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신행마동

第 十七 章 魔王手의 詛呪

오늘의 쉼터 2016. 6. 2. 11:54

第 十七 章 魔王手의 詛呪


-마장탑(魔藏塔)!

이 엄청난 석탑...
그 끝이 이 지하공동의 천정에 닿아있으며, 주위로는 오직 백골들이 흩어져 있다.
시간과 주야(晝夜),

그리고 계절을 모르고 사이한 푸른 안개에 휩싸인 채 부유하듯 떠있는 이 마장탑은

세월의 무심한 흐름 속에서도 말없이 서있다.
전체가 푸른 이끼로 가득차 있었으며...

으스스한 마기(魔氣)를 끊임없이 삼켰다가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바로 이 마장탑 앞,
언제부터인가?

굳어진 석상처럼 빤히 마장탑을 바라보면서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 있는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전신에는 헤어질 대로 헤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치렁치렁한 장발은 허리를 넘었는데 낡은 천으로 질끈 묵여져 있는 청년,
그리고 헐렁한 낡은 옷을 걸치고 단정하게 머리를 틀고 있는 여인,
스스스...
한 줄기 음풍이 청년의 장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름다운 얼굴, 강인한 기상, 그리고 눈에 맺혀져 있는 것 같은 고집!
이 사내는 소일초다.
당연히 그의 옆에서 도대체 인간의 몸으로 이토록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풍겨내는 이 여인은 주소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소일초와 주소아,

그때 그들의 심연처럼 맑고 그윽하게 가라앉은 눈망울은 마장탑에 고정되어 있었다.
문득 꺼질듯이 새어나오는 소일초의 한숨...
{아! 틀렸어! 도무지 이 마장탑에 들어갈 방법이 없어!}
{...!}
{제기랄, 우리가 들어왔다던 연못은 꽉 막혀있고 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

그저 이 마장탑에 매달린 것이 벌써 언제야!}
소일초가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또 발작을 한다.
{여긴 남만의 검마동(劍魔洞)보다도 더 지독해.

그땐 거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곳인줄 알았는데...}
{가만있어봐. 떠들어도 아무 소용없어.

나갈려면 오직 저 마장탑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을 거야!}
소일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해. 마장탑은 너무도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어!}
그들은 벌써 자고 일어나면 마장탑에 매달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처음엔 수월하게 생각했던 이 지하공동에서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후에 더욱 그랬다.
마장탑과 마교,
어느 탑도 부술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그 두 탑만이 지하공동의 천정에 닿아 있는 기둥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희망이 있다면 오직 마장탑을 열고

그 속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이곳의 탈출 방법을 알아내는 것 뿐이었다.
그동안 그들의 식사는 오직 이끼와 물이었다.

이제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난 미증유의 신비로운 체질과 생명력을 지닌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의 손은 이끼를 신선한 음식으로 만들 수 도 있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을 지닌 것이라면 그들의 손에서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독과 물마저 그 성질을 바꿀 수 있으니

그들의 손은 기적의 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지난 얼마동안 이 지하공동을 빠져 나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으되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했으니...
석탑을 감싸고 있는 것들은 오직 독균들 뿐이었으며 이곳은 사방이 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곳은 절지이고 원래부터 이 곳의 출구는 연못 하나 뿐이었다.
그런데, 그 출구는 마교의 배신자들인 제구대 구마존들이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것이었다.
허나 지금 소일초가 투덜거리고 있어도 다시 마장탑을 들여다 볼 것이고

주소아는 눈 도 깜빡이지 않고 연구에 몰두해 있다.
(어떻게 해야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저 안 어딘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이 있을 텐데.)
하염없이 그녀의 신비로운 동공은 석탑의 부분부분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어느 부분은 튀어오르고...
어느 부분은 꺼졌으며...
어느 부분은 각이 졌는가...
기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눈을 감고도 석탑의 형상을 훤히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하기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살펴봤으니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허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의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도 세월 모르고 마장탑를 뒤지고 또 뒤졌지만

결코 마장탑의 출구를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마장탑이 얼마만큼 완벽하게 폐쇠되어 있는 지 짐작이 가리라!

