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41장 대물 [11]
(862) 41장 대물 - 21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다.
진동으로 해놓았기 때문에 다시 점퍼 주머니에 넣었더니 떨다가 곧 그쳤다.
마치 주머니에서 벌레가 죽은 느낌이 든다.
사채업자다.
그놈들은 전화가 몇 대인지 계속 다른 번호로 전화를 해댄다.
오후 6시 반,
집 나온 지 이틀째. 같이 경찰서에 갔다가 나왔으니 놈들도 악에 받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옷가지만 몇 개 싸들고 나와 이렇게 헤매고 있다.
전에는 전윤희 집에서 자거나 돈을 빌렸지만 지금은 그쪽도 원수가 된 상태.
커피잔을 쥔 이미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화문 근처의 커피숍 안이다.
문득 쓴웃음이 터졌으므로 이미연은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러면서도 잘도 연극 감독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극 할 때는 집중했다.
몰두했다는 표현이 맞다.
잠깐 쉴 때마다 압박감이 밀려왔고 그것을 잊으려고 또 몰두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으면 느슨해져서 일도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잠깐 진동했다.
문자가 왔다는 표시. 사채업자가 보냈겠지. 요즘은 문자 협박이 그대로 증거물이 되니까
점잖게 독촉하는데 그것이 더 소름 끼친다.
전화야 받으면 목소리가 쏟아지지만 문자는 읽고 지우면 된다.
그래서 이미연은 핸드폰을 꺼냈다.
과연 문자, 모르는 번호. 심호흡을 한 이미연이 버튼을 누르자 곧 문자가 떴다.
‘전화를 받지 않으시는군요. 한랜드 장관 비서실 최영배 보좌관입니다.
한랜드 정부에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극단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관심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이미연은 읽고 또 읽었다.
이것이 전윤희에게 가는 문자가 잘못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가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유라시아그룹과 가계약할 때 전윤희 전화번호만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한랜드 정부다. 유라시아그룹이 아니다.
그럼 왜? 나 같은 소극단 감독, 더구나 잘린 감독에게 이런 난데없는 연락이 온단 말인가?
연극 대상? 그건 큰 극단 감독들도 수십 명이 수십 년간 받았다.
내가 예뻐서? 아, 그만두자.
혹시 내가 SNS에서 떴을까? 엊그제 사채업자하고 경찰서 간 것이 찍혔을까?
아니, 그렇다면 한랜드 정부에서 이럴 리가 없지.
혹시 이것도 보이스 피싱? 이윽고 이미연이 발신자 번호를 손끝으로 누르고는 호흡을 골랐다.
그 순간 사채업자가 이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났지만 설마 그렇게까지야.
그때 신호음이 두 번 울리더니 연결이 됐다.
“여보세요.”
“예, 저…….”
“이미연 감독이시죠?”
부드러운 사내의 목소리. 감독이라는 호칭에 갑자기 이미연의 코끝이 찡해졌다.
“네, 저기 무슨 일로…….”
“문자로 간략하게 말씀드렸지만 한랜드 정부에서 극단을 지원하려고 하는데요.”
“근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이건 피해망상적인 반응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더 궁금하다.
“예, 극단협회에서 이미연 씨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아아.”
“소극단 감독으로 두 번이나 대상을 받으셨더군요.
그런데 ‘사람’ 극단하고는 문제가 있어서 얼마 전에 사임하셨고.”
그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물을 의욕은 나지 않는다. 그때 사내가 말했다.
“내일 오전 10시에 광화문의 서울시청 별관 201호실로 오실 수 있으세요?
일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863) 41장 대물 - 22
서울시청 별관 201호실은 한랜드 정부가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다.
오전 10시,
한랜드 마크가 붙여진 201호실로 다가간 이미연에게 문 앞에 선 경비원이 물었다.
“누구 찾아오셨죠?”
“예, 한랜드 비서실의 최영배 보좌관님요. 저, 오늘 약속이….”
별관 입구로 들어섰을 때부터 기가 죽어 있던 이미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원이 비켜섰다.
“아, 연락받았습니다. 들어가시죠.”
안으로 들어선 이미연이 벽 쪽에 앉아있는 안내원을 보았다.
“저기, 최영배 보좌관님을, 전 이미연이라고 하는데요.”
다가간 이미연이 말했더니 오드리 헵번을 닮은 안내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옆방까지 안내했다.
방문에 가볍게 노크를 한 안내원이 문을 조금 열고 비켜섰다.
“들어가시죠.”
숨을 들이켠 이미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창가에 서 있던 사내가 이미연에게 다가왔다.
40대쯤의 단정한 인상이다.
“이미연 씨, 제가 최영배올시다.”
“안녕하세요.”
이미연은 제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듣고는 폐에 숨을 집어넣었다.
최영배가 옆쪽 소파를 손으로 가리켰다.
“앉아 계시죠. 제가 실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실장이라니? 비서실장이란 말인가?
시킨 대로 소파 구석 쪽에 엉거주춤 앉는 사이에 최영배가 방을 나갔다.
비서실장이라면 이미연도 안다.
유병선. 한랜드 장관 서동수의 최측근으로 TV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비서실장까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이미연이 스커트를 당겨 무릎을 가리려고 했지만
짧아서 안 되었다.
어젯밤 안미나한테서 빌려온 정장이다.
그때 옆문이 열리더니 최영배와 유병선이 들어섰으므로 이미연이 일어섰다.
그러고는 숨을 들이켰다.
뒤에 한랜드 장관 서동수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연이 엉겁결에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눈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거기 앉아요.”
이 말은 유병선이 했다.
서동수는 잠자코 맨 위쪽 상석에 앉는다.
그래서 이미연은 유병선과 최영배를 마주 보는 위치가 되었고, 서동수는 왼쪽에 앉았다.
방 안에 잠깐 정적이 흘렀는데 그동안 이미연은 숨도 안 쉬었다.
그때 유병선이 정적을 깨뜨렸다.
“이번에 극단에서 해임되었지요?”
“네.”
머릿속이 하얗게 된 상태에서도 대답을 했다.
유병선이 바로 다시 물었다.
“채무가 많고, 사채도 빌려 써서 며칠 전에는 경찰서에도 갔다 오셨더구먼.”
이제 이미연은 입을 다물었다.
경찰서에서는 사채업자 조 과장에게 욕을 해대면서 기승을 부렸던 이미연이다.
시선을 내린 채 어금니만 물었다.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고 문득 벌떡 일어나 나가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때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추궁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연 씨의 능력을 인정하고 한랜드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도우려는 것이니까요.”
유병선이 똑바로 이미연을 보았다.
“그러려면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이미연의 어깨가 늘어졌다.
“네.”
그때 왼쪽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자, 그럼 됐고. 둘은 잠깐 자리를 비워주지.”
장관 서동수가 유병선과 최영배를 나가 있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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