수 있었다.

원천기의 눈빛이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음을...
그리고 느낄 수가 있엇다.

죽음 앞에서도 원천기의 전신이 여전히 뜨겁게 피가 끓고 있음을...

한천녀에게 있어 그것은 충격이었다.
{죽어도 당신을 안고 싶소.}
그녀는 그렇게 뜨겁게 원천기가 구애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그녀는 조용히 떨리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내심에 피어오르는 기이한 욕정을 느끼며 그의 목을 휘감았다.
모든 장애가 깨끗이 제거되고

원천기는 격렬하게 한천녀의 전신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불덩이같은 그의 격렬한 공격을 육체의 가장 깊은 곳에 느끼며

원천녀는 자신이 또 한 번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천기가 뿜어내는 그 뜨거운 열기를 가득 받아들이며

원천녀는 난생 처음 흐느낌을 토해내었다.

폭풍일과.
격정이 지나고 난 자리에는 흩어진 침상과 흩어진 옷가지만이 어지러웠다.
알몸이 되어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수 십년 만에 가진 정사에 심한 허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었어!

늘 아슬아슬한 순간에서 끝나버려 사람의 간장을 태우는 그들과는 확실히 달라!)
주소아와 소일초를 생각하면서 그들의 미진했던 사랑을 떠올린 것이다.
잠시후 대충 몸매무새를 단장한 한천녀가 한쪽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녀는 그 곳 탁자에 놓인 싸늘히 식은 찻잔을 끌어다 입술에 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을 침묵으로 보낸 두 사람 사이는 억겁처럼 긴 장막이 가로놓여져 있는 듯했다.
문득,
{미안하오...}
원천기는 탄식과 같은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그도 한 모금의 차를 마신다.
{천요무(天妖舞)를 연성하던 도중이었소.

깜박 잊고 저녁이 되었다는 사실마저 생각지 못했소. 한데...}
원천기는 달빛이 충일한 창문을 응시하며 말끝을 흐렸다.
{돌연 참을 수 없는 욕정이 생기는 것이었소.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바로 그들 때문이었소.

그리하여 마음 속에 억눌려 있던 당신에 대한 욕정이 폭발하고 만 것이오.}
한천녀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천요무!1
이 무공은 깊은 곳에서 나체로 익히는 것이 아닌가?
이 무공은 난해와 심오의 극을 달리는 무공이었다.
원천기는 이 밤에 그 가공할 무공을 수련하던 도중 주소아와 소일초로 말미암아

그 극음의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고 엄청난 욕정을 느꼈던 것이니...
한천녀의 입에서 꿈결인 듯 말이 흐른다.
{육십 년 전, 그자들에게 잡혀 강제로 당한 이후, 처음이었어요!}
한천녀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흐르고...

그녀의 방에 다시금 불이 꺼졌다.

× × ×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다시 침실로 돌아와 있었다.
주소아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소일초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봤지? 그게 정석이야!}
{누가 그렇게 하는 건 줄 몰라서 안했나?

그것만은 도저히 내키지 않아서 그랬지!}
소일초가 자신의 옷을 벗으면서 주소아의 귀에 대고 이야기 했다.
{소아! 오늘은 우리도 그렇게 해보는 거야! 알았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돼! 차라리 날 죽여.}
{그래 죽여줄게. 아까 한천녀도 죽는다고 발버둥 쳤잖아!

확실히 넌 배우는데 소질이 있어.}
{안된다니까. 전에 하고 똑 같이 해. 안그러면 나 도망쳐버릴 거야.}
그녀의 말에 소일초가 투덜거렸다.
{밤낮 그 정도만 해? 그럼 대체 언제나 원천기들처럼 할 거야?}
{나도 몰라! 하지만 때가 되면...}
주소아는 오늘도 최후의 방어선만은 철저히 고수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도 조금 사람같아지겠지?}
{두고봐야 알겠지만 변하기야 하겠지!}

{시기를 적절하게 잘 맞췄기 때문에 성사시킬 수 있었어!}

* * *

어둠에 잠긴 한천녀의 방,
한천녀와 원천기는 다시 욕정에 빠져 들고 있었다.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로 인해 ...
그러나 그들은 소일초나 주소아와는 달리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는데...
달빛은 교교로이 무더운 밤에 죽어있는 복면의 침입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 * *

한천녀와 원천기는 달빛아래 가득 흩어져 있는 이십여 구의 시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신을 응시하는 그들의 얼굴에 언뜻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놀랍군. 이들은 정확히 단 일초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들은 새삼 소일초의 가공할 무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소일초와 주소아가 그들의 뒤에서 걸어왔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걸고서...
원천기와 한천녀는 그의 시선을 맞받지 않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입자들의 정체에 대해 의혹을 금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원천기는 고개를 돌려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소일초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한천녀의 애써 외면하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차갑기만 하던 한천녀가 아까 그 여자였다니 신기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문득 원천기을 향해 소일초는 긴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원천기!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가는 점이라도 있나?}
천천히 원천기는 시선을 돌렸다.

