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개방서생

제6장 파천혈륜(破天血輪)

오늘의 쉼터 2016. 5. 31. 15:41

제6장 파천혈륜(破天血輪)

 

구파일방(九派一幇)을 제외한다면 일선(一仙), 이제(二帝), 삼옹(三翁), 사패(四覇), 오마(五魔), 

육혈(六血), 칠기(七奇), 팔군(八君) 등이 현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들 삼십육 인은 하나같이 상승무학(上乘武學)을 지닌 절정고수(絶頂高手)들이나, 각기 추종하는 바가 달랐다.

일선(一仙), 삼옹(三翁), 칠기(七奇)는 정파 협의인이다.

그러나 이제(二帝), 오마(五魔)는 효웅이라 불리웠다.

또한 사패(四覇)는 녹림인(綠林人)들이며, 육혈(六血)과 팔군(八君)은 사파의 무리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았다.

강물이 우물을 침범하지 않듯, 의식적으로 격돌을 회피해 온 것이다.

만약 충돌을 일으킬 경우, 승기를 잡더라도 그 희생의 대가가 만만치 않음을 누가 모르랴?

이들 외에도 정도십종(正道十宗), 사도오종(邪道五宗), 마도오종(魔道五宗) 등이 있고… 

상당수의 후기지수(後起之秀)가 이들 못지않은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한데, 이들보다 더욱 세인의 궁금증을 더해 주는 신비인(神秘人)이 나타났으니….

만보공자(萬寶公子).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돌연히 나타난 그는

용모와 부(富)에 있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 불리우기에 추호도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재물의 씀씀이는 또 얼마나 크던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간은 재화에 약한 법.

많은 이들이 그를 만나 보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악양에서 자취를 감춘 그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기묘산(神奇妙算) 소걸군(少乞君).

개방(豈幇) 일결제자며 삼소괴(三小怪) 중 하나인 그는

뛰어난 학식(學識)과 화술(話術), 재지(才智)를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 무공을 익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근골이 약하고 몸이 부실하여,

설사 무공을 익힌다 하더라도 고수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천수장에서 재간을 유감없이 드러낸 후,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정사마천궁주(正邪魔天宮主).

절대절륜(絶對絶倫)한 패도지학(覇道之學)의 소유자로,

그의 검법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고되었다.

냉막한 외모 그대로 거침없이 목숨을 빼앗는 살객(殺客).

천수장의 혈풍을 종식시켰으나 정파인 화산 장로 쌍비검(雙飛劍) 금운성(金雲星)을 살해했고,

태검장의 낙양일색을 납치하는 등 정사지간(正邪之間)을 넘나드는 행동을 하였다.

그의 행방 역시 오리무중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오마 중의 하나인 북악신마(北嶽神魔) 고륜(高輪)과

제자인 철장(鐵掌) 금운비(金雲飛)를 비롯, 금릉(金陵) 청운보(靑雲堡) 가솔들마저 몰살시킨 

양대 살성(殺星)에게 본부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중입니다."

지옥야차부주는 혈살신마와 잔인사황을 곁눈질하며 설명을 끝냈다.

하지만 냉한웅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본존이 듣길 원하는 건 강호의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소문이 아니오."

은근한 꾸짖음에 지옥야차부주는 어깨를 움츠렸다.

"대귀선의 천망을 노리는 새외문파들에 대해 물으시는 것이옵니까?"

"그렇소."

"현재까지 전해진 보고에 의하면 고루대교( 賜大敎), 파천혈랑교(破天血狼敎),

불사천마교(不死天魔敎) 등 묘강 삼대세력 모두가 뛰어들었고…

대막의 신비괴문(神秘怪門)인 만신각(卍神閣)도 이미 들어와 활동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혈살신마가 또 성급함을 억누르지 못했다.

"새외 신비문파들마저 중원에 몰려들게 만들다니…

천망이란 물건이 대체 무슨 대단한 효능을 지녔는가?"

지옥야차부주는 그의 말투가 못마땅했으나, 냉한웅의 앞이라 다만 불만스런 어투로 대답했다.