주소아 그녀의 심사도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쩌어어엉!
지하공동의 아득한 천정으로 연결된 마장탑의 제일 윗 부분이

순식간에 지하공동 전체를 붉은 마광으로 물들이는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태양처럼 빛을 발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수려한 몸이 가늘게 떨린다.
(변화! 이 시간마저 멈춰버린 공간에서 처음있는 변화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헌데 그때였다.
쿠르르르...!
돌연 마장탑이 엄청난 소용돌이와 함께 무섭게 뒤틀리는 것이 아닌가?
수천만 가닥의 끔찍한 마광(魔光)이 솟아 오르고

그 마광은 기이하게 제일 윗 부분의 태양같은 붉은 빛과 어우러져 전율스럽게 뿌려지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현상이었다.
(우와...!)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 느닷없는 상황에 당혹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갑자기?)
쿠르르르...
그 순간 무너진다.

마장탑이 핏빛 먼지를 사방으로 뿌리며 아래에서 부터 붕괴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그리고 무서운 흡인력이 마장탑에서 뿜어져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휘감아 올렸다.
(으윽! 이런 엄청난 힘이...!)
막을 수가 없다.
백송균화(白松菌花)를 복용한 덕에 추측 불가능할 정도가 된 소일초와 주소아의

가공할 내공으로도 그 엄청난 흡인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쏴아아!
순식간에 그들의 몸은 서로 껴안의 채 붕괴되는 마장탑의 제일 위,

붉은 광채가 쏟아지는 속으로 끌려 올라가고...
그 와중에서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있었으니...
그 소리는 아름답고 전율스러웠으며, 사이했고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놀라지 말라! 인연자여!
우리는 불우했던 칠십이기재들! 그대를 위해 안배했나니...!

오오! 그랬던가?
이 모든 것이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위해 안배한 것이었던 것인가?
(이 기막힌 조화가 칠십이기재들의 안배라니...)

-그대의 출현은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뜻! 자, 어서 들라! 이 마장탑로 들라아아아아!

이 여운과 같은 영혼의 속삭임을 들으며 소일초와 주소아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쿠쿠쿠-----!
지하공동의 기둥역할을 하던 마장탑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기둥이 무너진 그 곳 역시...

× × ×

무림은 다시 한 번 경악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무림을 강타한 소문,

-천하제일의 힘을 가졌다는 백인장(百刃莊)이 무림에서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혈기삼신재(血旗三神才)로 밝혀진

삼성무림청의 수뇌들과 싸우다 죽은 원로도객들의 장례가 끝나자 마자

백인장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강북의 청옥검궁도 무림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청옥검궁에 소속된 일반 검사(劍士)들을 일제히 내보내고,

궁주인 검왕(劍王)과 소궁주인 검왕자(劍王子)를 비롯한 핵심 고수들이 어디론가 은거해 버렸다.
이제 무림사대세력 중 삼성무림청과 청옥검궁,

그리고 백인장이 종적을 감추면서 오직 구파일방만이 남게되었다.
강자들이 사라진 무림에 이를 기회로 군소방파들이 빠른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팽창해 가고 있었으니...
무림은 바야흐로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도대체 백인장의 사람들과 청옥검궁의 고수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들과 친분을 나누었던 수 많은 무림인들이 의혹속에 잠기는데...
무림에는 새로이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세력으로서 가장 강대하게 부상한 것은

삼현(三賢) 중의 일 인인 백대선생(白大先生)이 이끄는 백가장(白家莊)이다.
그리고 무시못할 세력이 역시 삼현 중의 한 사람인

혈군자(血君子) 지장행(智長行)이 이끄는 취현성(翠賢城)이며,
개인으로서는 일녀(一女) 취풍녀(吹風女)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취풍녀는 휘파람을 몰고 다니면서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 * *

-북경(北京),

연왕(燕王) 이후로 명(明)의 황제가 거쳐하는 곳이 된 곳,

밤이 되어도 거리에는 불이 꺼질줄 모르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어지럽다.
이 곳 북경에서도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주작로(朱雀路)!
높은 담장의 거대한 저택은 조용하기만 한데,

깊은 곳의 서재에서는 한 사람의 거림자가 황촉불을 받아서 어른거린다.
이 저택은 혜성처럼 나타나 여러 단계의 과거를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고,

절세의 총명을 드날리며 관계(官界)에 진출해

불과 사 년 만에 한림원(翰林院) 시강(施講)에 오른 인물의 저택이다.

