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40장 버리면 얻는다 [9]
(838) 40장 버리면 얻는다-17
크렘린궁 안의 접견실. 붉은색 양탄자가 깔렸고 벽에도 붉은색 휘장, 가죽 소파의 가죽도 붉은색이다.
반질거리는 마호가니 탁자 위에 황금색 낫과 망치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주먹만 한 크기였는데 그것이 황금인지, 하선옥은 아까부터 궁금했다.
오후 3시 반이 되었다.
이곳으로 안내되어 10분 가깝게 혼자 기다리는 중이다.
크렘린에 도착했을 때는 2시 반이었으니 한 시간쯤 걸렸다.
의전실과 비서실, 대기실까지 세 곳을 거쳤고 신체 검색을 두 번이나 받았다. 한
랜드 장관 서동수의 밀사 형식이어서 그런지 크렘린 후문에서 기다리던 비서관이
은밀하게 안내를 했다.
“기다리셨군요.”
갑자기 뒤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하선옥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
뒤쪽 붉은 휘장이 갈라진 것처럼 열렸고 푸틴이 들어서 있다.
푸틴이 웃음 띤 얼굴로 하선옥을 보았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각하.”
하선옥이 정신을 가다듬고 따라 웃었다.
푸틴은 총리 메드베데프를 대동했는데 뒤에 사내 하나가 따라왔다.
이쪽은 하나인데 러시아 측은 대통령, 총리에다 사내까지 셋인 셈이다.
푸틴이 상석에 앉고, 좌우에는 하선옥과 메드베데프, 사내가 마주 보는 위치에 앉았다.
“총리는 아시겠고, 그 옆은 비서실장 네프스키요. 서 장관의 밀사 이야기를 함께 들으려고 불렀어요.”
푸틴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지만 하선옥은 바짝 긴장했다.
함께 듣도록 한다는 것은 비밀을 공유하겠다는 것보다 부담을 혼자만 지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말도 되었다. 푸틴이 말을 이었다.
“요즘 대한연방 문제로 동북아가 떠들썩하더구먼.
중국과 일본이 부글부글 끓고, 미국은 부채질을 하고…….”
눈을 가늘게 뜬 푸틴이 하선옥을 보았다.
어느덧 얼굴의 웃음기가 지워져 있다.
“이건 내 집 마당에서 불청객들이 떠드는 꼴이란 말이야. 어디, 전세 입주자 대리인의 말을 들읍시다.”
하선옥이 똑바로 푸틴을 보았다.
“장관은 대한연방이 러시아의 동맹국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대한연방은 이미 미국의 동맹국이고 중국과도 그런 약속을 했을 텐데.”
푸틴이 바로 말을 받는다.
“다 좋을 수는 없지. 그것은 다 나쁘게 되는 것과 비슷해요.”
“한랜드를 포함한 대한연방은 결국 자동적으로 러시아 연방국이나 같지요.
거기에 동맹 관계를 맺으면 불가분의 관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푸틴이 메드베데프, 네프스키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이 그것을 모르겠는가? 러시아가 구 소비에트연방 시절보다 기세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군사, 정보력에선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다.
한랜드를 임차로 떼어주면서 동북아 구상을 안 했을 리가 없다.
하선옥이 말을 이었다.
“장관은 대통령께서 적극 지지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동수의 전언은 그것이다.
푸틴이 입을 다물었으므로 방 안에 정적이 깔렸다.
국제관계에는 자국의 이해를 벗어난 신의나 의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될 것이다.
러시아는 거대한 시베리아 영토를 쪼개 한랜드를 세우게 함으로써 극동지역 경제를 순식간에
향상시켰다.
그러나 경제뿐이겠는가? 이윽고 푸틴이 입을 열었다.
“좋아. 러시아는 대한연방 지지 성명을 내도록 하지. 그래야 한랜드가 탄력을 받을 테니까 말요.
(839) 40장 버리면 얻는다-18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방으로 들어선 서동수를 향해 후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한시티 북쪽의 장관 안가(安家)에서 둘이 만나고 있다.
오후 6시 반,
응접실의 탁자에는 마실 것이 여러 종류 놓여 있어 집기만 하면 된다.
“후원 씨가 또 밀사 노릇을 하시는군.”
서동수가 농담을 했다가 뜨끔했다.
자신도 러시아로 하선옥을 보냈기 때문이다. 얼굴에 웃음을 띤 후원이 말했다.
“대한연방에 대한 보도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장관님.”
“고맙습니다.”
따라 웃은 서동수가 앞쪽에 앉았다.
방에는 둘뿐이다.
저녁 무렵이어서 유리창 밖의 침엽수 숲에 어둠이 덮이고 있다.
후원이 말을 이었다.
“주석께서 한랜드와의 우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국과 한랜드는 한가족이나 같아요. 그것이 제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을 뿐이지요.”
의자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후원을 보았다.
후원의 비밀 방문 목적은 자신의 해명을 들으려는 것이다.
요즘 터진 ‘대한연방’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려고 파견됐다.
후원이 잠자코 듣기만 했으므로 서동수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요즘은 한랜드가 동북아 외교의 중심이 됐더군.
그래서 그런지 한시티 인구의 1할이 세계 각국의 정보원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
“동북 3성이 연결되지 않아도 한랜드는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남북한과 연결됩니다.
중국 당국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후원은 잠자코 시선만 주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동북 3성을 적극적으로 한랜드 개발에 협조시킨 것이다.
이른바 윈-윈, 한랜드와 동북 3성의 경제가 그로 인해 발전했다.
서동수가 다시 웃음 띤 얼굴로 후원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대한연방의 동북 3성 구상이나 블라디보스토크 구상으로 중국 정부가 반응하는 건
일본만 즐겁게 해줄 뿐입니다, 후원 씨.”
숨을 들이켠 후원을 향해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19세기에는 한반도가 도마 위의 고기 신세였지만 지금은 아니죠. 그 역할은 다른 곳에 넘겼습니다.”
후원의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곧 멈췄다.
그러더니 눈빛이 강해졌다. 그 ‘다른 곳’을 안 것이다.
일본이다.
일본이 지금 도마 위에 놓인 모양이 됐다.
60여 년간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 역할을 하면서 ‘전범국’ 제재는 거의 받지 않고 안보에도
무임승차해 온 일본이다.
36년간 한반도를 식민통치해 왔으면서도 온갖 궤변을 늘어놓았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전범국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이 이제 남북한이 연방으로 되면서 한랜드로 이어지는 시너지를 받자
도마 위의 고기 신세가 됐다.
우선 미국이 태평양 방어선 역할을 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한반도 고립화를 위해 중국과 비밀 연대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때 후원이 물었다.
“장관님, 장관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신의주 개발에 이어 남북한 연방이 합의되면서 동북아 지역의 대세는 이미 결정됐다고 봐야겠지요.”
다시 후원이 침묵했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한랜드로 이어지는 대한연방은 자연스러운 대세였고 중국의 동북 3성,
그리고 러시아의 유라시아 선(線) 인정은 모두 그 대세에 동참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잠자코 두고 보자는 의미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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