"그것으로 옷을 해 입으면 도검 뿐만이 아니라 수화(水火)가 침범을 못하지요.

이외에도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쓰임새가 다양하오."

이번에는 잔인사황이 물었다.

"대귀선은 장강어옹의 것이니, 천망도 당연히 장강어옹의 것이어야 하잖는가?"

"아니외다. 장강어옹은 제조만을 맡았을 뿐 모든 물자는 칠기의 설산신니(雪山神尼),

천중사기의 천도탈혼(天賭奪魂), 소림의 하남일장(河南一掌), 그리고 진천패도(震天覇刀)와

백운보(白雲堡) 보주인 백운신검(白雲神劍)이 대었으니… 모두가 주인이오."

"그럼 어째서 그것을 나눠 갖지 않느냐?"

지옥야차부주는 그들이 계속 반말을 해 대자,

속으로 이를 갈았으나 냉한웅의 면전인지라 꾹 눌러 참았다.

"천망은 결코 베어지질 않소. 그러니 자연 분배할 수도 없는 거외다."

혈살신마는 이런 심중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쏘아 대듯 질문을 던졌다.

"천망은 지금 어디 있느냐?"

"천리묵혈동(千里墨血洞)에 있소."

"그 곳은 어디 있느냐?"

"장강의 하구(下口)에 있소. 실상 길이가 천 리에 달하지 않으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 흑암(黑暗)의 동굴이오."

잔인사황이 코웃음쳤다.

"흥! 그렇다고 무림인들이 천리묵혈동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려할까?"

지옥야차부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원은 물론, 새외 각 파의 고수들까지 앞다투어 그 곳으로 몰려가고 있다 하오."

그는 일단 말을 끊고 나서 혈살신마와 잔인사황의 표정을 살폈다.

"천리묵혈동엔 각종 독물(毒物)과 독충(毒蟲)들이 칠흑의 어둠에 숨어 생명을 노리고 있으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호기심과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이지요."

하나, 혈살신마와 잔인사황의 눈빛엔 의혹만이 가득했다.

"천망이 어떤 것으로도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 자들은 무슨 묘수를 지닌 것일까?"

지옥야차부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단지 호기심과 욕망 때문일 뿐이오. 아니면 호승심(好勝心)일 수도 있고.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

"파천혈륜(破天血輪)! 그 천고의 기병(奇兵)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요."

일순 혈살신마와 잔인사황의 얼굴에 격동의 물결이 동시에 스쳐 갔다.

"아, 노부도 들어 본 적이 있네. 그 예리함이 중원 삼대신검(三大神劍)인 간장이나 막사, 어장을 능가한다는…."

"파천혈륜은 파천혈랑교의 신물(信物)인데, 어찌 함부로 내놓겠는가?"

지옥야차부주는 그들이 천망보다 파천혈륜에 더 관심을 보이자 혼란스러웠다.

'백 명(名)의 무림고수에게 천망보의(天網寶衣)를 입힌다면,

황제가 거주하는 자금성이라도 쑥밭을 만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귀보에 별 관심  없다니… 정말 상대하기 힘든 노괴(老怪)들이야.'

그는 떨떠름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정보에 의하면 파천혈랑교주가 지니고 중원으로 들어온다 하오. 
때문에, 더욱 많은 중원무림인들이 천리묵혈동에 모여들고 있는 형편입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냉한웅도 입을 열었다.

"지옥야차부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본부에서도 이미 손을 써…."

지옥야차부주는 대답을 하다 말고 힐끔 혈살신마와 잔인사황을 살폈다.

냉한웅은 신비로운 미소를 흘렸다.

"천신령주는 지금 천살령(天殺令)의 조직을 들먹이려는 게 아니오?"

다음 순간, 지옥야차부주는 오체투지하며 격동의 음성을 쏟아 냈다.

"수하는 도저히 주군의 깊으신 지혜를 예측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아셨는지…?"

냉한웅은 다소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천신령 고수들의 무공이 만만치 않다고 하나, 중원 대문파를 봉산(封山)시킬 정도에 이르진 못하지요." 