황제의 신임을 철저히 받아 어느 누구도 그의 앞에서 세도를 부릴 수 없는

그 이름은 주하운(朱河雲)이다.
지금 그 주하운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서재에서 소요하고 있다.
{그놈들의 야심이 그렇게 컸단 말인가?

진정으로 나를 배신한 것이었던가? 자식과 다름없이 키웠건만...!}
그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정말 그 귀여운 녀석을 처참하게 죽여 버렸단 말인가?

아니... 결코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어떤 경우에도 쉽게 죽을 놈이 아니야. 나마저 골탕먹인 녀석인데...!}
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혈기자(血旗子)는 벌써 십오년전에 죽었다.

지금 있는 것은 한림원 시강인 주하운일 뿐이다.

그녀석의 일은 그녀석이 해결해야 한다. 물론 나와의 약속도 지켜야 하고...}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거대한 흡인력에 이끌려 마장탑에 빨려 들어선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기괴한 분위기에 전신을 으스스 떨며 눈을 떴다.
(이곳은 동굴이구나.)
그렇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도대체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동굴이었다.
이 지하통로의 사면 벽은 온갖 마기가 응집된 것처럼 암회색을 띠고 있었으며,

천정에 듬성듬성 박힌 야명주(夜明珠)는 피처럼 붉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뿐인가?

바닥에 낮게 깔린 붉은 안개는 스물스물 움직이고 있었고,

통로는 죽은 듯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똑! 똑!
그 정적을 깨는 것은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뿐,

그 청아한 소리는 이 극사한 분위기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길게 울리고 있었다.
(으음! 소름이 끼치는군.)
소일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소아와 함께 몸을 일으켜 보려고 하는 순간

사지로부터 얼얼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어?)
소일초와 주소아는 의외의 외침과 함께 다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상한데? 이렇게 다리가 풀리다니... 나도 모르는 새 첩을 뒀나?)
말도 아닌 소리를 내뱉는 소일초를 흘겨보며

주소아는 운공을 하여 근육을 풀며 좀전의 흡인력의 가공함에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그들은 한차례 운공을 하자 전신이 쾌청해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한데 그때였다.
고오오오!
통로 전체를 울리는 기이한 소리가 그들의 전신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정신을 맑게 흔들어 깨우고

그의 팔만사천모공으로 알 수 없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환영하노라!

이 땅의 축복과 하늘의 자비 속에 탄생한 천지간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여!

이 소리는 이 영혼의 속삭임은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이란 말인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청력을 있는데로 끌어올렸다.
하나, 그 음성의 출처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그 소리는 천만 가지의 음성이 한데 어우러져 들려온다는 것만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그때, 그의 의혹을 헤아린 듯 들려오는 영혼의 속삭임이 있었다.

-그대여! 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
나는 하나가 아니고 칠십이기재(七十二奇才) 모두이며,

단지 우리 영혼의 음성을 남겼을 뿐이노라!

따라서 내 몸의 형체는 없노라!

고오오오!
음성은 멀어져 갔다가 다시 몰려들었다.

-그대는 우리 칠십이기재들에 의해 선택된 인간!

그대만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욕망(慾望)과 한(恨)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노라!
하여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오직 그대를 위해 일생을 살았고

오직 그대를 위해 마지막 생의 종지부를 찍어가노라.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는 눈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입가에는 참기어려운 웃음을 참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을 아는 척하며 들려오는 음성은

그들이 오직 한 사람인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를 아는 척 하지마라!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며 둘이되 하나이니라!}

소일초가 처음으로 전음을 사용하여 주소아에게 그 신비한 음성을 흉내내며 말했다.
주소아의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듯 했다.
그러나 그 신비한 속삭임 소리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웃음 이전에 의혹이 느껴졌고,

또 의혹 이전에 경이로움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한편 그 영혼을 울리는 속삭임은 다시 울려오고 있었다.

-의심하지 말라! 거역하려 들지도 말라!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하늘의 낸 인간으로 하늘에 도전하는 두뇌를 지녔던 절대의 천재들,

어찌 그대가 이곳에 나타날 것을 예견하지 못했겠는가?
아는가?

마교란 이단의 집단에 의해 바로 우리 칠십이기재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우리 칠십이기재의 손에 의해 최초로 마교의 교주(敎主)라는 존재가 탄생되게됨을!
어리석은 인간들인 구마존은 죽어서도

우리들에 의해 마교가 새로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오직 자신들이 정통마교를 이어왔으며 이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마교의 정통 무공을 우리가 계승하였는데 누가 과연 정통이란 말인가?

