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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41장 대물 [9]

오늘의 쉼터 2016. 4. 26. 17:21

<430>41장 대물 [9]


(858) 41장 대물 - 17



경찰서 현관을 나와 계단을 내려갈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가방에 든 휴대전화를 꺼내본 이미연이 잠자코 귀에 붙였다.

안미나인 것이다. 

“언니, 단원 17명 중 12명이 서명했어요. 남은 다섯은 그냥 놔뒀어요.”

안미나의 목소리는 밝다.

남은 다섯은 신임 감독이 된 윤상희와 조연급 둘, 엑스트라 단원 둘이다.

극단 ‘사람’은 해체된 것이나 같다.

다리에 힘이 빠졌으므로 이미연은 민원상담실 앞쪽의 벤치에 앉았다.

오후 2시 반,

함께 경찰차를 타고 왔던 대부업체 조 과장과 부하는 변호사와 같이 10분쯤 전에 먼저 나갔다.

이미연이 그들을 가택 무단침입 혐의로 112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안미나의 말이 이어졌다. 

“조금 전에 이민기가 연기자 대표로 진정서를 갖고 유라시아그룹 기획실장을 만나러 갔어요.”

“…….” 

“진정서 갖고 간다니까 놀라는 눈치더래요. 고 실장인가를 직접 만나러 갔어요.”

“혼자 갔어?” 

“최정윤, 조수환하고요. 난 애들하고 카페에 남아 있어요.” 

그때 이미연이 긴 숨을 뱉었다.

극단 ‘사람’의 한랜드 진출은 끝난 것이나 같다.

17명에서 12명이라니. 이민기, 안미나, 최정윤, 조수환이라면 모두 주연급이다.

안미나가 말했다.

“언니, 이 기회에 우리 극단 하나 다시 만들어요.

솔직히 전윤희 씨 돈도 없으면서 독단적으로 극단 운영하는 꼴을 더 이상 못보겠어요.

이것이 이번 기회에 터진 것이라고요.”

“…….” 

“운좋게 호박이 굴러떨어지니까 다 제 공인 줄 알고 언니 자르고 혼자 생색내는 것 좀 봐요.

전윤희 씨가 유라시아그룹 쪽에다 선금으로 10억 요구한 것 아세요?”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이미연은 숨만 들이켰고 안미나가 말을 이었다.

“이민기가 전윤희 씨한테 전화했을 때 먼저 가불이 어쩌고 이야기를 꺼내더니

유라시아그룹에서 자금이 좀 나올 것 같다고 했다네요.

그래서 제가 그쪽에다 확인을 해봤죠. 그랬더니 떠나기 전에 10억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네요.”

“…….”

“이제 끝난 거죠. 그런데 그 돈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안 했군요, 나쁜 년.”

“얘, 그만.” 

마침내 이미연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걘 돈 끌어오는 재주는 특별하잖니? 난 돈 빌려쓰다가 망한 경우에 들고.”

이번에는 안미나가 입을 다물었고 이미연이 말을 이었다. 

“난 지금 경찰서 마당 벤치에 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어.

사채업자가 어제 내 집에 쳐들어와서 같이 잤단다, 글쎄.” 

“…….” 

“물론 그런 거 한 건 아니고.” 

“…….” 

“내가 오늘 오전에 112 신고를 해서 같이 경찰서로 온 거야.

지금 다 끝났지만 그놈들은 오늘 저녁에 또 온다는구나. 이젠 집 앞에서 돈 받기를 기다리겠대.” 

“…….” 

“사채업자 돈 빌려서 뭐 했냐고? 술 마시고 옷 사고 가방 샀어.

참, 비즈니스석 타고 방콕도 갔다 왔구나.” 

“언니, 그만해요.” 

“나하고 같이 잔 놈들한테서도 돈 빌려 썼어. 한 3천쯤 될 거야.”

그때 통화가 끊겼으므로 이미연이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모두 네 놈이다.

네 명과 자고 나서 돈을 빌렸다.

매음한 것이다. 




(859) 41장 대물 - 18



응접실로 들어선 서동수가 하선옥을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오후 8시 반,

이곳은 한시티 교외의 별장, 하선옥의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아름답군.” 

눈을 가늘게 뜬 서동수가 다가와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참을 수가 없어서 말하는 거야. 속으로만 삭이는 건 위선이고 죄악이야.”

“아이구, 장관님.” 

마침내 하선옥의 볼과 눈 주위가 붉어졌다. 하선옥이 저절로 몸을 비틀었다.

“부끄럽잖아요.” 

“이것 봐. 이것을 교태라고 하지. 얼마나 황홀한 자태인가?”

“제발 그만요.” 

하선옥이 눈을 흘겼으므로 서동수가 소파에 앉았다.

앞쪽에 앉은 하선옥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술 드셨어요?” 

“보드카를 반 병쯤, 손님들하고.” 

서동수의 시선이 탁자 위로 옮겨지더니 얼굴을 펴고 웃었다.

“하 박사도 한잔하고 싶은 모양이군.” 

탁자 위에 술과 안주가 차려져 있었던 것이다.

술은 보드카다.

“아뇨, 혹시 드시고 싶어하지 않을까 해서.” 

“좋은 일 있나?” 

하선옥은 한국에서 온 것이다.

서동수의 비공식 홍보책임자 겸 보좌 역인 하선옥은 밀사 역할도 한다.

시선을 받은 하선옥이 이제는 정색하고 말했다.  

“북한의 민생당 기세가 꺾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최고 존엄인 김동일 위원장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오히려 김동일은 한국의 민족당 핵심 의원에게 서동수를 도와주라고 부탁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북한의 고위층들이 모를 리가 없다.

서동수는 하선옥에게 임창훈을 만난 이야기도 해주었던 것이다.  

“국민들은 남북한 연방이 되고 통일이 된 후에 한랜드로 이어지는 대한연방 계획에 환호했지만

금방 식었습니다.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게 되면 잊게 되고 나중에는 싫증을 내게 되지요.

그래서 포퓰리즘이 성행하게 됩니다.”  

서동수가 잠자코 듣다가 다시 웃었다.  

“하 실장의 말도 너무 길어. 요즘은 좋은 말도 길면 싫어하더군.”

“그래서 요약된 말이 필요하지만 듣기 좋으라고 짧게 꾸민 말로 사기를 칠 수는 없습니다.”

“옳지.” 

하선옥이 긴장하고 말했지만 서동수가 크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잘 지적했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 정치인이 인지도가 높다면서 선택이 되더군.

그것도 같은 맥락이야.” 

“비전을 끊임없이 제시해야 됩니다.” 

하선옥이 앞에 놓인 수첩을 집어들고 말을 이었다.  

“국민들이 지치지 않도록, 식상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내놓는 것도 정치인의 의무지요.”


“과연.”

“한랜드는 대한연방을 세계로 뻗게 해줄 반석입니다.

그 한랜드가 바로 장관님인 것입니다. 선전이 필요합니다.”

서동수는 잠자코 하선옥을 보았다.

그리고 매번 그러지만 자신을 돌이켜본다.

내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가? 나보다 나은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동수가 긴 숨을 뱉고 말했다.

“다시 신바람을 일으켜야 해. 그래야 시너지를 받은 한국인의 저력이 일어나.”

그 신바람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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