석년에 지옥야차부가 점창파의 장문인과 호법들을 살해하고 봉산(封山)까지 시킨 사실을 들먹인 것이다.

또한 그 사건이 지옥야차부가 천살령 살수(殺手)들의 힘을 빌린 것이란 걸 은근히 폭로했고….

지옥야차부주는 내장까지 완전히 드러내 보인 기분이었다.

혈살신마와 잔인사황의 입가에 머문 가느다란 비웃음은 그를 더욱 수치심에 휩싸이게 했다.

"다신 질문 따윈 하지 않겠으니, 그저 하명만 내려 주옵소서."

그의 체면을 너무 구겨 놓았다 생각된 냉한웅은 한껏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물었다.

"만통자(萬通子)는 지금 어디 있소이까?"

"녜, 천살령주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음, 강호상의 비밀스런 내용들을 조사하여 기록해 놓은 문서가 어느 정도나 되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옥야차부주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본 천신령에서는 천마존이 불귀해로 떠나신 이후 총력을 다해 정보를 수집한 결과,

총 백이십육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비사(秘事)를 입수하였습니다."

삼부(三部)로 나누어진 강호비사집(江湖秘事集).

일부(一部)에는 강호의 일반적인 사건들과 특이한 사건들의 전모가 예리한 분석까지 곁들여 적혀 있었다.

이부(二部)에는 중원 대소방파들의 내력과 관련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삼부(三部)에는 천하를 할거하는 군웅들의 신분과 그들의 어두운 비밀을 낱낱이 적어 놓았다.

그러니 어느 누구라도 이것을 읽는다면 제이, 제삼의 무불통지(無不通知)로 행세할 수 있으리라.

비사집을 뒤적이던 냉한웅의 입에서 단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본존이 지옥야차부를 찾은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이제 천하 무림은 정사마천궁(正邪魔天宮)에 굴복하리라!"

오시경(午時更).

강소성(江蘇省)의 장강 하구로 이어지는 관도상(官道上)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평소에는 장사치들이 오가는 길목이었으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병기를 휴대한 무림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몰려 다니는데

(僧), 도(道), 속(俗), 각양각색의 차림이었다.

이들 중 유난히 시선을 끄는 인물들이 있었다.

두 명의 거지, 바로 개방 삼소괴(三小怪) 중 추추귀개와 월녀개였다.

"사형, 천리묵혈동에 소걸군이 나타날까?"

월녀개의 물음에 입이 근지럽던 추추귀개는 때를 만난 듯 침을 튀겨 댔다.

"천수장에서 그 소괴가 갑자기 사라진 후,

본방의 제자들이 총동원하여 그의 행적을 쫓게 했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어."

"그만해. 물은 내가 잘못이지."

그녀의 뾰족한 외침에 추추귀개는 흠칫하였다.

순간, 그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 똑똑한 사형의 짐작이 틀림없을 게다."

"흥! 소걸군이 이 누이에게조차 아무 말 않고 떠나다니… 만나기만 하면 그냥 두지 않을 거야."

"맞아. 이 사형도 그 소괴에게 따끔한 맞을 보여 줄 거야.

글줄 깨나 읽었다고 건방지기 짝이 없게 구는 녀석!"

불똥이 자기에게까지 튈까 겁먹은 추추귀개가 맞장구를 쳐 댔다.

다음 순간, 월녀개의 눈꼬리가 초생달이 뒤집히듯 치켜올려졌다.

"사제를 감싸 주지는 못할망정… 정말 한심스럽군."

그녀가 눈을 흘기며 앞서 달려가자, 추추귀개는 어이가 없었다.

"제기랄! 그럼 날더러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거야?"

그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 왔다.

"그래서 옛 성현들도 앉아 소피 보는 족속과 소인들은 다루기가 어렵다 하였지."

추추귀개가 헤벌쭉 웃었다.

"맞아, 맞아. 사매가 제아무리 똑똑해도, 앉아서 소피 보는 족속임엔 틀림없지."

그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상대하기가 쉽지 않더라니… 어엇?"

추추귀개가 갑자기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을 휩떴다.