여기까지 듣고 있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무...무엇이?}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아닌가?
{이들 칠십이기재들이 정통마교의 절기를 이었다는 소리아니야?

뭔소리야 이게? 잡혀왔던 주제에! 몽땅 미쳤군.}

소일초가 거짓말 마라는 씩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때,

소일초로 하여금 더이상 소리를 치지 못하게 하는 영혼의 울림이 가득히 전해져 나왔다.

-선택된 인간이여, 놀라지 말라!

그리고 우리들의 처절한 한을 마음에 새기라.
인간이었으나...

인간들에 의해 잡혀와 하늘에게마저 외면 당한 채 죽어간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응어리진 한...한...한...!

그 증오와 저주 어찌 작다 할 손가?

어찌 그저 묻어 두라고 말하겠는가?
저주하노라!
이 땅의 모든 정의(正義)를 증오하노라.

마의 손에서 우리를 지키지 못했던 정의를 저주하노라,
그리하여 우리는 마교를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여 우리의 뜻을 세웠노라.
우리는 악의 추종자들을 이용하여 마교를 배반하게 했으며,

그들을 이용하여 우리를 잡아왔던 모든 인물들을 주살하게 했으며,

이제 우리의 뜻으로 칠십이기재들인 우리는 세상을 멸망시켜버릴 인물을 선택했노라!

소일초와 주소아의 놀라움은 갈수록 심화되어 갔고,

이 칠십이기재들의 가공한 능력과 비틀린 욕망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만든 마교칠십이종절기(魔敎七十二種絶技)!
알지어다.

마교칠십이종절기는 우리 칠십이기재의 모든 것임을!

역사에는 다시 없을 광세의 역천마공(逆天魔功)임을...!
아아! 마교칠십이종절기를 창안한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만족했노라.

하나, 우리의 생명은 다했노라!

우리는 이 무학을 만들기 위해 죽음마저 던져버린 것이다.
후회는 없노라.
향후 이 하늘, 이 땅엔 선(善)이라 정(正)이라 이름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마(魔)라는 이름마저 영원히 사라진후

우리의 저주인 역천의 무공마교칠십이절기만이 영원히 찬란할 진저!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이제 마교칠십이종절기의 주인으로 선택한 그대를

마교지존(魔敎至尊)으로 봉하노라.
그리고 이제 그대에게 이 미증유의 마공절예를 전하노니...

마교지존이여! 이제 그대는 모든 자비를 버려라.
남아 있는 모든 인정의 샘물도 버려라.
그리하여 오직 마(魔)만이 충일한 마음으로 마교칠십이종절기를 받도록 하여라.
우리는 믿노라.

그대가 선을 버리고 마의 길을 가줄 것을...!

그리고 마(魔) 마저 없애버릴 것을...!

그대는 결코 우리의 뜻을 거역하지 않을 것을...!
아니, 결코 외면하지 못하리라!

외면은 필연처럼 죽음으로 지불되리니...
이제 그대는 우리 뜻으로 여덟 개의 석실에 들 것이고

그 석실들에서 그대는 마교칠십이종절기를 받으리라아아아....!

소일초는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싸늘히 냉소를 쳤다.
{불쌍하게 미친 놈들이 자부심 하나는 대단하군.

아무리 저주가 깊다하나 세상을 뒤엎을 수 있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인가?}
소일초의 얼굴에 피어오른 냉소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뭐 익히지 않으면 어쩌고 말듣지 않으면 어쩐다고?

감히 나 신행마동을 협박해?}
{꼭 그렇게 만은 생각할 것 없어! 주는 건 받고 시키는 건 않하는 게 너잖아.}
주소아가 그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교칠십이절기가 익히기 싫으면 익히지 않아도 돼. 내가 익힐께.}
소일초는 천천히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좋아, 그들 뜻대로 모든 무공을 연성해봐.

하지만 결코 그 무공들로 나를 이길수는 없을 걸?}
{...!}
{네 심보 다 알아.

어떻게 해서라도 무공이 강해져서 내위에 올라가 볼려고 하는거지.

