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 36장 내란 [10]
(759) 36장 내란-19
“일본 정부는 다나카, 마사무네의 단독 범행으로 발표했습니다.
오히려 무고라면서 한랜드 정부를 제소하겠다는데요.”
오후 4시,
안종관이 서동수에게 보고했다.
안종관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랜드 상황에 대해 일절 반응하지 않습니다. 일본과 대조적입니다.”
장관실 안이다.
수시로 방송을 듣고 있는 터라 서동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서동수가 물었다.
“펭귄촌 수색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장관님.”
머리를 든 안종관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왕춘이 살해당했다는 사실만 중국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왕춘은 오늘 아침 저택 거실에서 가슴에 칼이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우장. 인사를 하려고 왔던 우장은 즉시 신고를 했는데
철통 같은 보안 장치를 갖춘 저택 안에서 당한 것이다.
보나 마나 내부 소행이었고 한랜드 경찰이 조사 중이다.
장관실 안에는 다섯 명이 둘러앉았다.
서동수와 유병선, 안종관과 경찰청장 김상영, 그리고 특전사 사단장 최승곤 소장이다.
그때 김상영이 말했다.
“왕춘의 피살 발표로 술렁이던 중국인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습니다.
중국인들은 이제 안정되었고 한국계는 소탕 중입니다.”
그러나 북한계는 산발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는 듯이 10여 명씩 무리를 지어 북촌 안의 사업장이나
한국인 사업장을 공격하고 방화했다.
그러나 꺼져가는 불이 마지막 불씨를 추켜올리는 것 같은 단말마성 폭동이다.
오전에 배치된 특전사 병력의 사냥감이 될 뿐이다.
서동수가 시선을 유병선에게로 옮겼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나?”
“예, 30분쯤 전에도 연락이 왔습니다.”
정색한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불법 체포한 일본인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자위대 파병도 고려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최승곤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숨까지 들이켜는 것이 할 말을 참는 것 같다.
최승곤 입장에서 보면 여기서 일본군과 맞붙는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그때 최승곤 대신 안종관이 말했다.
“설령 자위대가 일본 땅을 떠난다고 해도 러시아 영공에 들어오는 즉시
하늘에서 바로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부드럽게 표현한다는 것이 농담처럼 들렸다. 시선을 받은 안종관이 말을 이었다.
“러시아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건 아베의 뻔한 립서비스입니다.”
“내가 성명을 발표한다고 해요.”
정색한 서동수가 말하자 모두 긴장했다.
군인인 최승곤이 상반신을 직각으로 세운 것이 전투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본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두 시간쯤 후인 오후 6시에 발표한다고 통보해요.”
“예, 알겠습니다. 장관님, 그럼 내용은…….”
유병선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대답했다.
“일본 정부가 바라는 대로 불법 체포한 일본인을 전원 석방할 것이라고 발표할 겁니다.
일본과 미국은 한랜드에도 우방국이며 동맹국 수준임을 강조할 테니까요.”
모두 숨을 죽였을 때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한 시간쯤 후인 5시에 안 부장이 먼저 성명을 발표해요.
한랜드 정부는 엄격한 증거에 입각해 범법자를 체포, 한랜드 법에 의해서 처단하겠다고.”
(760) 36장 내란-20
오전 9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오바마가 국무장관 헤이스, CIA 국장 존 브레넌을 불러
한랜드의 성명 발표를 재생시켜 보고 있다.
먼저 한랜드 내무부장 안종관의 딱딱하고 위압적인 발표가 끝났을 때 부통령 바이든이 들어왔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들어왔지만 오바마는 놔둔다.
노인 대우를 해주는 셈이다. 이어 한랜드 장관 서동수의 발표다.
한 시간 간격으로 발표했지만 재생시켜서 바로 나온다.
이번 분위기는 부드럽고 온건하다. 그래서 굳어 있던 방 안 분위기도 풀렸다. 서
동수의 발표가 끝났을 때 바이든이 먼저 한마디를 했다.
“역시 서동수가 꼬리를 내리는군. 어쩔 수 없지. 한국 특전사를 끌어들인다고 해도 뒷감당은 못해.”
방 안이 조용해졌으므로 바이든의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아베의 기세가 이번에도 이긴 거요. 아베의 가미카제식 전술에는 못 당한다니까.”
“아, 그만.”
갑자기 헤이스가 제지하는 바람에 바이든이 숨을 들이켰다.
주름진 얼굴이 찌푸려졌고 가늘게 뜬 눈은 번들거렸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하는 표정이다.
그때 헤이스가 똑바로 바이든을 보았다.
“앞뒤를 좀 살펴보고 발언을 하시지요, 부통령 각하.”
“무슨 말이야? 장관.”
바이든이 목소리를 높이자 오바마가 숨을 들이켜더니 헤이스에게 지시했다.
“한랜드 내무부장의 성명서를 다시 듣지.”
헤이스가 리모컨으로 안종관을 화면에 불러들였다.