땅에서 불쑥 솟아난 듯 목전에 서 있는 삐쩍 마른 인물, 그는 바로 소걸군이 아닌가?

그가 히죽 웃어 보였다.

"귀개는 어째서 월녀개와 다투고 있는 거야?"

"이 놈아, 모두가 너 때문이야."

추추귀개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소걸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말이야? 두 소괴(小怪)가 다툴 땐 내가 없었잖아?"

추추귀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음, 그렇지. 그렇긴 한데…."

"그렇다면 내겐 잘못이 없는데, 왜 화를 내는 거야?"

"하지만 원인이 소걸군에게 있으니, 마찬가지라구!"

"말도 안 돼. 그럼 두 소괴를 다투도록 하기 위해 내가 원인 제공을 했단 말야?"

추추귀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어지러우니 그만해. 내 혓바닥으론 널 어찌할 수 없지만 사매는 만만치 않을걸?"

소걸군도 따라 고개를 내젓는 흉내를 내었다.

"나는 진실만을 말해. 진실 앞엔 어떤 혀놀림도 상대가 될 수 없지."

추추귀개는 입술을 삐죽였다.

"두고 보자. 사매, 사매!"

그의 음성이 어찌나 컸는지 길을 가던 사람들 모두가 멈춰 서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계속 외쳐 댔다.

"사매! 사제가 왔어. 소걸군이 왔다고!"

맨 앞쪽에서 혼자 걷던 월녀개가 고개를 돌렸다.

일순 그녀의 눈까풀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월녀개가 훌쩍 신형을 날려 행운유수(行雲流水)와도 같이 돌아오자,

추추귀개는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하늘을 찌를 듯 월녀개의 치켜진 아미(蛾眉)를 본 것이다.

"소걸군, 이제 넌 큰일났…."

하나, 그는 말을 하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월녀개가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앙칼지게 외쳤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악을 쓰는 것이야? 냄새나는 입 좀 다물어."

그 뜻밖의 반응에 추추귀개는 소변이 찔끔 나올 만큼 질려 버렸다.

'제 입으로는 분명히 소걸군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서는…?'

월녀개는 새침을 떨며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걸군 따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태도였다.

"킥킥… 본전도 못 건졌잖아."

소걸군이 키득거리며 놀리자, 추추귀개는 더욱 열이 올라 욕설을 퍼부었다.

"제기랄, 귀개는 앞으로 평생 동안 계집을 상대하지 않겠어.

변덕이 그렇게 죽 끓듯 해서야…."

그가 월녀개의 뒷덜미에 대고 주먹을 휘둘러 보일 때,

뒤돌아 쏘아보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아함…!"

화들짝 놀란 추추귀개는 손을 활짝 펼치며 크게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하였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뒤따라 걷는 그의 귀에 소걸군의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하늘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몸 굽히지 않곤 살 수 없다네.

제아무리 땅이 단단하고 두텁다 해도,

감히 조심해서 걷지 않을 손가?

여기서 이렇게 부르짖음은,

뜻이 있기 때문이니…….

슬퍼함은 오늘날 사람들이,

턱 밑의 개구리처럼 울어 대고 있음이여!

천리묵혈동(千里墨血洞).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는 이 천연동굴은 십팔층 지옥으로 이어진 듯 끝없이 긴 어둠뿐이었다.

또한 수많은 통로들이 뒤얽혀 있어 길을 아는 이가 아니면 되돌아나오기조차 어려웠다.

이 외에도 각종 독물과 독충들이 서식하고 있어, 외인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었다.

인적이 오랫동안 끊긴 입구 주변에는

고목(古木)의 가지들과 칡넝쿨 등이 우거져 음산하기 그지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나, 오늘은 너무도 달랐다.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인물들이 떼지어 주위를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 한 마디로 장터와도 같았다.

그 중엔 무림에 명망을 떨치는 인물들도 적지 않았는데….