어림없다. 나는 일초무적(一招無敵)이야!}
한데 그의 중얼거림이 막 끝났을 때였다.
쿠르르르!
굉렬한 폭음이 통로의 사방을 두드리는가 했더니

급작스레 소일초와 주소아가 서 있던 부위가 쑥 꺼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락!

끝없이 부침하는 나락 속으로 소일초와 주소아는

전신의 공력을 돋구고 몸을 보호하며 손을 잡고 꺼져들어갔다.
혼백으로 변해 구천에도 들지 못한 칠십이기재들이 말한 여덟 개의 석실로...!
그래서 또 다른 기연(奇緣)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 ×

석실(石室),
사방 십여 장 크기의 장방형 석실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도대체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는 너무도 평범한 석실이었으나...

누구든 이 석실에 들면 소리없이 젖어드는 소름끼치는 마기에 의해

전신이 오그라드는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엉겁결에 이 석실에 들어선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당혹함이 스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칠십이기재들이 안배해놓은 여덟 석실 중 한곳인가?)
각기 내심으로 짐작하며 석실의 사방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석실에는 아홉 명의 흑의 장발인들이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석실 사면 벽에 빙 둘러 있었으며 도대체,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가공할 마기와 사기와 악기를 뿌리고 있지 않은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기운에 접하자 숨이 막힘을 느꼈다.
(으음! 가공하다.

저들 역시 죽은 지 오래된 시신이 분명하건만...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뿐만이 아니라 저 극사극악한 기운은 가히 폭발적인 살인의 미학을 내포하고 있다.

잡혀온 칠십이기재들은 분명히 무공을 익힐 수 없도록 몸을 파괴당했다고 했는데...)
소일초와 주소아는 생각을 하며 아홉 구의 시체 가까이 접근했다.
(이들은 칠십이기재들 중 아홉 명이 분명하리라.)
가까이 접근하자 그들 시신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운은 더욱 가공하게 그의 전신을 향해 밀려왔다.

{조심해! 조심하지 않으면...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마기에 감염되어 영혼이 마의 기운에 사로잡히게 될거야.}
소일초가 주소아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는 마교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부였던 검마 역시 무림의 대기재 였고 젊었을 때 마교의 손길이 뻗쳐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납치하기 위해 나왔던 마교의 마두들은 오히려 모조리 그에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자신들의 비밀까지 털어놓으면서...
이것이 소일초가 칠십이기재를 우섭게 보는 이유의 하나였다.
칠십이기재가 진정한 기재로 강자들이었다면 결코 잡혀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의 사부인 검마가 실례(實例)지 않은가?

소일초는 심호흡을 하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미 주소아가 온 정신을 모으고 있는 석실의 사면 벽과 천정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이럴 수가 있는가?
이 극사극악한 기운은 단지 아홉 구의 시신에게서만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사면 벽이며 천정에서도

그 가공할 기운은 몸서리치도록 끔찍하게 풍겨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전율,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서는 항거할 수 없는 절사(絶死)의 기운이었다.
한편 사면 벽의 한 곳에는 무수히 많은 손(手)의 형태가 조각되어 있었다.
하늘을 움켜쥐는 듯...
대해를 가로지르려는 듯...
억겁의 한의 부피가 실린 듯 무거운 동작...등등.

그 수인(手印)은 수천 수만의 손이 일시에 움직이는 듯 생생했고...

엄청나게 사악한 기운이 바로 그 수인(手印)들에 의해 폭출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뿐인가!
그 수 많은 손의 조각들은 기이하게도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시작되고 종결되는 듯하니...

가히,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의 가공함과 사악함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문득, 소일초와 주소아의 수려한 동공이 믿을 수 없는 경악으로 치켜떠졌다.
(이 손조각들은 인간이 표출할 수 있는 모든 손의 행동을 묘사했다.

거기다가 인간의 몸에서 흐르는 생명의 기를 완전하게 끊어버리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들의 놀라움은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 생명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듯한 죽음의 동작들이다.

진정 가공하다. 무섭다. 두렵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런 것들에 놀랄 여유가 없었다.
스르르!
그들의 심연한 동공이 순간적으로 풀려가는가 싶더니...
스스스!
벽의 한 쪽에 가득히 찍혀 있는 손의 움직임이 그들을 무섭게 찍어오는 것이 아닌가?
{헉...!}
소일초와 주소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순간

수 많은 변화를 보이며 찍어오던 손그림자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벽은 원래대로 였다.
{묘한데!}
소일초의 말처럼 그 손 조각들은 묘했다.

