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37장 뜨거운 동토 [4]
(768) 37장 뜨거운 동토-7
술잔을 든 서동수가 지그시 후원을 보았다.
오후 9시 반, 한시티의 한식당 ‘전주’의 밀실 안에서 둘이 마주 앉아 있다.
이곳은 한국 광일그룹이 투자한 식당 체인점으로 한랜드 안에만 ‘전주’ 브랜드의 한정식 식당이
50개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소주를 마시면서 서동수는 후원이 아직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정부가 일본과 밀약을 맺고 한랜드 내란에 동조한 왕춘을 제거했다는 말을 전하려고 왔단 말인가?
사과 사절이라면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서동수의 눈앞에 문득 장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는 연락도 끊긴 지 오래되었지만 장치는 중국 정부와 이어주는 끈 역할을 했다.
중국인의 사고는 넓고 깊다. 열국지를 보면 온갖 간계가 다 나온다.
서동수는 숨을 골랐다.
그때 소주를 한 모금 삼킨 후원이 서동수를 보았다.
눈이 더 반짝였고 얼굴은 조금 상기되었다.
“각하, 각하의 한랜드 구상이 중국 지도자들한테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아세요?”
거창한 시작이었으므로 서동수가 지그시 웃기만 했다.
물기에 젖은 후원의 입술이 육감적이다.
더구나 맑은 중국어는 술기운에 들으면 얼마나 고혹적인가? 미인의 소리면 더욱 그렇다.
그때 후원이 말을 이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기도 합니다,
각하. 또한 21세기 이후에는 국경의 존재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후원의 섬세한 손가락이 술잔을 쥐었다.
손톱 밑이 분홍색이다.
“아세요? 압록강 이북에서 일어난 여진이 중국 대륙을 두 번이나 장악하고 제국을 세웠지요.
바로 금(金)과 청(淸) 아닙니까? 그 여진은 고구려인이었지요.”
“…….”
“몽골제국은 제쳐 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각하.”
“차관.”
소주를 한 모금 삼킨 서동수가 후원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그 말씀, 지시를 받고 온 겁니까?”
“각하의 판단에 맡기지요.”
“한민족과 중국의 통합에다 한민족의 대륙 지배까지 포함되는 이야기지요?”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후원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되겠네요.”
“과연 중국 지도자들은 통이 크군요.”
“가능성이 있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이제는 정색한 후원이 서동수를 보았다.
“각하께서 남북한연방 대통령이 되시면 그 기회가 올 것 같았습니다.”
“한반도에서 뻗어 나간 기운이 한랜드와 중국 대륙까지 덮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유라시아 로드가 중국 대륙을 통하는 것이 더 빠르지요. 실제로 실크로드가 그렇습니다.”
서동수가 마침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긴 숨을 뱉는다.
칭기즈칸은 부족원 200만 명으로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다.
정복한 지역의 주민은 흡수하고 종교를 따르며 배우면서 세계를 정복했다.
한민족이라고 안 될 것이 있느냐? 머리를 든 서동수가 후원을 보았다.
“그것도 개인 의견이오?”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각하.”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한 후원이 소주잔을 들었을 때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오늘 밤 우리 둘이서 먼저 한·중 동맹을 맺는 것이 어때요? 물론 개인적으로.”
후원이 시선만 주었으므로 서동수의 말이 더 분명해졌다.
“지난번의 장치는 인질 격이지만 차관, 당신은 내 참모 역할로 적합하겠어.”
(769) 37장 뜨거운 동토-8
“감사합니다.”
후원이 눈웃음을 쳤다.
가슴이 섬뜩할 만큼 자극적인 웃음이다.
중국 황제가 저런 웃음을 보려고 봉화를 올려 수십만 대군이 변이 난 줄 알고 달려오도록 했다는
고사가 또 떠올랐다.
포사가 대군의 헛고생한 장면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정작 난이 일어나 봉화를 올렸더니
또 거짓 봉화인 줄 알고 지원군이 안 와 나라가 망했다던가?
후원이 말을 이었다.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나는 속물이요, 차관.”
“솔직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지요.”
“그걸 핑계로 성욕을 절제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
“여론은 그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더군요.”
“여론을 의식한 적은 없어, 시대가 조금 변한 모양이오.”
“하지만 오늘은 힘들겠어요. 오늘은 제 말씀을 전달해 드린 것으로 마쳤으면 합니다.”
“그래야겠지요.”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한다고 전해주시오.”
“예, 장관 각하.”
“금(金)과 청(淸)이 고구려의 주민이었던 여진이 세운 나라였다는 말씀도.”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따라 일어선 후원이 정색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장관 각하.”
“고맙습니다. 다음에 뵙지요.”
서동수가 손을 내밀자 후원이 손을 뻗었다.
후원의 손가락은 섬세하고 부드러웠으며 따뜻했다.
서동수가 잡은 손에 힘을 줬더니 후원도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마주 쥐었다.
서동수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열기가 순식간에 말초 신경까지 퍼져나갔다.
후원을 먼저 배웅한 서동수가 다가온 승용차에 올랐다.
오후 10시 반이다.
서동수가 등을 붙이고 앉았을 때 앞좌석에 앉은 최성갑이 몸을 돌리며 낮게 말했다.
“장관님, 연락을 했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다.
밤길을 달린 승용차가 10분쯤 후에 멈춘 곳은 ‘아리랑 식당’ 앞이다.
서동수와 최성갑 둘이서만 안으로 들어서자 이옥영이 서둘러 다가왔다.
얼굴이 붉어졌고 두 눈이 반짝였다.
이옥영 뒤로 부모가 따라 나왔는데 반갑고 당황한 표정이다.
“장사 잘되는가 보려고.”
인사를 한 서동수가 안쪽으로 안내되어가면서 식당을 둘러보았다.
늦은 시간인데도 손님이 절반 이상은 찼다.
장사가 잘되는 것이다.
안쪽 밀실로 안내된 서동수가 자리에 앉았을 때 따라 들어온 이옥영의 부모와 남동생 부부까지
인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이옥영 가족이 ‘아리랑 식당’을 인계받은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중이다.
최성갑의 연락을 받은 터라 곧 종업원들이 술과 안주를 가져왔고 이옥영이 따라 들어왔다.
이옥영은 34세, 우즈베키스탄 태생이지만 고려인 4세로 한국말이 유창하다.
대를 이어서 부모로부터 철저하게 한국말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카레이스키가 많은 것이다.
“내가 인사받자고 온 건 아냐. 이옥영 씨는 이 식당을 받고도 남을 만한 일을 했어.”
앞에 앉은 이옥영에게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잘 살아. 좋은 남자도 만나고 아이도 낳고….”
그때 이옥영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저, 오늘밤 데려가실 수 있죠?”
이옥영의 두 눈이 똑바로 서동수를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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