소림사(少林寺) 법성대사(法聖大使),

무당파(武當派) 백룡도장(白龍道長),

아미파(峨嵋派) 혜인대사(慧仁大師),

화산파(華山派) 경운유협검(敬雲流俠劍),

칠기(七奇) 중의 설산신니(雪山神尼),

백운보(白雲堡) 보주인 백운신검(白雲神劍) 나인걸(羅人傑),

진천패도(震天覇刀) 피천웅(皮天雄),

천중사기(天中四奇) 중 천도탈혼(天賭奪魂) 방문웅(方文雄),

귀수신투(鬼手神偸) 왕한상(王漢湘),

성수마의(聖手魔醫) 여소량(呂紹梁) 등…….

대귀선을 타고 불귀해를 떠났던 이들의 모습도 빠짐없이 보였다.

어느덧 따사로운 햇살은 기력을 잃고 으쓱으쓱 땅거미가 스며들고 있었다.

천리묵혈동 입구 근처 공지에 네 명의 인물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장강어옹(長江漁翁) 차비운(車飛雲)과 사도오종(邪道五宗) 중의 한 명인 혈풍상괴(血風商怪) 전무(田武),

그리고 묘강에서 온 파천혈랑교의 묘강쌍마(苗彊雙魔)였다.

전무가 말문을 열었다.

"모든 것을 극비리에 처리했는데, 어째서 이렇듯 요란하게 소문이 난 거요?"

차비운이 이를 갈 듯 대답했다.

"정사마천궁주(正邪魔天宮主)!"

전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모의 눈엔 그가 신의를 굳게 지키는 인물로 비쳐졌소. 결코 아닐 게요."

하나, 묘강필마는 차비운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들 알고 몰려왔단 말이오?"

차비운도 의문을 더하였다.

"그 자가  여지껏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는 것이 수상쩍지 않소이까?"

전무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아름드리 고목 뒤로부터 삐죽 소걸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설시참자도(舌是斬自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이어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정사마천궁주가 소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이 소걸군이 보증하겠소."

순간, 차비운의 눈가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옥봉과 그의 정인인 일도경혼(一刀驚魂) 강무웅(姜武雄)을 소걸군 때문에 놓아 주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혈풍상괴에게 이간질까지 하여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흐흐흐… 네놈이 삶에 염증을 느낀 모양이구나."

하지만 소걸군은 코웃음쳤다.

"흥! 당신은 정말 둔하군.

신기묘산(神奇妙算)이라고 불리우는 내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

그는 안하무인 격으로 마구 떠들어 댔다.

"이 곳이 시끄러워지면 다른 친구들이 몰려들 테지? 그 중엔 아마 설산신니도 있을 거야."

설산신니란 말이 떨어진 순간, 차비운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는 부아가 치밀었으나 소걸군이 입을 다물어 주기만 기다리는 수밖엔 없었다.

살인멸구(殺人滅口)하는 수도 있긴 했다.

그러나 약기가 여우보다 더한 소걸군이 그만한 대비책도 없이 나타날 리 없잖은가?

암중에 보호하는 고수가 있으리라 짐작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때 전무가 소걸군에게 물었다.

"어째서 너는 정사마천궁주가 소문을 내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

소걸군은 한심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 소문이라는 게 뭔지부터 얘기를 해야 순서가 맞지 않을까?"

그의 말에 중인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무가 되물었다.

"너는 소문을 듣고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

"전혀 들은 바 없지."

"그럼 어떤 이유로 천리묵혈동을 찾아온 거냐?"

소걸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당신은 내게서 어떤 답변을 듣고 싶은지 잊은 것 같군."

"잊다니? 정사마천궁주가 소문을 낸 것인지를 알고 싶어 물은 것 아냐?"

"그렇다면 먼저 그 소문이란 게 무엇인지부터 얘기해 줘야지.

래야 내가 들은 소문과 같은 건지 확인할 게 아닌가?"

전무는 수긍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이란 묘강의 파천혈랑교주가 천고기병(千古奇兵)인 파천혈륜을 지니고 대귀선이 숨겨진 곳에 온다는 것이다."

소걸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대귀선이 숨겨진 곳은 천리묵혈동이고…."

"그렇다."