조금 응시 했다 싶으면 눈 앞으로 뛰쳐 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았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묘한 흥미를 가지고 손 조각들을 들여다 보며 그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장강의 대하(大河)가 송두리째 그의 머리 속으로 밀려 들어오듯,
천지간의 온갖 저주와 한이 그의 머리 속에 폭포수처럼 내리 퍼부어지듯...
그 엄청난 수영(手影)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뇌리로 차곡차곡 파고들기 시작했다.
보면 볼수록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그들의 뇌리에 깊이 기억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돌연, 그들의 영혼을 촉촉히 적시며 소낙비처럼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으니...

-아는가! 마교지존이여!
우리 아홉 기재들의 이 잔인수(殘忍手)가 그려내는 황홀함은

우리 아홉 기재들의 모든 영혼이 서로 통하고 또 통하여

세월의 아득한 시공을 초월하여 완성한 역천의 무공임을...!
그리고 또 아는가?

그 잔인수가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마왕수(魔王手)는 완성되는 것을!
기억하라!

마왕수는 마교칠십이종절기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아! 절묘하다.

이 모든 수영들이 저주의 마교칠십이종절기 중 하나란 말인가?}
주소아가 탄성을 질렀다.
짐작은 했지만 이것은 너무 엄청난 무공이었다.
아니, 무공보다는 저주의 손짓이요, 살(殺)의 손짓이었으며, 한(恨)의 손짓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 수영(手影)들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잔인수가 하나로 점차 합쳐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더불어 영혼을 저미는 소리!

-마교지존이여!
우리 아홉 기재들은 세상의 모든 생명을 끊을 수 있는 하나의 수공(手功)을 그대에게 주겠노라!
그리하여 그대에게 주어진 그 위대한 마왕수는 하늘을 거역하리라!
땅을 거역하리라!
정을 외면하고 선을 부정하리라.
자비를 거부하고 인정을 짓밟아 가리라.
이제부터 위대한 마왕수는 그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게 될지니...
이후 마왕수는 이 하늘...이 땅 사이의 공간을 다스리는 죽음의 심판자(審判者)가 되리라.

죽음의 심판자 마왕수(魔王手)!
그것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머리속 깊이 새겨 졌다.
그 손은 아름다왔다.

하나이면서도 수없이 갈라지는 듯 하고

그러면서도 종내는 하나로 귀일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손이었다.
하나 그 속에 내포된 그 가공할 마기와 사기는 실로 끔찍한 것이었고

가히 폭발적인 공포를 자아내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 마왕수에 실린 사악한 마기와 저주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무섭도록 균열시키며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으으악!}
[아아악!]

마왕수의 마기가 뇌리에 파고드는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는 느닷없이 터지는 고통에 머리를 감싸며 나뒹굴었다.

이대로 가면 들은 마기에 물들어 천하에 다시 없을 마인이 될 것이다.
헌데 바로 그 위기의 순간이었였다.
파츠츠츠!
돌연 소일초의 품에서 은은한 서기(瑞氣)가 뻗어나와 두 사람을 감싸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의 영혼을 파괴할 것 같던 끔찍한 사기(邪氣)와 마기(魔氣)는

그 서기로 인해 절로 사그라져 버렸다.
마기에 영혼이 잠식당할 뻔한 소일초와 주소아의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사부님께서 돌보셨다.}
소일초는 품속을 빠르게 헤치고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한 시 도 몸에서 떼놓지 않았던,-물론 빨가벗었을 때는 빼고-

사부 검마(劍魔)의 몸에서 나온 사리(舍利),
그 사리가 마성(魔性)에 빠져들뻔 했던 두 사람을 구해준 것이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 지는 모르지만

소일초와 주소아는 여덟 개의 석실 중 첫번째 석실에서

아홉 가지의 무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아홉가지의 무공은 모두가 손바닥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째 석실에 이르러 있었다.
사실 그들이 여덟 개의 석실에 차례로 들게 되는 것은 칠십이기재들의 안배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의 손에 꼭 쥐어져 있는

일백오십여 간 참선했던 검마의 사리는 그들의 뜻이 아니었다.
칠십이기재들은 소일초가 단 한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계산에 넣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두 가지의 아주 엉뚱한 변수가

그들의 모든 계획을 무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은 계산하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