다시 방 안에 안종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영어로 발표했기 때문에 자막도 필요 없다.
이윽고 화면이 꺼졌을 때 바이든은 입안의 침만 삼켰다.
그때 오바마가 말했다.
“아주 손발이 잘 맞아요. 조직은 저렇게 운영되어야 하는 거요.”
모두 입을 다물었고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아래쪽에서 생색을 다 내면 위에서는 할 수 없이 싸워야 하지. 여유도 없는 싸움을 말이오.
그러다가 망하는 거지.”
오바마가 시선을 브레넌에게로 옮겼다.
“자, 일본하고 생색을 낸 놈이 어떤 놈인지 말해요,
브레넌. 내가 병신이 될 각오는 하고 있으니까.”
“각하.”
브레넌이 정색하고 오바마의 시선을 받는다.
“조사 중입니다.
현지의 감사관 윌리엄 마틴과 주재원 제임스 모건에게 본부 감찰팀을 파견했습니다.”
“마약이 CIA에서 나왔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어요, 브레넌 씨.”
헤이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보다 한랜드에서 먼저 주모자를 밝혀낸다면 이건 치명적이란 말이오.”
“글쎄, 그것이…….”
그때 오바마가 손을 들어 둘의 논쟁을 막았다.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건 반역행위요, 브레넌."
“각하.”
“이번 일본의 한랜드 작전이 가미카제 작전이라고 작전명까지 밝혀진 상태요.”
모두 숨을 죽였고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그 가미카제에 미국제 폭탄을 실었다는 말인데, 기가 막힌 노릇 아니요?”
“각하, 그것은…….”
그때 당황한 바이든이 또 나섰다.
“각하, 제가 아까 가미카제라고 한 것은 우연히…….”
오바마가 바이든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브레넌과 헤이스를 번갈아 보았다.
“자, 빨리 수습을. 난 지금부터 국토안보부도 동원할 예정이오.”
(761) 36장 내란-21
한국 대통령 한대성과 북한 지도자 김동일이 한랜드를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다.
오전 10시 반경에 한대성을 태운 전용기가 도착했고, 30분 후인 11시에
김동일의 최신형 전용기 에어스타가 착륙했다.
북한은 경제사정이 좋아져서 김동일은 최신형 전용기를 구입한 것이다.
바로 어제 북한군 최정예부대인 특공사 2개 연대가 한랜드에 진주한 데다가
남북한 정상까지 방문한 셈이다.
세계의 이목이 한랜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백 명의 기자들이 한시티 공항에서부터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서동수는 공항에 나가 양국 정상을 맞았는데 한대성은 30분 늦게 오는 김동일을 함께 기다려 주었다. 본래 김동일이 먼저 도착하기로 계획이 잡혀 있었는데 한대성이 바꾼 것이다.
이것이 한대성의 장점이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런 것이 쌓이면 상대에게 감동과 함께 신뢰를 얻는다.
한대성은 쾌활한 표정을 지었지만 병색이 완연했다.
그래서 2개월 후가 대통령 선거일로 잡혀 있다.
이제 대통령은 자신의 병세를 모두 밝혔기 때문에 수명이 3개월에서 길어야 4개월로
공공연하게 진단이 되었다.
셋은 리무진으로 공항에서 한시티로 향했다.
한대성이 헬기보다 차를 타고 시내를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동일과 나란히 앉아 창밖을 보던 한대성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나쁜 놈들, 한민족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분열시키려고 하다니.”
혼잣소리지만 방음장치가 잘된 리무진 안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앞쪽에서 마주 보고 앉은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고 김동일의 표정도 굳어졌다.
한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젠 안 될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뭉쳐있는 한 말입니다.”
머리를 돌린 한대성이 김동일과 서동수를 차례로 보고 나서 웃었다.
흰 이가 드러났고 마르고 검게 변색된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먼저 김동일이 커다란 소리로 대답하더니 머리까지 끄덕였다.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님도 역사에 남으실 것입니다.”
“아니,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김동일이 이제는 손을 저었다.
“저는 두 분을 따른 것뿐입니다.”
“그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위대한 결단을 하신 것이지요.”
서동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오늘 방문은 한대성의 제의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대성이 김동일에게
“우리가 한랜드로 갑시다. 가서 힘을 실어줍시다”
라고 청했고 김동일이 선뜻 동의했던 것이다.
그때 김동일이 말했다.
“우리가 중국에 정보망이 있습니다.
이번에 삼합회 거물 왕춘은 중국 최고층의 지시로 살해된 것입니다.”
둘의 시선을 받은 김동일이 어깨를 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서 리커창이 당분간 외부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랜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방침이 바뀌어질 것입니다.”
“저도 정보가 좀 있지요.”
이번에는 한대성이 웃음 띤 얼굴로 둘을 보았다.
“CIA 내부에 대폭적인 숙청 작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몇 명은 기소되어 중형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한대성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보십시오. 반도 끝의 한민족이 이제 유라시아로 뻗어 나갑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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