전무 스스로 비밀을 털어놓자, 차비운의 인상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전형,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전무는 어깨를 움츠리며 소걸군을 응시했다.

어서 진실을 밝히라는 재촉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소걸군은 얘기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만약 정사마천궁주가 그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라면 지금쯤 여기에 나타났을 게야."

"어째선가?"

"이 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테니까."

"……."

"당신들은 쉽게 이해가 갈 것이야. 음모를 꾸미는 데는 도가 텄으니까."

"음모라면 이 전모(田某)도 과히 빠지는 측은 아니지."

전무가 흐뭇한 미소를 짓자, 소걸군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그토록 완벽한 음모를 꾸밀 만한 간웅(奸雄)이 절대 못 돼."

무안해진 전무가 얼굴을 붉히며 노려보았다.

"이거야말로 격화소양(隔靴搔痒)… 신을 신고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격이 아닌가?

답답해 죽겠군. 정사마천궁주도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이야?"

소걸군은 중인들을 훑어보며 잘라 대답했다.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크지."

이번엔 차비운이 노성을 질렀다.

"그럼 노부의 짓이란 말이냐?"

이 때, 여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 왔다.

"소걸군! 어서 이리 와 봐."

월녀개의 음성이었다.

소걸군이 달려가자 차비운과 전무, 묘강쌍마도 즉각 그를 뒤따랐다.

추추귀개와 월녀개가 장강의 물줄기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달려온 중인들이 안력을 돋구어 바라보니, 그것은 한 척의 소선(小船)이었다.

미끄러지듯 수면 위를 스치는 소선의 선미(船尾)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파천혈랑(破天血狼)>

자홍색(紫紅色) 비단에 금실로 글자를 수놓은 매우 화려한 번(蒜)이었다.

묘강쌍마의 표정에 희색이 감돌았다.

"교주께서 도착하셨소. 어서 갑시다."

묘강필마(苗彊筆魔)의 말에 묘강곤마(苗彊棍魔)가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왜?"

차비운과 전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휙- 획-!

경미한 파공음과 함께 두 줄기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사두련(蛇頭鍊)을 손에 쥐고 있는 장한이었고,

다른 한 명은 두터운 감산도(坎山刀)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전무가 쓰윽 훑어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광동(廣東)의 음살이귀(陰殺二鬼)로군."

차비운의 입가에도 조소(嘲笑)가 감돌았다.

"음살이귀 따위가 천망을 노리다니…."

소걸군은 쓰게 웃었다.

"아니야. 저 자들은 음살이귀와 매우 흡사하게 생긴 황산이랑(黃山二狼)으로, 무공이 한 수 아래지."

그 순간, 두 마디 처절한 비명과 피보라가 허공에 일었다.

"으악!"

"크윽!"

황산이랑은 묘강쌍마의 공격에 반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황산이랑의 무공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고수 측엔 드는 인물들인데… 실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차비운과 전무는 진저리를 쳤다.

파천혈랑교의 무공이 중원을 충분히 넘볼 수준이란 걸 알고는 있었으나,

이토록 절륜할 줄은 전혀 짐작 못한 일이었다.

하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소걸군이었다.

약관에 불과해 보이는 그가 어떻게 노강호인 자신들조차 분간 못

음살이귀와 황산이랑을 구별해 낸 것일까?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강호 견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소걸군, 아니 냉한웅도 

지옥야차부의 강호비사집(江湖秘事集)을 읽기 전이라면 절대로 알아 내지 못했으리라.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그들은 경탄과 의혹이 뒤섞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 갈의노인(葛衣老人)이 소선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동시에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무산괴마(巫山怪魔)다!"

오마(五魔) 중 하나인 무산괴마(巫山怪魔) 여량(呂凉).

그는 석년에 낙양 부영산의 고봉에서 냉한웅을 만났고, 함께 불귀해로 떠났던 인연이 있지 않은가.

일순간에 천리묵혈동 주변은 질식할 것만 같은 고요에 휩싸였다.

무림에서 여량의 비중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소선을 향해 쏘아져 가던 여량은 삼 장 거리에서 빙글 신형을 돌렸다.

파르르륵-!

