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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40장 버리면 얻는다 [1]

오늘의 쉼터 2016. 4. 23. 19:40

<413>40장 버리면 얻는다 [1]


(822) 40장 버리면 얻는다-1



그러자 하선옥이 머리를 끄덕였다.

“일찍 왔구나.”

눈을 크게 뜬 강정만이 말하자 서동수가 여자를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녜요, 바쁘신데 제가 죄송하죠.”

여자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하선옥,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다본다’의 대표다.

45세에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다. 화려한 경력은 다 읽지도 못했고,

10년간 대기업 홍보 마케팅 책임자를 지내다가 ‘다본다’를 창립해 5년째 운영 중이다.

가족 사항은 10년 전에 이혼했고, 자녀는 없다.

정장 재킷만 벗어놓고 응접실로 나온 서동수가 소파에 앉아서 하선옥에게 말했다.


“실물이 훨씬 더 미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하선옥이 부드럽게 웃었다.

농염한 태도다.

서동수는 잠깐 자신의 눈이 하선옥의 눈동자 안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짧게 웨이브 진 머리, 둥근 얼굴에 콧날이 섰고 웃을 때는 눈이 가늘어지면서 초승달 모양이 된다.

도톰한 입술에는 분홍 루주를 발라서 웃는 얼굴과 어울렸다.

한마디로 교태가 흐른다.

그때 강정만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내가 채홍사 역할을 잘한 것 같군.”


 “인마.”


정색한 서동수가 나섰지만 하선옥이 짧게 웃는 바람에 분위기가 수습되었다.

하선옥은 강정만이 소개해준 업체 대표인 것이다.

탁자 위에는 관리하는 아줌마가 차려놓은 술과 안주가 잘 차려져 있다.

술병을 든 서동수가 하선옥의 잔에 술을 채우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밤밖에 시간이 없어서요. 오후 6시에 대통령을 뵙고 오는 길입니다.”


숨을 들이켠 강정만이 입을 다물었다.

다른 말을 했다면 허세 부리지 말라고 하고도 남을 강정만이다.

미친놈이 아닌 이상 대통령 만나고 온 것을 허세라고 하지는 못한다.


“바쁘신 줄 압니다.”


하선옥이 술잔을 들면서 서동수를 보았다.


“요즘 SNS에서 항상 조회 수 10위권 안에 드시니까요.”


 “그중 절반이 여자 이야기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정색한 하선옥이 말을 이었다.


“다행히 여자 문제로 반감을 품는 사람들이 적은 편입니다.”


 “그런 놈들은 성생활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지.”

 

강정만이 나섰다가 둘의 반응을 보더니 한입에 술을 삼켰다.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내가 매국노라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 나갑니까?”


 “예,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지고 있어서 조회 수가 늘어나고 있어요.”


다시 시선이 마주쳤고 하선옥이 말을 이었다.


“기획을 한 표시가 납니다. 사이트도 여러 개인 데다 추적이 힘들다고 하더군요.

북한에서 보내온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네, 전문가들한테 들었어요.”


 “그럴듯하구먼.”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술을 삼키고 하선옥을 보았다.


“그럼, 내 여론 담당으로 계약하지요. 물론 비공식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자 하선옥이 머리를 끄덕였다.



(823) 40장 버리면 얻는다-2



“저, 채홍사가 가셨으니까 일어서도 괜찮겠지요?”


강정만이 일어섰을 때는 10시 반이다.

이미 위스키를 반 병쯤 마신 강정만이 붉어진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다 큰 성인 둘한테 내가 어쩌고저쩌고할 수는 없고.”


서동수와 하선옥은 시선만 주었고 강정만이 정색하고 떠벌렸다.


“여기서 날 따라 일어난다든가 또는 말린다든가 할 만큼 둘의 비위가 약한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마음놓고 가겠다.”


 “빨리 가.”


소파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했을 때 하선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히 가세요.”


하선옥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자 강정만이 숨을 들이켜면서 몸을 돌렸다.

강정만이 응접실을 나갔을 때 하선옥이 자리에 앉더니 술병을 들었다. 


“여자 많으시잖아요?”


서동수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하선옥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새 여자를 즐기신다고 SNS에서 떠들더군요. 잡식성이라고.”


 “맞는 말인데.”


술잔을 든 서동수가 지그시 하선옥을 보았다. 


“하선옥 씨한테 먼저 물어볼 것이 있었어요. 대답을 들읍시다.”


 “말씀하세요.” 


하선옥이 한쪽 다리를 꼬아 얹었다.

미끈한 허벅지까지 드러났고 발가락이 가지런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살구색 스타킹 안에 든 발이 그물에 잡힌 산 고기 같다.

서동수가 한 모금의 술을 삼켰다.


“한국인의 품성을 말해 봐요.”


 “네?”


예상 밖의 질문이었던지 하선옥의 얼굴에서 곧 웃음기가 지워졌다.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하선옥 씨가 본 한국인의 품성을 듣고 싶은데, 여론조사나 홍보 관련 일을 하면서 느꼈을 것 아닙니까?”


“…….”


“솔직한 생각을 들읍시다.”


그때 술잔을 내려놓은 하선옥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눈꼬리가 솟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한국의 정치 수준이 낮다고 밤낮으로 비판하는 언론, 시민들을 보았어요.”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하선옥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민 수준이 정치 수준과 같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죠.

그런 정치인들을 뽑은 시민이니까요.”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술잔을 쥐었을 때 하선옥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민 수준에 맞춰야 합니다. 언론 대응도, 처신도 맞춰야 돼요. 괜히 잘난 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한입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지그시 하선옥을 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내가 할 일은?”


 “장관께 남은 카드는 하나뿐이죠.”


어깨를 들었다가 내린 하선옥이 상기된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정직한 사람, 정직한 지도자,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죠.”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 홍보 업무를 맡아줘요.”


 “물론 비공식으로 맡아야겠죠?”


 “당분간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낫겠어요.”


 “맡기겠습니다.”


그러자 심호흡을 한 하선옥이 응접실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저, 채홍사가 가셨으니까 일어서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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