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422>41장 대물 [1]

오늘의 쉼터 2016. 4. 25. 16:14

<422>41장 대물 [1]


(842) 41장 대물-1



김광도는 푸틴의 연설을 서울에서 들었다.

기획실장 고영일과 함께 서울로 일 보러 왔다가 방송을 본 것이다. 

“그렇지, 바로 저것이야.” 

붉은색이 칠해진 지도를 홀린 듯이 보면서 유정수가 말했다.

유정수는 김광도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학원 수학 강사다.

공부를 잘해서 일류대학 경제과를 수석 졸업했지만 지금은 수학 강사가 됐다.

졸업하고 2년 동안 직장을 세 곳이나 옮겨 다녔는데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다.

TV 채널이 바뀌었을 때 돼지갈비 식당이 떠들썩해졌다.

모두 TV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포의 식당 안이다.

“네가 서동수 장관의 분신이라며?” 

술잔을 쥔 유정수가 붉어진 얼굴로 김광도를 보았다. 

“그런데 이런 데 와서 술 마셔도 되냐?” 

“너, 이런 데서 술 마시는 게 불편해?” 

김광도가 되물었더니 유정수가 풀썩 웃었다.  

“인마, 네가 불렀을 때 룸살롱이나 가는 줄 알고 왔잖아?” 

“거기 갈래?” 

“놔둬.” 

오후 9시도 안 되었으므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유정수가 소주잔을 들고 한 번에 삼켰다.

유정수는 부담 없는 친구 중 하나다.

친구 중에서 잘되면 연락을 해오고 안되었을 때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일희일비한다면 세상 어렵게 사는 중생 중의 하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안되었을 때 잠적했다가 잘되었을 때 나타나는 습성까지 갖춘다면

각박한 세상 견딜 준비가 된 것이나 같다.

어쨌든 김광도는 유정수를 6년 만에 만났다.

유정수가 제 잔에 소주를 따르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같이 푸틴 성명 발표 듣자고 부른 건 아닐 것이고.”

“그것도 생각하고 왔다.” 

“네가 잘나간다는 소문은 다 났으니까 잘난 체하지도 마.” 

“안 해, 이 자식아.” 

“난 수학 선생이야. 한랜드에 가서 러시아 놈들한테 수학 가르칠 수는 없겠지.”

“거긴 한국인이 60퍼센트야.” 

그때 어깨를 부풀렸던 유정수가 길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솔직히 네가 만나자고 했을 때 이 자식이 웬일인가 했지. 난 내놓을 게 없거든.”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 

정색한 김광도가 유정수를 보았다. 

“너, 한랜드로 와라. 네가 일할 곳이 있어서 그런다.” 

유정수가 눈만 껌벅였고 김광도의 말이 이어졌다.  

“너 같은 인재가 이곳에서 썩으면 안 돼. 나하고 같이 한랜드에서 일하자.”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낸 김광도가 유정수 앞에 놓았다.  

“네가 할 일이 많아.” 

명함을 집어 든 유정수의 얼굴이 이제는 하얗게 굳어졌다.

이윽고 유정수가 김광도를 보았다.

“너, 나 이혼한 거 알아?”


“모르는데?”

김광도가 머리까지 저었지만, 안다.

우연히 들은 것이다.

역시 일류대학 출신인 아내하고 결혼 1년 만에 별거를 했고,

작년에 이혼을 했다. 유정수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광도를 보았다.

“내가 비전이 없는 남자라는 거다. 그것이 이혼 사유야.”

“한랜드에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다시 술잔을 든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수학 강사가 사업가가 되고 장사꾼이 대통령으로 변신하는 곳이야, 인마.”

얼떨결에 김광도는 멘토를 끄집어냈다.





(843) 41장 대물-2



2차를 갔다.

홍대 근처 클럽이었는데 홀에는 젊은 남녀로 가득 찼고 무대에서는 밴드에 맞춰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유정수가 룸으로 앞장서 들어가면서 김광도에게 말했다.

“야,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넌 팁만 내라고, 알았냐?” 

“좋지.” 

“기념이다.” 

자리에 앉은 유정수가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내가 한랜드행을 결심한 기념이야.” 

그때 종업원이 들어서자 유정수는 호기 있게 술과 안주를 시켰다.

주문한 위스키가 한 병에 30만 원이라는 말을 듣더니 잠깐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바꾸지 않았다.

방에 둘이 됐을 때 유정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이게 내 수준이다. 내 최고 수준의 술집이지.” 

“괜찮군, 한랜드에서도 이 정도면 최고 수준이야.” 

김광도가 말했다.

거짓말이다.

이 정도면 싸구려 노동자급이다.

그때 유정수가 지그시 김광도를 보았다.

돼지갈비 안주로 소주 세 병을 마시고 온 터라 술기운이 올랐고 고기 냄새가 풀풀 났다.

“여기에 딱 한 번 왔어. 석 달 전에 우리 원장이 한잔 산다고 해서 말이야.”

김광도가 머리만 끄덕였다.

유정수는 짠돌이로 소문이 났다.

예전부터 제 돈 내고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는 놈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전에 김광도와 어울릴 때 단 한 번도 술값이나 밥값을 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은행 간부여서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종업원이 술과 안주를 가져오더니 김광도에게 물었다. 

“합석할 아가씨들 모셔올까요?” 

“뭐 마시는데?” 

유정수가 불쑥 물었으므로 종업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예, 맥주 마십니다.” 

그때 김광도가 물었다. 

“양주 마시는 아가씨도 있어?” 

“있지요.” 

종업원이 김광도에게로 몸을 돌렸다. 웃음 띤 얼굴이다. 

“수준 높은 아가씨들이 많습니다.” 

합석이 된다면 아가씨들 술값은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이동되는 것이다.

김광도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비싼 술 마시는 아가씨일수록 수준이 높겠군. 그렇지?” 

“자신이 있는 아가씨들이니까요.” 

머리를 끄덕인 김광도가 지갑을 꺼내 5만 원권 한 장을 종업원에게 내밀었다.

“어디 보자고.” 

“감사합니다.” 

허리를 꺾어 절을 한 종업원이 방을 나갔을 때 김광도가 말했다.

“오늘은 너를 한랜드로 끌어들인 기념으로 내가 사는 것으로 하지.”

“네가 내 고용인이 되는 것이군.” 

술병 마개를 따면서 유정수가 혼잣말을 했다.

그러더니 머리를 들었다.

“따르겠어. 네가 한랜드로 같이 가자고 한 순간에 갑자기 목이 메이더라.

난 네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거든.”


유정수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고맙다, 나 같은 놈을 생각해 줘서.”

“천만에. 내가 필요해서 그런 거야.”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믿을 만한 인간이 필요했다.

유정수도 겪어 봐야겠지만 예상외로 발군의 능력을 보이는 인물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잔에 술을 따르면서 유정수가 말했다. 

“넌 동창들 사이에 대물이라고 소문났어. 그건 물건이 크다는 말이 아니야.”

그때 문이 열리고 종업원이 들어섰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24>41장 대물 [3]  (0) 2016.04.25
<423>41장 대물 [2]  (0) 2016.04.25
<421>40장 버리면 얻는다 [10]  (0) 2016.04.25
<420>40장 버리면 얻는다 [9]  (0) 2016.04.25
<419>40장 버리면 얻는다 [8]  (0) 201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