괴음이 일며 소선으로부터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밧줄이 영사(靈蛇)처럼 솟구쳤다.

"흥!"

여량은 코웃음치며 쌍장을 휘둘렀다. 빙

글 그의 양 손이 원을 그린 순간.

펑-!

고막을 울리는 굉음이 일며 미끄러지듯 밧줄이 소선 안으로 사라졌다.

전무가 물었다.

"저건 처음 보는데, 뭐라 부르는 거요?"

묘강곤마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묘강 특산인 대마(大麻)를 꼬아 만든 혈랑편(血狼鞭)이오."

"저렇게 길고 굵은 밧줄을 채찍으로 사용한단 말이오?"

"이 갑자(甲子) 이상의 공력을 지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지금 이 갑자라고 했소?"

"물론 본교에도 그 정도 공력을 지닌 이는 많지 않소.

양대호법만이 혈랑편을 사용하니, 그들이 손을 쓴 모양이오."

소걸군도 한 마디 덧붙였다.

"혈랑편에는 십팔층 지옥을 뜻하는 열여덟 개의 혈랑머리가 새겨져 있지."

순간, 묘강쌍마의 얼굴에 경악의 물결이 일었다.

'본교 내부에서조차 아는 이가 많지 않은 비밀을 저 자가 어떻게…?'

소걸군은 그들의 표정이 우습다는 듯 빙긋거렸다.

"그게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고? 어서 저길 봐. 꽤 볼 만한 싸움이 벌어질 거야."

그는 턱짓으로 소선을 가리켰다.

여량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신형을 돌리며 소선 안으로 짓쳐 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때 두 줄기 인영(人影)이 공간을 가르는 파공음을 일으켰다.

여량이 어찌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겠는가?

그도 일신의 공력을 다하여 신형을 내리꽂았다.

소선으로부터 다시 혈랑편이 빛살처럼 폭사되었다.

"헛!"

우측에서 허리를 동강낼 듯 휘감아 오는 혈광(血光)에 여량은 대경실색해 허리를 비틀었다.

동시에 좌측에선 다른 하나의 혈랑편이 꿈틀거리는 혈광을 내뿜어 두 명의 고수들을 실색케 했다.

타탕- 타타- 파카카카-!

소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던 이 인(人)도 더 높이 퉁겨져 올랐다.

육지(陸地)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중인들은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혈랑편의 위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량에 이어 소선을 기습한 이 인의 모습.

한 명은 입 밖으로 송곳니가 튀어나온 흉칙한 인상의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마른 장작깨비 같은 몸매에 신경질적인 인상이었다.

그들은 바로 오마 중의 흡혈인마(吸血人魔) 유남(劉嵐)과 필살검마(必殺劍魔) 천장한(千長恨)

이었으니….

목전의 국면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여량과 유남, 천장한 등 삼마는 다시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방향을 셋으로 나누어 육박해 들어갔다.

하나, 혈랑편의 변화는 신묘하기 짝이 없었다.

끝이 없을 듯 긴 꼬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소선에 핏빛 광막(光膜)을 드리웠다.

삼마는 전력을 다해 광막에 충격을 가했다.

쇄애액- 츠츳츳츳-!

두 가지 강기가 충돌하는 기음(奇音)이 허공에 울려 퍼진 바로 그 순간.

쏴악-!

강물 속으로부터 뭔가가 전광석화처럼 치솟아 오르는 게 아닌가?

장관이었다.

거대한 물줄기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일으키는 물안개.

희뿌연 물안개에서 폭갈(爆喝)이 터져 나왔다.

"파천혈랑(破天血狼)-!"

이어, 현란한 광채가 비산되었다.

필살검마 천장한은 혼비백산하였다.

혈랑편과 충돌한 자신의 검이 채 회수되기 전이었으니,

그는 좌장(左掌)을 휘둘러 또 다른 혈광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 것의 위력은 혈랑편에서 발산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예리했다.

푹-!

혈광은 그대로 천장한의 장력과 장심(掌心)을 가르고, 가슴마저 관통했다.

"크윽!"

