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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42장 생존경쟁 [9]

오늘의 쉼터 2016. 5. 25. 12:06

<441>42생존경쟁 [9]


(880) 42장 생존경쟁 - 17




“나타샤라고 합니다.” 

그때 여자가 말했다.

맑으며 울림이 깊은 목소리, 귓속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

서동수가 홀린 듯이 여자를 보았다.

흰 피부, 계란형의 부드러운 윤곽, 곧은 콧날, 눈동자는 깊은 바다색이다.

크지도 작지도,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입술은 방금 닫혔다.

조금 굳어진 표정, 파마한 금발 머리가 불빛을 받아 더 빛나고 있다.

3초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시선이 합쳐진 채 마주 보고 서 있는 시간은 한참이나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타샤.” 

서동수가 확인하듯 불렀더니 여자가 대답했다. 

“네, 장관님.” 

“러시아인이냐?” 

“하바롭스크에서 왔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소파에 앉으면서 눈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앉아서 네 노래를 해라. 나타샤.” 

나타샤가 다소곳이 앞쪽에 앉더니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매끄러운 피부, 마치 우유색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 같다.

나타샤가 입을 열었다. 

“스물 셋이고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습니다.

한랜드에 온 지 한 달 반 되었는데 유라시아그룹 종업원 모집에 응모했기 때문입니다.” 

“남자 경험은?” 

불쑥 서동수가 물었더니 나타샤의 우윳빛 볼이 복숭아색으로 바뀌었다.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 나타샤.” 

“19세 때 첫 경험을 했습니다. 상대는 동급생 드미트리였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경험 후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싫어졌기 때문이지요.” 

“옳지.”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눈을 크게 떴고 정색한 얼굴이다.

“그놈하고의 섹스는 어땠지?”


“너무 빨랐고 구역질이 났습니다.”

“옳지.”

지금 영어로 대화하고 있는 터라 서동수는 굿(good)으로 응답한 것이다.

서동수의 추임새에 기운을 얻은 나타샤의 목소리에 활기가 띠었다.

“그 후로 안드레이를 만났습니다. 무용과 조교였는데 안드레이하고 섹스는 다섯 번쯤 했습니다.” 

추임새 넣을 흥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나타샤의 말이 이어졌다.

“안드레이는 섹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이젠 섹스가 더럽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쾌감을 느끼는 거냐?” 

“네, 조금요.” 

“왜 조금이야?” 

그때 나타샤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더 느끼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니까요.” 

“으음.” 

저절로 서동수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솔직한 대답 같다.

성에 쾌감을 맛보고 나면 더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본능이다.

더 뜨겁고, 더 강하고, 더 깊고, 더 길게 느껴보려고 한다.

“유익하고 즐거운 대화였다.” 

서동수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자 나타샤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백합의 봉오리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느낌이다.

그 순간 서동수는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다리 사이에 뜨거운 기운이 올랐다. 

“긴장을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타샤가 머리를 숙여 인사했을 때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손님들이다.




(881) 42장 생존경쟁 - 18



유병선이 데려온 손님은 셋, 놀랍게도 성서(聖徐)로 명성을 떨치다가 추락했던 진기섭과 오성호,

그리고 민록당 의원 임창훈이다. 

“어서 오세요.” 

서동수와 나타샤가 그들을 맞았다.

물론 나타샤는 일어나기만 했을 뿐이다.

응접실은 소파가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어서 다섯이 파트너하고 둘러앉아도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우선 다섯이 서동수의 파트너 하나만 앉히고 둘러앉았다.

진기섭과 오성호는 조금 전 클럽 정문에서 임창훈을 만났기 때문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초청한 유병선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창훈도 마찬가지였지만 둘보다는 차분한 편이었다.

인사를 마쳤을 때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비밀리에 초청하다 보니 서로 놀라셨겠는데, 어차피 나중에는 다 알려지겠지요.”

테이블에는 음료수가 가득 놓여 있어서 손만 뻗치면 되었다.

나타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더니 각자의 앞에 유리잔을 놓았다.

시키지 않았어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고 아름다운 자태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서동수가 오성호와 진기섭, 임창훈을 차례로 보았다. 

“그럼 본론을 말씀드리지요. 나는 세 분이 주역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의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새로운 당(黨)을 만듭시다. 한국당을 깨고 대한연방에 맞춘 새 당을 만들자는 말씀입니다.”

모두 숨을 죽였고 서동수의 말에 열기가 실렸다. 

“그 이유는 내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여러분 셋이 추진위원을 맡아 주셨으면 해서 이곳으로 모신 겁니다.” 

그러고는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세부 사항은 유 실장, 안종관 부장, 그리고 세 분에게 맡기겠습니다.

나는 오직 당명(黨名) 하나만 정해놓았는데….”


숨을 들이켰다가 뱉고 난 서동수가 눈을 크게 뜨고 넷을 둘러보았다.

“어떻습니까? 공생당(共生黨), 함께 공(共)에 살 생(生)자, 함께 살자는 당입니다. 그리고…”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공산당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공산당에 미련을 가진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

뼈가 있는 농담이다. 유병선이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셋에게 창당 이야기는 금시초문일 것이었다.

전혀 언질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동수가 직접 말을 꺼내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서동수는 셋에게 맡긴다고 일방적으로만 말하고는 의사를 묻지 않았다.

마치 셋이 당연히 동참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때 유병선의 조바심을 눈치챈 듯이 서동수가 셋을 둘러보았다.

어느덧 정색한 표정이다.

“당연히 새 당(黨)에서는 성서(聖徐)니 진서(眞徐) 따위의 파벌은 생기지 않겠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먼저 대답한 사람은 오성호다. 그때 의외로 임창훈이 이어서 말했다.

“예, 참여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새 당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진기섭의 목소리에는 열기가 올라 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당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여러분은 저보다 뛰어난 인재들이시죠. 난 큰 윤곽만 그릴 테니 안은 여러분이 채워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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