돌려진 시선은 어느듯 무심하게 변해 한천녀을 응시하다가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옮겨진다.
한 줄기 야풍에 그의 백발은 표표히 휘날리고

그의 입을 통해 감정없는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소이다.}
{오늘밤 침입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죽음을 당한 것이지!

고통없는 죽음이란... 이 소일초가 내리는 최고의 선물이니까.}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한천녀의 표정은 그 미소에 접하는 순간 차가운 빛을 되찾으며 무심하게 돌려졌다.
그러자 소일초와 주소아는 몸을 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심히 던지는 말...
{달빛에 취해 잠을 못이루고...

사랑에 취한 사람을 위해 정적을 선물하고...

좋은 구경을 위해 피를 뿌렸으니 소아! 우린 잠이나 더 자자.}
휘적휘적 주소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소일초의 등은 웬지 거대해 보였다.
한천녀와와 원천기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었군.)

그녀는 잠시 원천기를 주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지금도 분명히 느끼고 있는 것은 원천기가 자기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녀는 원천기의 손길을 영원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달빛은 수수롭고...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직도 그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한과 저주인데...
문득 그녀의 어지러운 상념을 일깨우는 원천기의 음성이 있었다.
{으음! 이들은 얼마 전 부터 장원 주변을 배회하던 그 신비인들이겠군.

멀리서 돌기만 하더니 오늘은 이곳까지 들어왔군.}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시신들의 복면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히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서 이들은 모두 마공(魔功)을 익혔어!}
그 어떤 잡히지 않는 사실을 찾아가며 원천기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시신들의 얼굴이 달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원천기와 한처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점점 더 전해지고 있었으니...
{이럴 수가 이 자는 마교의 배신자들의 무공을 지녔다.}
{이 자 역시 마찬가지다.}
경악의 도를 넘어서 떨리기까지 하는 그의 음성은

한천녀에게도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 달빛 아래 정황이 드러난 이 사건은

실로 그들을 충격으로 몰아 넣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한 밤의 침입자들,

그들은 놀랍게도 과거 마교를 배신하고 사라졌던 자들 처럼

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등천마교(騰天魔敎)는 혈기대종사의 겁으로 인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거니 했는데...
한데...한데 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오늘 밤 이 동선장에 나타난 것이다.
마교는 멸망했다.
그렇다면 마교의 배신자였던 조천수 등이 만든 등천마교의 잔당이 남아 있다는 말인데...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원천기와 한천녀의 전신은 가는 경련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마장탑을 나온 후 그들은 옛날 자기들의 사주(使嗾)로 인해

마교를 멸망시키고 뛰쳐나온 조천수 등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미 조천수 등이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등천마교는 그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혈기자와 네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멸망해 버렸다는 것을 알고 경악해 마지 않았었다.
등천마교야 말로 그들 칠십이기재들이 무림에 안배한 가장 큰 힘이었는데...
또한 그들은 등천마교와 이름이 비슷한 등천마세(騰天魔勢)의 소문을 듣고 찾았으나

정사를 양분하고 있는 그들이건만 그 본거지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마교의 무공을 쓰는 등천마교의 잔존자들인 듯한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문득 원천기와 한천녀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올랐다.
(또 다른 인물들이 주위에 있다.)

생각과 동시에 번쩍 원천기의 신형이 좌측 수림(樹林)쪽으로 날아갔다.
한천녀의 신형도 한 줄기 안개처럼 흐릿하게 화하여 그의 뒤를 따른다.
한데 다음 순간 또다시 터져 나오는 경악성...
{이들은...}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의 사방을 살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림에도 수십여 구의 시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신들의 복장은 앞서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시신들과 동일한 점으로 보아

그들과 같은 일행임이 분명했다.
한데 이들이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엿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에 은밀하게 죽어있는 시신들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기이하게도 이들 시신에서는 어떤 외부적 상처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장도 손상을 입은 것 같지 않으니...
복면을 벗겨 본 원천기와 한천녀는 이들 시신도 역시 마교의 마공,

즉 구마존(九魔尊)들이 사용하던 마공을 익힌 자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 없이 많은 마공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들은 얼굴만 살피고도 알 수가 있었다.
정적,
슬프게 쏟아져 내리는 달빛 속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때 문득 오랫 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천녀가 입을 열었다.
{이들의 죽음은 곧 마교지존이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지요!}

원천기는 한천녀을 주시하며 물었다.
{소일초가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다니... 무슨 말이오?}
한천녀는 잠시 시신을 주시하다가 원천기를 직시하며 말했다.
{내 말은 이들과 소일초가 죽인 인물들과는 영적으로 맺어져 있었다는 말이지요.}
{영적으로?}
{맞아요! 이들은 영적으로 맺어져 있어 공포를 공유하게 돼죠.