그의 신형은 삶의 종지부를 찍는 비명을 토해 내며 그대로 강물 속에 곤두박질쳤다.

수면을 밟고 선 괴인.

그는 이리의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어 용모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발달된 체구와 손에 쥔 기형(奇形)의 도(刀)

평생 잊혀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게 와 닿았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는 군웅들을 향해 이리의 울음과 같은 괴성을 질러 댔다.

"크으으릉…!"

그리고는 다시 강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번엔 아주 미약한 파문(波紋)만을 남기고….

겨우 몸을 피한 무산괴마 여량과 흡혈인마 유남은 이빨을 무섭게 갈았다.

"파천혈랑교!"

"동귀어진(同歸於盡)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놓치지 않겠다."

이들이 원독에 찬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갑작스레 천리묵혈동 주변이 혼잡스러워졌다.

소선이 천리묵혈동 입구로 진입하자, 군웅들도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어서 뒤를 쫓아라!"

"빨리 움직여. 놓쳐선 안 돼!"

어디에 숨겨 놨던 것인지 여러 종류의 선박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고 작은 배들이 앞다투어 천리묵혈동 안으로 향했다.

미처 배를 준비하지 못한 군웅들은 동분서주 횃불을 밝혀 들고 신형을 날렸다.

천리묵혈동의 입구는 여러 척의 선박이 자유자재로 왕래할 만큼 거대했다.

또한 좌측과 우측 가장자리엔 장정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을 넓이의 천연적인 육로(陸路)가 생성되어 있었다.

이 바람에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던 천리묵혈동 입구 안쪽이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밝아졌다.

추추귀개가 무슨 잔치상이라도 받아 놓은 듯 벙긋거렸다.

"소문난 잔치치고 별로 먹을 게 없다지만, 난 이렇게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좋더라."

차비운이 묘강쌍마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요?"

하나, 묘강쌍마는 묵묵부답 수면만을 응시했다.

월녀개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우리도 들어가자. 수로(水路)보다는 걷는 편이 더 안전할 듯싶어."

묘강쌍마는 왠지 소걸군의 눈치를 살폈다.

소걸군은 그들의 내심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기까지 와 그냥 되돌아갈 수도 없고, 타고 갈 배도 없으니…."

그는 차비운 일행을 바라보면서 멋대로 주절거렸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서운해 하지 마."

월녀개와 추추귀개의 뒤를 어슬렁거리며 따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차비운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대책이 안 서는 녀석이다."

전무는 실실 묘한 웃음을 흘렸다.

"탐나는 놈이야. 노부의 전인이 된다면 중원(中原) 제이(第二)의 부자로 만들어 줄 텐데…."

"그 말은 중원제일의 부자로 만들어 줄 능력이 없다는 뜻이오?"

묘강필마의 물음에 전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모의 능력을 과소평가 마시오.

제자보다는 사부가 더 전(錢)이 많아야 장사꾼 체통이 서지 않겠소?"

묘강곤마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손짓했다.

"잡담들 말고 어서 저 배를 타도록 하시오."

일순 차비운과 전무의 얼굴에 경계(警戒)의 기색이 스쳐 갔다.

'함께 행동한 우리조차 눈치 못 채게 준비해 놓다니….'

오 장 정도 떨어진 바위 사이에 숨겨 놓은 소선.

그것은 바로 곁에서 본다 해도 발견키 어려울 만큼 교묘히 위장되어 있었다.

묘강곤마가 가볍게 쌍수(雙手)로 원을 그리자, 잡풀들과 나뭇가지들이 날아가 배의 형태를 드러냈다.

너댓 명이 앉아 있으면 빈 자리가 남지 않을 만큼 작은 배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리 가죽이 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뿐.

차비운의 노 젓는 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가랑잎처럼 작은 배가 흔들림 없이 수면 위를 질주하는 광경은

래 이를 지켜보는 인물의 입에서 절로 감탄성이 튀어 나오게 했다.

"멋진 솜씨야! 하지만 무덤 속에 뛰어드는 일에 사용되고 있으니, 아깝군."

어느 새 소걸군이 되돌아와 야릇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