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39장 한로드 [10]
(820) 39장 한로드-19
오후 6시 5분 전이 되었을 때 서동수가 청와대 접견실로 들어섰다.
비서실장 유병선과 내무부장 안종관이 뒤를 따른다.
그들을 안내한 의전비서가 반대쪽 문으로 나가더니
곧 대통령 조수만과 비서실장 정연효, 국정원장 신기명이 따라 들어온다.
서동수와 구색을 맞춰온 셈이다. 총리 출신인 조수만은 화려한 관록을 자랑한다.
장관을 두 번, 총리에다 신의주 장관을 거쳐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1년 반 후에 연방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다시 남한 총리가 될 예정이다.
조수만은 장방형 테이블에 서로 마주 보고 앉도록 자리를 배치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조수만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김동일 위원장을 자주 만나십니까?”
“요즘은 못 뵈었습니다.”
서동수가 잠깐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못 뵌 지 4개월쯤 되었는데요.”
“그렇군요. 서로 바쁘시다 보니까.”
말을 멈춘 조수만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떠올라 있다.
서동수는 관운(官運)이 좋다는 것은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기보다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만큼 큰 재능이 어디 있겠는가?
엄혹한 세상에서 서로 좋게 만들어주는 능력이야말로 최상이다.
조수만은 68세, 바로 그런 장점으로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다.
서동수가 잠자코 조수만을 보았다.
한국과 한랜드는 한 달에 한 번씩 비공식 정상회담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수만이 갑자기 만나자고 한 것이다.
목적은 ‘양국 현안’이라고만 해서 유병준과 안종관은 각종 자료를 준비해왔다.
이윽고 조수만이 입을 열었다.
“들으셨겠지만 북한 민생당과 한국 민족당의 연대가 강해지고 있지요.
그리고 온갖 루머가 쏟아지는데 제법 먹힙니다.”
서동수는 머리만 끄덕였고 조수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지워졌다.
“한랜드에 계셔서 피부로 느끼지 못하실 겁니다.
종편 방송에서는 하루 종일 장관님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이젠 식상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
“의도적인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여러 번 들으면 질리는 법인데 이건…….”
서동수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보고는 받았지만 말대로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실감이 안 간다.
여자관계, 한랜드에서의 부정, 김광도의 유라시아 그룹과의 밀착까지
‘카더라’ 방식으로 쏟아붓는 것이다.
“더구나…….”
숨을 들이켠 조수만이 옆에 앉은 국정원장 신기명을 보았다.
“원장이 말씀드려요.”
그러자 상반신을 세운 신기명이 말했다.
“장관께서 중국과 밀착하여 연방대통령이 되신 후에 한반도를 한국성(韓國省) 또는 조선성(朝鮮省)으로 중국에 합병시킨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
“SNS에서 퍼지고 있는데 장난 수준이었다가 신빙성 있게 조작되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
“방지는 하고 있지만 이대로 나가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요.”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민족당이나 반(反) 서동수 세력의 소행이라고 심증은 가지만 아직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조수만을 보았다.
“저희들도 상의를 했습니다만, 당분간은 그대로 두는 것이 낫겠습니다.
이것도 제 소문처럼 끝까지 가도록 놔 둬보지요.”
한랜드에서 듣기보다 심각한 것 같다.
(821) 39장 한로드-20
“사실일 수도 있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동수가 앞쪽을 향한 채로 말했다.
오후 7시 10분,
청와대에서 저녁밥도 못 얻어먹고 나오는 길이다.
한 시간 동안 할 이야기만 주고받다 끝냈다.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다가는 소화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동수가 옆에 앉은 유병선과 앞쪽의 안종관을 차례로 보았다.
“내가 신의주에서 한랜드로 갈 때 중국의 청사진도 함께 만들어졌을지 몰라.”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신의주 특구 개발 계획은 본래 중국 측 아이디어였으니까.
중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나는 신의주 장관이 되지 못했을 거야.”
유병선과 안종관이 머리만 끄덕였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동성의 에너지를 분출시킬 대상을 골라 동성과 신의주, 중국과 남북한이 함께 윈-윈하자는
순수한 의도였는데…….”
그때 안종관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국가 차원의 사업에 순수한 의도는 없습니다.”
그러자 유병선이 나섰다.
“명목은 윈-윈이지요. 하지만 손해 볼 짓은 안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지경까지 왔어.”
서동수가 자조하듯 말하니 안종관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동안 잘하셨습니다.”
“이렇게 휩쓸려 가다가 정말 매국노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자 안종관과 유병선이 소리 내어 웃었다.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또 배웠군. 시대에 맞춰야 한다는 것, 자신 있다고 기다리면 안 된다는 것.”
조수만 앞에서와는 다른 말이다.
차가 멈춘 곳은 인사동의 좁은 주차장 안이었는데 기다리고 있던 지배인이 서동수를 맞았다.
이곳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것이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한정식 식당 방으로 들어선 서동수 일행을 진기섭과 오성호가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상석을 비워 놓고 기다리던 둘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겼다.
“기다리셨군요.”
인사를 마친 일행이 자리에 앉았을 때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대통령께서 내 소문을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매국노라는 소문 말입니다.”
진기섭과 오성호는 잠자코 듣기만 한다.
둘은 서동수가 조수만을 만나고 나온 것을 알고 있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냥 놔두겠다고 했지요. 그런 소문은 성급히 부인하거나 은폐하려고 하면 더 커진다는 조언도 받아서요.”
“그렇습니다” 하면서 진기섭이 동의했고 오성호도 머리를 끄덕였지만 그늘진 표정이다.
그때 서동수가 젓가락을 들면서 말했다.
이미 방에 한정식 상이 차려져 있었다.
“내 생각을 두 분께 말씀드리지요.
중국이 그런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의 몸이 굳어졌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중국 3성이 한로드의 철도로 연결되면서부터 나는 남북한과 중국 3성,
그리고 한랜드를 잇는 ‘대한연방’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물론 이것은 중국의 ‘동북아 자치구’ 소문과 비슷한 상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은 숨을 죽였고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졌다.
머릿속이 맹렬하게 움직인다는 증거다.
그때 서동수가 말을 맺었다.
“나한테서 직접 들었다고 두 분이 언론에 발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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