일단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이처럼 상처하나 없니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천녀는 언뜻 이해하기어려운 말을 이어 간다.
{즉...! 이들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가 죽음으로써 소수가 영적인 공포를 느껴...

그리하여 짧은 시간에 이처럼 소리없이 죽어갔던 것이지요!}
그녀의 말은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 * *

아침에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소일초와 주소아는

비로소 수십 구의 시신들의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되고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무서운 일인데...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단지 비밀 하나를 위해 이토록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다니...

누가 이렇게 겁나는 단체에 가입하려고나 할까?}
생각할수록 그것은 전율스러운 일이 아닌가?
잔인한 일이었다.

실로 무섭도록 철저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일초에 의해 동료들이 죽음을 당하자

공포를 느끼고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심맥을 단절하고

그대로 죽음을 택한 이 철저하도록 잔인한 인간들...
그들이 다름아닌 마교의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새삼 놀란다.
(대체 이들의 배후에 도사린 인물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려 한단 말인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침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그들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어떠한 각도에서 이 일을 생각하든 그것은 단지 풀리지 않는 의혹일 뿐이었다.
해는 높이 솟아 오르고

한천녀는 멀어져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무심함 가운데

알 수없는 정이 깃든 눈빛으로 주시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으로...

* * *

주소아는 자신들의 침상에서 아침부터 뒹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등천마교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고 들었는데

또 그들외에 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나타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뿐이었다.
불가사의한 백인장과 청옥검궁, 그리고 삼성무림청의 실종...
그녀는 거기에 더하여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가슴에 묻고 있었다.
힐끗,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책을 잡고 있는 소일초를 보았다.

도무지 이 작자는 고민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곤혹스러운 일이더라도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듯 딴짓을 한다.
주소아 그녀는 머리를 짜면서 궁리를 하는 데도 나몰라라 하고 있다.
(저 자식을 만난 것도 다 내 복(福)이지 복!

박복(薄福)인지 행복(幸福)인지는 몰라도...)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다.
우선 그녀는 백인장과 삼성무림청,

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진 다음 곧 출현한 등천마세(騰天魔勢)와 정천보(正天堡)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고...
그 사라진 세력들이 혹시 탈을 바꾸어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정천보과 등천마세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캐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하나의 무림의 움직임에 신경을 쓴다.
바로 등마제(騰魔祭)에 대해서...
(한천이기가 등마제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제전이 현무림의 판도와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천이기는 보통 인물들이 아닌 것이다.
스스로 칠십이기재의 우두머리로 자부하는 그들의 두뇌는

어떤 분야에서는 그녀와 소일초를 앞지르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그들이 등마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그 제전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일초를 등마제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그녀는 잠을 설친 어젯밤 때문인지 깊이 생각하다가 깊이 잠이들고 있었다.
(그 후의 일은 그때 그때 알아서 하면 되겠지!)
소일초는 아침부터 침상에서 골아 떨어지는 주소아를 힐끗 본 후에도

신경도 쓰지않고 무슨 책인가를 열심히 읽는다.

× × ×

무림은 술렁이고 있엇다.
등마제가 또다시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십오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오 일 후로 다가선 이 달 보름, 십오야 만월이 중천에 걸리는 그 때에

등마제는 대파산(大爬山) 사망림(死亡林)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마제에 초대받은 수많은 악인들이 대파산으로 향하고...

원인모를 실종사건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엇다.
등마제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마제에 참석하는 사람은 두 종류이다.
악인으로서 제물을 들고 찾아가는 부류와,
악인에게 제물로서 잡혀가는 부류!
참석자의 수 만큼이나 많은 제물의 수!

무림혼란 속에 몸을 떨고...
이에 정천보는 등마제를 영원히 이땅에서 사라지게 하고자

일천 명의 정천수호군(正天守護軍)을 파견했다.

-정천수호군.

이 위대한 이름!

뜻있는 이들이 정의의 기치(旗幟)아래에 모여 형성된

정파무림의 최고 무인조직을 뉘라서 모르겠는가.
정천수호군은 정천보의 핵을 이루는 중추세력 중 하나이다.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단지 이 정도일 뿐,

그 진정한 힘의 실체와 정천수호군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신비였다.
다만 정천수호군의 이름만은 더높고, 무림인들은 정천보을 믿고 있는 만큼

정천수호군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천하무림인들은 정천수호군의 움직임과 등마제에 대해서 온 귀추를 주목하고 있엇다.
그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며 그것이 무림의 장래 판도에 중요한 기로였으므로...
아무튼 난세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과연 무림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