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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42장 생존경쟁 [7]

오늘의 쉼터 2016. 5. 18. 22:04


<439>42생존경쟁 [7]


(876) 42장 생존경쟁 - 13



“참 서운하네.” 

쓴웃음을 지은 진기섭이 오성호에게 말했다.  

여의도 의사당의 진기섭 의원실 안, 둘 뿐이었지만 진기섭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잇는다.

“물론 대국민 선전용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말요, 꼭 그런 식으로 우리를 매도해야 하나?”

“쇼라니깐 그러네.” 

오성호가 머리를 저었다.  

“서 장관의 쇼맨십은 정치인 이상이오. 그걸 모르고 계셨소?”

“그건 알고는 있었지만.” 

말을 꺼낸 터라 진기섭이 작심한 듯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토사구팽 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요.”

“뭐, 그러라고 하십시다.” 

소파에 등을 붙인 오성호가 이제는 정색하고 진기섭을 보았다.

“우리가 언제 자리 바라보고 일했습니까? 당장 당직부터 사임합시다.”

“그럽시다.” 

오성호의 시선을 받은 진기섭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백의종군하겠다고 합시다.” 

호흡을 맞춘 둘의 얼굴에 비장감이 떠올랐다.

진기섭과 오성호는 성서(聖徐)의 핵심이다.

특(特)성서로 유병선, 안종관이 분류되었지만 오성호, 진기섭은 현역 정치인으로

대선을 치러본 경험까지 갖춘 정예다.

주위를 둘러본 진기섭이 목소리를 낮췄다. 

“정치가 때로는 오물 속에도 뛰어들어가야 하고 원수하고도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만한데도 어쩌겠다는 수작인지 알 수가 없구먼.” 

“우리가 사임하면 진서(眞徐), 친서(親徐) 무리도 다 그만둘 거요.”

“선거 치르기 힘들 걸.” 

“특성서만으로는 웃음거리가 되지.” 

오성호가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물었다. 

“내가 원하는 보스가 어떤 스타일인지 아시오?” 

진기섭의 시선을 받은 오성호가 말을 이었다. 

“비서실장을 시켜서 성명을 발표하는 건 좋아. 이해는 해. 그렇지만 우리는 철저히 매도당했어.

명예를 잃었단 말이지. 우리가 이뤄놓은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은커녕 배신을 당한 셈이니까.”

오성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원하는 보스는 …….” 

숨을 들이켜 오성호가 진기섭을 보았다. 

“내가 아까 쇼라고 그랬지요?” 

“그랬지.” 

“국민한테도 쇼를 했다면 당사자들한테도 립 서비스를 해야지.”

“어휴, 그렇게까지.” 

쓴웃음을 지은 진기섭이 머리를 저었다. 

“서장관이 그런 내공까지, 그건 입신(入神)의 경지이지.” 

그때 탁자 위에 놓인 진기섭의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둘의 시선이 모였다.

진기섭이 핸드폰을 들고 머리를 기울였다.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이다.

이맛살을 찌푸린 진기섭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오성호의 시선을 받은 진기섭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아, 진기섭 의원이시죠?”

사내의 목소리에 진기섭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다.

“예, 그런데……”

“나 서동수올시다.”

숨을 들이켠 진기섭의 귀에 서동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립 서비스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어떻게든 고생하신 분들의 명예는 보상해드릴 테니까요. 내가 먼저 똥통에 들어갈 겁니다.” 

서동수는 똥통이라고 한다.






(877) 42장 생존경쟁 - 14



“이제 5개월 20일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내는 민족당 원내총무 윤준호, 52세, 3선 의원으로 당 대표 고정규의 심복이다.

서울 출신, 평소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언행으로 존재감이 약했지만 치밀함과 끈기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지역구 관리가 뛰어나 지난번 총선 때 여당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눌러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경제학 박사로 교수 출신, 약점이 있다면 타협을 싫어한다는 것.

이념적으로 좌측에 기울어진 성향이어서 우익으로부터 시대에 뒤처진 편협된 인간으로 매도당하지만

그와 비례해서 좌익의 지지가 열렬하다.

윤준호의 시선이 앞쪽에 앉은 고정규와 문기태를 번갈아 보았다.

오후 9시 반,

이곳은 서교동 성산호텔의 방 안이다.

민족당 대표 고정규는 5개월 20일 후에 한국 연방대통령 후보 선거에 나설 예정이다.

그리고 고정규의 왼쪽에 앉은 문기태는 북한에서 온 민생당의 원내부총무다.

북한은 1년 전 연방대통령 후보 선거와 연방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서 공산당을 민생당으로 개조했는데 한국 측 민족당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의 민족당과 북한 민생당은 이제 일사불란한 협동체제를 갖췄는데 한국 측에서는 북한 민생당을

 ‘자매당’이라고까지 부른다.

민생당이 ‘주체사상’이나 ‘공산주의’ 이념을 당헌, 당규에 넣지 않았지만 몸뚱이는 그대로인데

옷만 갈아입힌다고 다른 사람이 될 것인가? 민생당은 간판만 바꾼 공산당이다.

그리고 그 수뇌가 김동일인 것이다. 그때 고정규가 말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은데.”

고정규가 문기태를 보았다.  

“엊그제 서동수 씨 측의 성명 발표를 들으셨지요?” 

“예, 들었습니다.”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문기태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것으로 서동수 장관 인기가 또 올라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더군요.”

“요즘은 여론조사 결과를 거꾸로 믿습니다.” 

고정규가 정색했다. 

“여론은 그야말로 양철 냄비에서 끓는 물이오. 금방 끓었다가 금방 식어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오? 금방 잊어먹는다는 말이오.” 

“맞습니다.” 

윤준호가 거들었다. 

“그것이 한국 국민성이죠. 투표에서 국민성이 드러나는 겁니다.

입으로는 제각기 대의니 정의를 찾으면서 떠들던 유권자들이 결국 누구를 찍는지 압니까?

자기하고 이해가 맞는 인간을 찍어요.

설령 그 인간이 별짓을 다 한 전과자, 파렴치범, 성도착증 환자라고 해도 말입니다.”

맨 마지막의 성도착증 환자는 서동수를 말하는 것이다. 문기태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유학 동지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남조선의 여론은 너무 쉽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국민성입니다. 절대로 안 고쳐져요.”


정색한 윤준호가 말했을 때 문기태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본론을 꺼낼 모양이었다.

오늘 모임은 문기태가 경제협력회의차 서울을 방문한 길에 고정규를 만나는 것이다.

이유학은 북한의 선전선동부장을 겸하면서 민생당의 원내총무, 총재 보좌역까지 겸하고 있는

김동일의 최측근이다. 그때 문기태가 입을 열었다.

“일본에서 밀사가 왔습니다.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겁니다.”

문기태가 가는 눈을 치켜뜨고 둘을 번갈아 보았다.  

“물론 우리 총재 동지께서는 모릅니다.” 

김동일 모르게 일본 밀사를 만났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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