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42장 생존경쟁 [2]
(866) 42장 생존경쟁 - 3
계약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며칠 전 유라시아그룹과 가계약을 맺었을 때 이미연은 참관인이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주체다.
아직 극단이 구성되지도 않았는데 극단 대표로 인정받고 계약을 했다.
극단 등록도 안 했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극단 이름을 유병선의 제의에 따라 ‘이미연 극단’으로 했다.
이미연 극단 대표로 사인을 할 때 마침내 이미연은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극단 단원은 25명, 한랜드에서 모두에게 아파트를 제공하고 배분한다. 한랜드 정부는 유라시아그룹과 달리 각자에게 이주 비용까지 지급한다’는 것이다.
보좌관 최영배와 계약을 마쳤을 때는 오전 11시 반,
머리를 든 최영배가 표정 없는 얼굴로 이미연을 보았다.
“실장님을 모셔오지요.”
그러고는 일어서더니 곧 유병선과 함께 들어섰다.
계약서 작성은 최영배와 둘이 했던 것이다.
유병선이 자리에 앉더니 이미연에게 말했다.
“계약서는 됐고, 이미연 씨 사채 문제인데 2억3000만 원 정도지요?”
“네?”
되물었지만 이미연의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그렇다.
만난 남자 넷한테서 빌린 돈까지 합쳐서 2억2700만 원이다.
그것까지 어떻게 알았는가? 하나씩 만나서 물어본 것 같다.
유병선이 시선을 준 채 말을 이었다.
이미연의 생각을 읽은 것 같다.
“그래요, 우리 정부는 치밀합니다. 조사를 했습니다. 다만 이 자금은 장관님 사재에서 나갑니다.”
이미연이 숨을 죽였고 유병선의 말이 이어졌다.
“본래 이미연 씨 채용도 특혜성이 있는 터라 장관께선 채무 관계는 부담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장관님의 성품이지요.”
그러고는 이미연의 앞에 봉투 하나를 놓았다.
“3억 원입니다.
장관께서 이미연 씨에게 한랜드로 떠나기 전에 가족도 만나고 가는 것이 낫겠다고 하시더군요.”
“…….”
“한 달 기한이 있으니까 그동안 극단을 꾸리고 이곳저곳 정리할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참, 사채업체 채무는 우리가 정리해 드릴까요?”
문득 유병선이 물었으므로 목이 멘 이미연이 머리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 보좌관한테 맡기세요. 금방 처리해 드릴 테니까요.”
이미연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어깨를 몇 번 부풀리기만 했다.
입을 연다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도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때 유병선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장관님이 곧 들어오실 테니까 인사나 하고 가세요.”
그러고는 둘이 나갔으므로 이미연은 혼자 남았다.
이제 장관이 온다는 것이다.
정신이 없었지만 순서대로 시간 낭비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때 서동수가 들어섰다.
“다 끝났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이미연에게 서동수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서동수가 이미연과 세 발쯤 거리를 두고 섰다.
이제 둘은 마주 보고 서 있다.
“감사합니다.”
이미연이 기를 쓰고 그렇게 인사를 했을 때 서동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 이야기를 듣고 네 나이 때의 내가 생각났어. 너처럼 그러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러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잘해, 내가 지켜볼 테니까.”
(867) 42장 생존경쟁 - 4
인사동의 한정식 식당 안, 안쪽 장판이 깔린 밀실에서 서동수가 점심을 먹는 중이다.
방 안에는 다섯이 둘러앉았는데 서동수와 안종관, 국정원장 신기영과 1차장 박병우,
한국당 정책위원장 진기섭이다.
오늘은 국정원의 보고를 듣는 비공식 회합이다.
서동수가 한국당 당원이며 한국당의 연방대통령 후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대통령 조수만의 승인을 받고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이다. 격식을 거북해하는 서동수가 오늘은 인사동의 허름한 한식당으로 장소를 정했으므로 방 다섯 개짜리 한정식당의 손님은 그들뿐이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신기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국의 후보 선거가 8개월, 연방대통령 선거가 1년 남았습니다.
대세는 장관님 쪽으로 기우는 중이지만 변수를 무시할 수 없지요.”
신기영의 시선이 옆에 앉은 박병우에게로 옮아갔다.
52세인 박병우는 해외정보 분야에서만 20년을 근무한 전문가다.
박병우가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아직 출처는 파악 못 했지만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장관님 암살팀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병우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지만 방 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주체가 중국인지, 일본인지, 또는 미국인지 불분명합니다.
파리에서 소문이 번져 브뤼셀, 취리히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박병우가 목소리를 더 낮췄다.
“원체 큰일이라 용병을 구하는 단계에서 정보가 샜다고 봐도 되겠지요.
각국이 직접 손을 댔다가 발각되면 엄청난 후유증을 겪을 테니까요.”
그때 신기영이 나섰다.
“역정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용의 선상에 오른 국가는 중국, 일본, 미국…….”
숨을 돌린 신기영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러시아에다 한국과 북한까지, 모두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라고 했습니까?”
안종관이 묻자 신기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한국의 반대세력은 아마 가장 강한 증오심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방 안에 잠깐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서동수의 성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터라 생존의 위협을 그만큼 더 느끼는 부류다.
“그렇지요.”
얼굴을 일그러뜨린 안종관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이 용병을 고용하는 단계에서 정보가 샜을 가능성이 많겠군요.”
“얼마나 될까? 내 머리값이 말입니다.”
불쑥 서동수가 물었으므로 넷은 제각기 딴전을 피웠다.
누군가 숨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그때 신기영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제가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고 장관님 주변 경호를 강화하겠습니다. 책임자는 여기 박 차장입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박병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소문이 실행된다면 디데이는 한국의 선거 전후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군.”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야 혼란이 더 커지겠지. 지금은 시기가 적당하지 않아. 혼란을 수습할 여유가 있거든.”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한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건 생존이 걸린 문제야. 이것도 예상하고 있어야 해요.”
그렇다. 국가의 생존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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